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왼쪽)와 SK하이닉스의 HBM4E 12단 샘플. /사진 제공=각 사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서 차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 기술력을 겨룬다. 양사는 세계적인 반도체 설계 학회 '핫칩스 2026'에서 각기 다른 HBM 핵심 기술을 소개한다.
삼성전자는 데이터가 오가는 길목인 베이스다이를, SK하이닉스는 D램을 안정적으로 쌓고 열을 잡는 첨단 패키징을 선보인다. HBM 세대가 올라갈수록 속도와 용량뿐 아니라 칩을 어떻게 설계하고 쌓아 열을 빼느냐가 중요해지는 모습이다.
올해 핫칩스 화두 '메모리'…삼성은 설계, SK는 패키징 방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는 23~25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리는 '핫칩스 2026' 발표 무대에 나란히 오른다. 행사 첫날인 23일 삼성전자 한상욱 PL은 베이스다이를, SK하이닉스 이재식 부사장은 첨단 패키징을 주제로 발표한다. /사진=핫칩스 2026 홈페이지 갈무리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는 23~25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리는 '핫칩스 2026' 발표 무대에 나란히 오른다. 행사 첫날인 23일 삼성전자 한상욱 PL은 베이스다이를, SK하이닉스 이재식 부사장은 첨단 패키징을 주제로 발표한다.
핫칩스는 1989년 시작된 고성능 반도체 분야 대표 학회다. 올해도 엔비디아와 AMD, 인텔, 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다. 실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을 주로 다뤄 업계 관심도 높다.
올해는 특히 메모리가 전면에 나선 점이 눈길을 끈다. 첫 튜토리얼 문패부터 '메모리 기술(Memory Technology)'이다. 정규 콘퍼런스에도 별도 세션이 마련됐다. AI(인공지능)가 처리하는 데이터가 폭증하면서 이를 제때 공급하는 메모리가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HBM 가장 아래에 들어가는 베이스다이를 소개한다. 여러 장의 D램과 GPU 같은 연산장치를 이어주는 칩이다. 저장된 데이터를 GPU로 보내고 필요한 정보를 다시 받아 전달하는 길목 역할을 한다.
회사의 강점을 이 칩까지 자체 공정으로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지난 2월 양산에 들어간 HBM4에는 삼성 파운드리의 4나노 공정으로 만든 베이스다이를 적용했다. D램부터 이를 받치는 칩까지 자체 역량을 묶어 성능을 끌어올리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는 D램을 '잘 쌓고 잘 식히는' 패키징에 힘을 준다. 같은 날 'HBM을 위한 첨단 패키징'을 주제로 발열과 휘어짐을 줄이는 해법을 공개한다. HBM은 D램을 층층이 올리는 구조여서 높아질수록 열이 많이 나고 칩도 쉽게 휜다. 이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잡느냐가 성능과 수율을 가른다.
대표 기술은 '어드밴스드 MR-MUF'다. 쌓은 D램 사이에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채워 굳히는 방식이다. 칩을 단단히 잡으면서 열도 밖으로 빼낸다. 지난 6월 주요 고객사에 공급한 HBM4E 12단에도 이를 적용했다. 열 저항은 HBM4보다 17% 낮추고 최대 동작 속도는 핀당 16Gbps(기가비트)까지 끌어올렸다.
속도만으론부족…HBM4 승부처 '설계·방열'두 회사가 내세운 발표 주제는 HBM4부터 경쟁이 한층 복잡해졌음을 보여준다. 데이터 통로가 넓어지고 D램을 더 높이 쌓게 되면서 챙겨야 할 기술도 많아졌다.
우선 데이터 길이 두 배로 넓어졌다. HBM4의 I/O(입출력)은 HBM3E의 1024개에서 2048개로 늘었다. 한꺼번에 오가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이를 정리하는 베이스다이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고객사마다 원하는 HBM이 달라지면서 로직 설계와 파운드리 공정까지 함께 챙겨야 한다.
위로 쌓는 과정에서는 열이 발목을 잡는다. 적층 수가 늘수록 발열이 커지고 칩은 더 얇아져야 한다. 휘어짐과 수율까지 잡지 못하면 아무리 빠른 D램을 써도 제 성능을 내기 어렵다. HBM 경쟁이 '더 빠르게'에서 '더 잘 설계하고 쌓는' 싸움으로 고도화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에는 메모리를 단순한 부품으로 보기 어려워졌다"며 "국내 업체들도 칩 공급자에 머물지 않고 고객사와 AI 시스템을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로 역할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