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렌터카 서울역 지점. / 제공=롯데렌탈어피니티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불허로 딜을 포기한 틈을 타, TPG는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롯데렌탈을 낚아챘다. 렌터카 업계 1·2위 통합이라는 어피니티의 '빅픽처'가 깨지면서, 일각에서는 어피니티가 2위 사업자인 SK렌터카의 조기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다급한 처지에 놓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조각난 빅픽처…SK렌터카 엑시트 타임라인 앞당기는 요인들이번 롯데렌탈 매각 성사는 어피니티 입장에선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어피니티가 지난해 3월 롯데 측과 체결했던 주식매매계약(SPA) 조건은 롯데렌탈 지분 56.2%를 1조5700억원(주당 약 7만7000원 선)에 인수하는 것이었다.
반면 이번에 등판한 TPG가 맺은 계약은 지분 61.2%를 1조3100억원(주당 약 5만9000원)에 가져가는 조건이다. 공정위 심사가 장기화하다 무산되면서 유동성 확보가 다급해진 롯데그룹의 약한 고리를 TPG가 파고든 결과다.
어피니티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막대한 시간과 실사 비용을 들여 딜의 판을 다 깔아놨지만, 정작 열매는 자신들보다 5%포인트(p) 더 많은 지분을 2600억원이나 싸게 인수한 TPG가 가져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PEF의 일반적인 포트폴리오 보유 기간이 3~5년임을 고려하면 다소 이른 시점이지만, 시장에서는 어피니티가 지배구조 개편을 시작으로 SK렌터카의 조기 엑시트를 강도 높게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우선 전략의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당초 어피니티의 계획은 SK렌터카와 롯데렌탈을 합쳐 점유율 35% 이상의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형성한 이후 강력한 플릿(카쉐어링과 렌터카 등 상업적으로 운용되는 차량) 구매력과 중고차 수출망을 무기로 몸값을 끌어올려 매각하려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공정위의 불허로 볼트온 구상은 백지화되면서 한계에 봉착했다. 독자 성장만으로는 밸류(기업가치)를 드라마틱하게 올리기 힘들어서다. 그저 5~7% 수준으로 추정되는 시장 성장률에 기대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은 SK렌터카의 희소성을 높였다. TPG가 롯데렌탈을 품으면서 국내 대형 렌터카 시장에서 '즉시 인수할 수 있는 업계 톱티어 매물'은 SK렌터카가 유일해졌다. 중고차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와 모빌리티 인프라 진출을 노리는 완성차 업체나 대형 유통 그룹 등 전략적 투자자(SI)들에게는 SK렌터카가 '최후의 카운터파티(Counterparty)'다. TPG가 롯데렌탈을 완전히 장악하고 밸류업을 완료하기 전이 희소성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제값을 받아낼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는 평이다.
경쟁사인 TPG의 등판에 따른 '격차 확대' 우려도 조기 매각을 자극하는 요인이다. 우버와 카카오모빌리티 등 글로벌 모빌리티 밸류업 경험이 풍부한 TPG는 이번 딜을 100% 자기자본(에쿼티)으로 소화하며 롯데렌탈의 재무 부담을 없앴다. 무차입 구조의 롯데렌탈이 대규모 자금력을 바탕으로 B2C 중고차 매매와 차량 구독 등 신사업 영역을 선점할 경우 SK렌터카는 마케팅과 차량 조달 금리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1위와의 실적 및 몸값 격차가 벌어질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내부수익률(IRR) 하방 압력도 지적할 만하다. 어피니티는 당초 SK렌터카와 롯데렌탈을 묶어 1조원 중반대의 인수금융을 일으키고 조달 금리를 낮춰 출자자(LP)들에게 투자금을 리캡(중간 분배)하려던 계획이었다.
그러나 롯데렌탈 인수가 무산되면서 이 같은 펀딩 플랜이 백지화됐다. 에쿼티로 대부분 충당한 8200억원의 SK렌터카 매입 대금이 고스란히 묶이게 된 셈이다. PEF 특성상 인수금융 없이 에쿼티 비중이 높을수록 IRR은 낮아지게 된다. 아울러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증가세가 더딘 상황에서 보유 기간이 길어지면 IRR은 추가로 급락한다.
SK렌터카의 경우 추가 M&A를 통한 퀀텀점프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결국 펀드 수익률 방어와 LP 대응을 위해서라도 SK렌터카의 밸류업을 기다리기보다 조기 엑시트 혹은 독자적인 자본재조정을 서두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PC 역합병 감행…'단독 엑시트' 사전 작업 본격화어피니티는 SK렌터카 '볼트온(Bolt-on, 동종사 추가 인수)' 전략이 완전히 깨진 현재 '단독 매각'의 포석을 깔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SK렌터카는 어피니티가 인수를 위해 설립했던 특수목적법인(SPC) '카리나모빌리티서비시스'를 역합병하며 지배구조를 단순화했다.
이를 시장에서는 단독 엑시트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풀이한다. 롯데렌탈 합병이라는 메가 시너지가 사라진 상황에서 지배구조 리스크를 제거하고, 오직 SK렌터카의 자체적 현금 창출력과 본원적 경쟁력만으로 시장의 평가를 받겠다는 정공법을 택한 셈이다.
어피니티의 롯데렌탈 딜 무산은 딜 실패 이상의 타격으로 돌아왔다. 당시 어피니티는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시정 조치)'을 굳게 기대하며 막판까지 롯데 측과 협의를 진행했으나 전원회의에서 전격 불허 처분을 받으며 완전히 허를 찔렸다. 조 단위의 초대형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딜이 규제 리스크를 넘지 못하고 백지화되면서 내부적으로 큰 상흔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본사가 한국 대표 등 경영진에게 딜 무산의 책임을 강하게 물으며 리더십이 흔들리는 뼈아픈 내홍까지 겪어야 했다.
시장 관계자는 "홀로서기에 나선 SK렌터카를 어피니티가 어떤 방식과 밸류에이션으로 엑시트할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