MBTI가 진짜 무서운 건 여기서부터다. 이 찬반론을 두고서도 긍정적인 앞의 사람은 분류, 체계, 대응, 준비를 중시하는 J라 그렇게 생각하고, 비판적인 뒤의 사람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T라서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좋다고 해도, 싫다고 해도 MBTI로 귀결되는 'MBTI 무한지옥'이다.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다. 별자리, 혈액형에 따른 성격 유형 같은 게 엄청 훌륭해서 과거에 유행했던가. 인간은 늘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되묻는 존재라 늘 그렇게 서로를 가지고 논다.
성격유형검사 MBTI. 게티이미지 뱅크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책이 '이향인'이다. 외향인 'E'도 아닌, 내향인 'I'도 아닌 이향인 'O'다. 외향인이 밖으로 향하는 Extro-vert, 내향인이 안으로 향하는 Intro-vert라면 이향인은 Otro-vert다. 외향도 내향도 아닌, 그들과 뭔가 좀 다른(otro) 곳으로 향한다는 얘기다.
제3의 존재 '이향인'
어떻게 다른가. 간단히 말하자면 겉으론 외향적인데 내적으로는 자신을 집단과 분리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성향을 말한다. 그게 내향인 아닌가? 아니다. 내향인이 '바깥과의 차단'을 중시한다면 이향인은 바깥과의 차단보다는 '자신과의 결합'을 중시한다.
그래서 외향인도 내향인도 아닌 '이(異)향인'이다. 낯선 표현이라 손이 선뜻 가지 않을 법도 한데 이 책은 한국에서 4만부 이상 팔렸다. 역시 인간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라는 화두를 끊임없이 가지고 노는 존재다.
그렇다고 괜한 말을 억지로 만들어낸 건 아니다. 저자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 라미 카민스키. 40년 경력의 이 정신과 의사는 미국에서 우수정신과의사상이나 올해의 의사상 등을 받은,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의 출발점 또한 실제 상담 사례였다. 상담실에서 만난 이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여러 다양한 변주로 나타나지만 대개 이런 이야기였다. "사랑받고 받아들여지는 사람, 무리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그에 이은 것은 "왜 나는 그렇지 못하는가"라는 탄식, 그리고 "내가 그렇게나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던가"라는 자책이었다.
"우리 모두는 개별적 존재"
물론 다른 심리적, 사회적 큰 문제가 있었던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정 정도는 좀 특이한 이들이 나왔다. 왜 나는 집단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나, 라고 괴로워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인간은 모두 개별적 존재인데 왜 굳이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만 하나, 라는 의문을 품고 있는 이들.
이 사람들을 파고들어 얻은 결론은 '공동체 지향성 부재'였다. 쉽게 말해 어떤 집단에 소속감을 잘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반사회적 소시오패스라던가 기괴한 은둔형 외톨이 같은 사람이었단 얘기는 아니다.
미국 정신과 의사 라미 카민스키. 외향형, 내향형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향인 개념을 제안한다. ©The Otherness Institute그보다는 오히려 쾌활한 성격에다 배려와 유머, 지성까지 갖췄다. 그래서 친구도 많고 학교나 직장 등 소속 집단에서 나름 인기도 있다. 차이점이라면 '굳이'였다. '난 나만의 궤적으로 인생을 살면 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속앓이다.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형용모순적인 '사교적인 외톨이'다.
'공동체 지향성'이 없다
집단에 잘 어울려야 한다니까 나름대로 노력은 하는데, 실제 만나보면 따스하고 유쾌하고 배려도 있는데,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하는데, 그런데 정작 집단의 생리나 찬사에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반감까지 느끼고 있는 이들. 집단에 대충 어울려 지내면 이런저런 잔소리 들을 일 없으니까 그렇게 하기는 하는데 그 집단에 큰 애착도 없고 그 집단의 인정 여부 또한 자신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이들.
문제는, 그래서 이향인은 톡 튀어보인다는 점이다. 외향인은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걸 넘어 집단 안에서 주목받지 못해 난리법석이고, 내향인은 내향인임을 내색하지 않으려 기를 쓰고 집단 안에서 어울리려 든다면, 이향인은 집단에서 한발 떨어진 채, 아니 어쩌면 등을 돌린 채 아주 태평스럽게 서 있기 때문이다.
