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27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한국은행이 지난달에 이어 두 차례 연속 금리를 올리는 ‘백투백 인상’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예상보다 강한 경기와 좀처럼 꺾이지 않는 근원물가는 추가 인상 쪽에 힘을 싣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이 안정된 데다 가계 빚이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선 점은 부담이다. 금리를 올려야 할 이유와 서두르기 어려운 이유가 동시에 커지면서 한은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27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현재 연 2.75%인 기준금리 조정 여부를 결정한다. 한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0.25% 포인트 올렸다. 3년6개월 만의 인상이었다.
당시 금통위는 추가 인상 가능성도 분명히 열어뒀다. 이에 시장에서는 한은이 이번 달에도 0.25% 포인트를 올려 기준금리를 3.00%로 높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지난달 인상의 효과를 한 차례 더 지켜본 뒤 10월로 추가 인상을 미룰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백투백 인상론에 가장 힘을 싣는 건 물가다. 7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8% 올라 6월 3.2%에서 상승 폭이 둔화됐다. 석유류 가격 등이 내려가면서 석 달 만에 다시 2%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물가의 기조를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오히려 더 올랐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7월 2.6%로 전월 2.5%보다 높아졌다. 2023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유가 등 외부 충격보다는 서비스 가격과 소비 수요 등 국내 요인에 따른 물가 압력이 예상보다 오래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생산자물가가 국제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전월보다 떨어진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다만 중동 정세에 따른 국제유가 변동 가능성과 공공요금 등 물가 상방 요인이 남아 있어 한은으로서는 소비자물가가 2%대로 내려왔다는 이유만으로 긴장을 풀기 어렵다.
경기 역시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있다.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0.6%,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성장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호조가 이어지면서 한은이 기존에 예상했던 것보다 경제 성장세가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에서는 한은이 이번 금통위와 함께 발표할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통상 중앙은행은 경기 침체 우려가 크면 금리를 올리기 어렵지만,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아지면 물가 안정에 정책의 무게를 더 실을 여력이 생긴다.
한은 내부에서도 추가 인상 필요성을 시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11일 유상대 당시 한은 부총재는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특별한 경기 충격 요인이 없다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말했다. 경기 회복 과정에서 수요 압력이 근원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문제는 추가 인상 자체보다 ‘지금 당장’ 올릴 필요가 있느냐다. 한때 한은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환율은 최근 상당 부분 안정됐다. 지난 6월 1500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1300원대로 내려왔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국내 물가를 자극할 뿐 아니라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까지 높이는 만큼 한은이 금리를 올려야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최근 환율이 빠르게 내려오면서 적어도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금리를 서둘러 올려야 한다는 압박은 이전보다 약해졌다. 새로 취임한 권민수 한은 부총재도 최근 금리 인상의 효과뿐 아니라 성장과 금융안정에 미칠 부작용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했다.
가장 복잡한 변수는 가계부채다. 올해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2019조8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25조9000억원 늘었다. 사상 처음 2000조원을 넘어선 데다 증가 속도도 빨라졌다. 주택 거래 증가에 따른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증시 투자 등과 관련된 기타대출까지 늘어난 영향이다.
가계부채는 한은 입장에서 금리를 올려야 하는 이유인 동시에 쉽게 올리지 못하는 이유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다시 집값과 금융자산 가격을 자극하고 대출 증가세를 키운다면 금리를 올려 금융 불균형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실제 한은도 지난달 금리를 올리면서 수도권 주택가격과 가계대출 증가를 주요 금융안정 위험으로 지목했다.
반대로 이미 가계가 2000조원이 넘는 빚을 떠안은 상황에서 금리를 연속으로 올릴 경우 충격도 커진다. 시장금리가 이미 상승한 상황에서 기준금리까지 추가로 오르면 변동금리 대출을 중심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고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자영업자와 취약차주의 연체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한은으로서는 가계대출이 더 불어나기 전에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그동안 쌓인 가계대출이 워낙 많아 금리를 세게 올리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놓인 셈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동산과 금융시장 흐름도 살펴야 한다. 수도권 주택가격과 대출 증가세가 다시 강해질 경우 연속 인상의 명분은 커지지만, 최근 정부의 대출·세제 정책과 지난달 금리 인상의 효과가 아직 충분히 나타나지 않은 만큼 한 달 정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에 이번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를 곧바로 연 3.00%로 올리는 방안과, 금리를 동결하면서 추가 인상을 강하게 예고하는 ‘매파적 동결’이 주요 선택지로 거론된다.
백투백 인상을 택한다면 한은이 물가와 가계대출 증가 등 금융 불균형 위험을 더 크게 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반대로 동결할 경우에도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로 해석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성장세가 예상보다 강하고 근원물가가 2%대 중반에 머물고 있는 만큼 추가 인상 가능성은 그대로 열어둔 채 시점만 늦추는 선택이 될 수 있어서다.
결국 이번 금통위의 핵심은 ‘추가로 올릴 것이냐’보다는 ‘굳이 이번 달에 연속해서 올려야 하느냐’가 될 전망이다. 물가와 경기만 보면 추가 인상 명분은 충분하지만, 환율 안정과 가계부채, 시장금리 상승 등까지 감안하면 속도 조절론에도 힘이 실린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기와 근원물가 흐름만 놓고 보면 추가 인상 필요성은 이전보다 커졌지만, 환율이 안정된 상황에서 2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부담까지 감수하면서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려야 할 정도로 시급한 상황인지를 놓고 금통위의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