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00만원에 질환 위험, 키·IQ·MBI 선택
환경 영향 간과, 배아 표본 적어 한계 뚜렷
"질환 예방 뒤에 숨은 상업적 마케팅 불과"
게티이미지뱅크체외수정(IVF)과 유전자 분석을 결합한 배아 선별 기술로 부모가 원하는 키나 지능지수(IQ)를 가지면서 유전 영향이 있는 질환의 발병 위험은 낮은 아이를 낳게 해준다고 주장하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해 ‘맞춤형 아기’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배아나 유전자 기술이 질병 예방을 넘어 태어나기도 전에 아기를 선별하는 방식으로 상업적 활용이 확대되는 데 대해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해질 거란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23일 바이오·헬스 업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여러 기업이 단일 혹은 여러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 질환의 발생 위험을 배아 단계에서 예측하는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가장 완벽한 아기를 가지세요’란 문구를 앞세운 뉴클리어스지노믹스는 배아 단계에서 당뇨병, 암, 고혈압을 포함해 2,000가지가 넘는 질환이 미래에 발병할 위험을 점수로 매겨준다. 심지어 키와 IQ,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깔, 체질량지수(BMI), 근력 정도까지 알려준다. 오키드헬스와 헤라사이트 역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검사 비용은 헤라사이트의 경우 최대 5만 달러(약 6,900만 원)다.
이들은 난자와 정자를 체외에서 수정해 여러 개의 배아를 만든 뒤, 각 배아에서 채취한 세포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존 데이터베이스 정보와 대조해 배아의 형질과 질환 발생 위험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2번 배아는 남아로 예측되며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갈색이고, 제2형 당뇨병 위험은 평균보다 20%포인트(p) 낮은 반면 알츠하이머병 위험은 7%p 높다는 식이다.
서비스를 의뢰한 부모는 여러 배아 중 원하는 형질1을 지니면서 미래에 병이 걸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배아를 '선택'하게 된다. 이를 자궁에 이식하면 ‘최고의 아기(Best baby)’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 기업의 논리다. 뉴클리어스지노믹스는 “질병 예방의 가장 좋은 시기는 임신 전”이라고까지 했다.
사실 이와 비슷한 시도는 수년 전부터 있었고, 학계는 의학적 근거를 들어 계속해서 경고해왔다. 질환 발병과 키·IQ 같은 형질이 유전 요인뿐 아니라 다양한 환경 요인의 영향도 받는다는 건 이미 정설이다. 2022년 영국 옥스퍼드대와 호주 멜버른대 공동 연구진은 “배아의 유전자 검사 시점과 질환이 발현하는 시점 사이에 수십 년의 시간 괴리가 있고, 질환은 개인의 식습관과 운동, 거주 환경, 의료 기술 발달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배아 단계의 유전자 분석만으로 미래 발병 위험을 예측하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유럽생식의학회 학술지(Human Reproduction)에선 IVF로 얻을 수 있는 배아의 수가 2~5개에 그친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했다. 발병 위험이 통계적으로 유효하려면 수십 개 이상의 배아를 대상으로 분석해야 하는데, 표본 수가 적으니 결과의 신뢰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9년 국제학술지 ‘셀’에는 형질이 우수한 배아를 골라도 키는 평균 2.5㎝, IQ는 2.5 높아지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연구가 실렸다. 김희연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배아 유전자를 대조할 데이터베이스가 특정 인종에 편중된 점도 한계”라고 짚었다.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선 부모의 어긋난 욕심과 이를 상업화하려는 기업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지향 분당차병원 난임센터 교수는 “충분히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정상 배아임에도 질환 위험 점수가 조금 높다는 이유만으로 폐기되는 건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며 “질환 예방 명분 뒤에 숨은 상업적 마케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생식의학회도 “임상적 유용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윤리적 우려 역시 크다”며 생명의 수단화, 자녀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1 형질생물이 갖고 있는 성질이나 겉모습 같은 고유한 특징. 유전학에서 주로 생물의 생김새나 신체 특성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