MBTI 유행은 무한대다. 토종 쌀 품종과 MBTI 특성을 연결시킨 제품. 한국일보 자료사진내향인은 혹여 자신이 미운 오리 새끼가 될까봐 벌벌 떤다. 외향인은 자신이 멋진 백조가 되지 못할까봐 발을 동동 구른다. 내향인과 외향인은 정반대의 성향같지만, 이향인의 눈에는 둘 다 공동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지향인'이긴 매한가지다.
거꾸로 이향인은 미운 오리 새끼가 되지 않으려는 내향인, 백조가 되지 못해 안달난 외향인에겐 이해불가의 존재다. 그룹에 굳이 속해야만 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어서다. 이향인은 그런 두려움이나 욕망에서 자유로우니 상대적으로 감정기복도 적고, 개별적으론 공감과 배려에 능숙한 다정다감한 존재다. 그래서 외향인과 내향인은 이향인을 집단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는데, 그 순간 이향인은 손사래를 치며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앉는 거다.
이향인은 어떤 존재인가
이 문제는 사춘기 때 극대화된다. "왜 너는 다른 아이들처럼 어울리지 않니" "또래들과 이런 저런 거를 해보는 건 어떻니"라는 압박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실제 카민스키가 상담한 사례 중에 이런 경우가 제법 많았다. 이런 아이들의 경우 얼마 안 가 바깥 활동으로 내몰렸고,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아이들은 '내게 문제가 있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억지춘향 식의 사회 생활이란 걸 이어가다 스스로에 대해 혼란을 느끼거나, 심지어 심리적 붕괴 현상을 겪기도 했다.
이런 이향인은 어떤 존재일까. 7가지 정도로 정리했다.
1. 공동체 지향인들과 달리 이향인은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내면 세계는 혼란한 외부 세계의 은신처다. 외부 세계의 논리와 평판은 별 의미가 없다.
2. 그러니 바깥 사람과 소통하는 언어, 자신과 소통하는 언어가 따로 있다.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위한 자신만의 무기가 있긴 하다. 하지만 홀로 있을 때 그 무기를 즉각 내다버린다.
3. 내면 세계에 몰두하기에 피상적 교류에 무관심하고 힘들어 한다. 자기 생일 파티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의례적 말들이 넘치는 큰 규모의 공식 행사나 모임을 무척 힘들어 한다.
4. 그 내면 세계에 가닿은 소수와 매우 친밀하다. 죽이 맞다 싶으면 때론 상대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과도하게 자기를 노출하기도 한다. '적극적' 사교보다 '깊은' 사교를 택한다.
5. 질투, 당혹감, 수치심 같은 게 훨씬 덜 하다. 사회적 요구에 맞추느라 괜히 오버하거나 반대로 감추고 숨기고 할 게 없어서다. 있는 그대로 담백하다.
6. 참여자라기보다는 관찰자다. 집단적 사고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어서다. 공동체 내부의 흐름이나 행사에 녹아들기보다는 이런 경우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차분히 둘러본다.
7. 관행을 따르지 않는다.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없으면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쉽게 동조하지 않는다. 딱히 차별화를 좋아해서라기보다 그렇게 섞이는 게 불편해서다.
집단에 잘 어울리는게 정답인가
카민스키 박사는 이 지점에서 이렇게 되묻는다. 사회성을 잘 길러 집단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이냐고. 오랜 기간 자신의 내면 세계를 외면한 채 사회적 틀에만 맞추다보니 나중에 나이 들어서 번아웃, 중년의 위기, 우울증 같은 것들이 생기지 않느냐고.
내 아이가 ‘이향인’일까, 체크리스트1. 10대 특유의 갈등, 인기경쟁, 험담, 뜬소문에 무관심하다.
2. ‘대외적인 나’가 ‘실제 나’와 다르다고 고민한다.
3. SNS 등에선 과도하게 외향적이다
4. 또래 취향과 다른 옷, 음악에 심취한다.
5. 운동은 좋아하는데 팀 보다 개인 스포츠를 좋아한다.
6. 혼자 있는 시간, 1대 1의 시간을 좋아한다.
7. 실용적이다. 무모함을 싫어하고 위험 관리를 한다.
그렇다면 내 아이가 이향인 기질을 보일 때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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