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개발사 벗어나 자체 오픈 AI ‘네모트론’ 고도화 전략
독점 규제 피하고 인재·기술만 싹쓸이… 신변종 전략
AI 경쟁 격화… 美 중심 ‘오픈소스 AI 연대’ 가능할까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로이터 연합뉴스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엔비디아가 AI 소프트웨어 패권까지 틀어쥐기 위해 작심했다.
엔비디아는 코딩 전문 AI 스타트업 풀사이드(Poolside)의 AI 구축 핵심 시스템인 ‘모델 팩토리’(Model Factory)에 대한 비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핵심 연구 인력 100여 명을 대거 흡수하기로 했다.
이번 계약 금액은 라이선스 비용 60억달러(약 8조3280억원)와 별도의 지분 투자 10억달러(1조3880억원)를 합쳐 총 70억달러(약 9조7160억원) 규모에 달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같은 과감한 거액 투자의 배경에는 중국 AI 세력의 거센 추격과 빅테크 중심의 폐쇄적 AI 생태계에 대한 강력한 견제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딥시크, 큐원 등 고성능 오픈소스 모델들이 쏟아져 나오며 글로벌 개발자 생태계를 무서운 속도로 침투하고 있다. 동시에 오프라인 및 클라우드 진영의 빅테크 기업들 역시 폐쇄형 AI 모델을 가두어 두며 엔비디아의 하드웨어 독점력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엔비디아는 이러한 양면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주도의 강력한 오픈 AI 생태계를 직접 재편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엔비디아가 이번에 확보한 풀사이드의 ‘모델 팩토리’는 단지 하나의 AI 모델이 아니라, 데이터 수집부터 모델 학습, 강화학습,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거대한 ‘AI 제조 공장’ 시스템이다. 풀사이드는 70여명에 불과한 소수 정예 연구진으로 이 시스템을 활용해 기존 거대 모델들에 육박하는 성능의 코딩 모델 ‘라구나’(Laguna)를 자체 제작하며 기술력을 검증받았다.
엔비디아는 확보한 시스템과 인력을 자사의 오픈소스 AI 라인업인 ‘네모트론’(Nemotron) 고도화에 즉각 투입해 글로벌 개발자들이 중국산 오픈 모델에 의존하지 않고도 최상급의 AI를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줄 계획이다.
이 전략은 엔비디아의 비즈니스 모델이 하드웨어 공급업체에서 ‘전방위 AI 인프라 플랫폼’으로 완전히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칩 시장에서 빅테크 고객사들의 자체 칩 개발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엔비디아는 고성능 하드웨어 위에 독보적인 AI 모델 개발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칩을 구매하는 것만으로 최첨단 오픈소스 AI 제작 생태계에 곧바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듦으로써 글로벌 AI 산업 전반에 대한 엔비디아의 생태계 통제력을 견고히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이번 거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반독점 규제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신종 M&A 방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엔비디아는 풀사이드라는 법인 전체를 통째로 매수하는 전통적 인수합병 대신, 핵심 기술의 비독점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기술진 대다수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건네는 구조를 선택했다. 앞서 추론 칩 기업 그록(Groq)에 200억달러, 네트워크 기술 기업 엔파브리카(Enfabrica)에 9억 달러를 집행했던 것과 동일한 수법이다. 엔비디아는 이 세 건의 거래를 통해 무려 270억달러(약 37조4760억원)를 투입하면서도 복잡한 합병 심사나 법적 리스크를 완전히 우회하며 핵심 기술과 인재를 속전속결로 내재화하는 데 성공했다.
엔비디아의 이번 60억달러 결단은 단순한 기술 구매를 넘어, 중국의 AI 공세에 맞서 미국 중심의 오픈 AI 헤게모니를 사수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무적의 AI 제국을 완성하려는 정교한 장기 전략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AI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빅테크와 국가 간 격전 속에서 엔비디아가 그리는 오픈 생태계 판도가 향후 산업계에 어떤 지각변동을 가져올지 전 세계 IT 업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