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조선디자인랩 오어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스1주주가 원한 건 배당 아닌 자사주 소각
삼성전자가 21일 이사회에서 의결한 올해 주주 환원 규모는 최대 110조원이다. 기존 최대였던 2020년 20조3000억원의 5배쯤 된다.
이 가운데 3분기(7~9월)에 30조원 정도를 현금 배당으로 지급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10월 말 이사회에서 확정하기로 했다. 함께 발표한 자사주 매입 15조원은 임직원 보상용이다. 주주 환원 목적의 자사주 매입·소각은 이번 발표에 담기지 않았다.
시장의 눈높이는 그보다 높았다. 발표 전 150조원 안팎 관측까지 나왔다. 소액 주주 플랫폼 액트는 지난 3일 삼성전자가 스스로 약속한 잉여현금흐름(FCF)의 50%인 45조5000억원을 전액 자사주 매입·소각에 투입하라고 요구했고, 임시 주주총회 소집도 추진하고 있다. 배당은 발행 주식 수를 그대로 두지만 소각은 주식 수 자체를 줄여 주당 가치를 끌어올린다는 논리다. 삼성전자 소액 주주는 올해 상반기 기준 797만명이다.
환원 규모가 기존과 변동 없었던 점도 실망을 키웠다. SK하이닉스는 19일 자사주 소각을 발표하면서 2025~2027년 누적 FCF 기준 환원 규모를 기존 ‘50% 범위 내’에서 ’50% 이상’으로 올렸다. 상한이던 50%를 하한으로 바꾼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2024~2026년 누적 FCF의 50%라는 기존 원칙을 그대로 적용했고, 기준을 높이겠다는 언급은 없었다. 2027년 이후 주주 환원 원칙도 제시되지 않았다. 액트가 “투자와 임직원 보상은 2040년, 2035년까지 계획이 있는데 주주 환원만 2027년 이후가 비어 있다”고 지적한 대목이다.
삼전 “소각하면 금산법 10% 한도에 걸려”
삼성전자가 배당에 무게를 싣는 배경엔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이 있다. 금산법 24조는 같은 기업 집단에 속한 금융기관이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 총수의 10% 이상을 보유하면서 그 회사를 사실상 지배하는 것으로 인정되면 금융위원회 승인을 받도록 규정한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각각 8.51%, 1.49%로 합산 10.0%다.
삼성전자가 보통주를 사들여 소각하면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 총수가 줄어 두 회사 지분율은 자동으로 올라간다. 한도를 지키려면 초과분을 팔아야 한다. 실제로 지난 3월 자사주 소각 때 삼성생명은 624만4658주, 삼성화재는 109만1273주를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로 처분했다. 매각 대금은 1조4300억원쯤이다. 현금 배당은 주식 수를 건드리지 않아 이런 부담이 없다.
40조원어치 자사주를 사들여 전량 소각하겠다고 밝힌 SK하이닉스는 사정이 반대다. 지주사 SK스퀘어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SK하이닉스 지분을 20% 이상 유지해야 한다. 소각으로 발행 주식 수가 줄면 지분율이 올라 규제 부담이 오히려 줄어든다.
우선주 소각 대안 거론되나 한계
증권가에선 보통주 대신 우선주를 소각하는 절충안이 거론된다. 삼성전자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어 금산법 한도 산정 기준인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에서 빠진다. 우선주를 소각해도 금융 계열사 지분율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벌어진 가격 차이도 명분이 된다. 21일 종가 기준 삼성전자우는 보통주보다 26.5% 낮다. 뒤집으면 보통주가 우선주보다 36% 비싸다. 삼성전자는 2015년 첫 자사주 매입 때 매입 대금의 30%를 우선주에 배분한 전례가 있고, 창사 이래 누적 소각 물량의 16.9%가 우선주였다. DS투자증권은 내년 1월 말 이사회에서 확정될 잔여 재원 60조~80조원 가운데 10조~20조원이 자사주 매입·소각에 쓰이고, 그 상당 부분이 우선주에 집중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우선주 소각은 보통주 유통 물량과 의결권 지분율을 건드리지 않아 보통주 주주에게는 간접 효과만 있다. 우선주를 소각하면 이익을 나눠 갖는 총 주식 수가 줄어들고 보통주 1주에 귀속되는 회계적 이익과 배당 몫이 늘어난다. 매입 수요가 우선주에만 몰리므로 주가 상승도 우선주에만 일어난다. 보통주를 소각하라는 주주 요구와의 간극은 그대로 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