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사 캐치, Z세대 취준생 1025명 조사SK하이닉스가 지난 20일 시작한 신입 사원 수시 채용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학력 제한 폐지’였다. 그러나 AI(인공지능) 업계에선 이보다 자기소개서를 없앤 것에 주목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자기소개서를 받는 대신 반나절 심층 면접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면접이 20~30분 안팎으로 진행됐지만 이번 채용부터 지원자가 반나절 동안 과제를 수행하고 심층 면접을 받아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이를 통해 AI 응용 능력, 인문학적 소양, 논리적 사고력을 종합 평가할 예정이다.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 에어로케이도 올해부터 국내 항공업계 최초로 자소서 없는 채용을 도입했다. 현장 대응 역량과 실제 경험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채용 제도를 바꾼 것이다.
생성형 AI가 확산하면서 취업의 필수 항목이었던 자기소개서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취업 준비생이 생성형 AI를 활용해 자기소개서를 뚝딱 작성할 수 있게 되면서 변별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생성형 AI 시대에 역설적으로 ‘생성형 AI 프리’ 능력이 지원자의 중요한 역량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생성형 AI를 능숙하게 다루더라도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면 창의성이 뒷받침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I 스팸으로 전락한 자기소개서
자기소개서를 AI로 작성하는 것은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이미 당연한 일이 됐다.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는 지난달 Z세대 취업 준비생 1025명을 대상으로 ‘AI 활용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8%가 취업 준비에 AI 도구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AI 도구 활용 방식으로는 ‘자기소개서 초안 작성’이 84%로 가장 많았다.
취업 준비생 대부분이 AI에 자소서 작성을 맡기면서 자소서로 취준생의 기본 소양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자소서에는 생성형 AI의 작문 실력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학사 캐치가 지난 4월 구직자 16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간소화가 시급한 전형을 묻는 질문에 자기소개서(36%)가 1위였는데, 그 이유로는 ‘변별력이 없어서’(56%)를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김정현 진학사 캐치 본부장은 “어차피 AI가 쓴다는 것을 기업들도 알고 있고 읽어도 다 똑같은 내용이기 때문에 자기소개서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대신 대면 면접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자기소개서 폐지는 일본 기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IT 기업 소프트뱅크는 올해 초 신규 입사 지원자를 대상으로 자기소개서를 받지 않기로 했다. 대신 지원자가 제출한 1분짜리 자기소개 영상을 AI가 분석해 합격·불합격을 판별하고, 불합격 판정을 받은 영상을 인사 담당자가 한 번 더 검토해 최종적으로 불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요코하마은행 또한 올해부터 자기소개서를 없애고 1분 분량의 영상으로 지원자가 자신의 경험과 성과를 설명하도록 채용 방식을 바꿨다. 일본 오사카에 본사를 둔 로토제약은 2027년 4월 채용부터 자기소개서에 기반한 서류 전형을 폐지한다. 대신 인사 담당자와 15분간 직접 인터뷰를 채용의 첫 단계로 도입한다.
AI가 자소서 작성 후 지원까지
AI는 스스로 자소서를 작성한 뒤 입사 지원까지 도맡아 처리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AI가 구직자의 프로필 정보를 토대로 맞춤형 자소서를 쓴 뒤 수만 건의 채용 공고를 분석해 알아서 지원하는 서비스까지 나온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 AI 자동 입사 지원 플랫폼인 ‘커리어붐’은 한 달에 59.99달러만 내면 무제한 자소서 작성, 무제한 일자리 검색, 월 30건 자동 구직 지원 등을 제공한다. 지원자가 자신의 이력서나 링크트인 프로필만 등록해 두면 AI가 모든 업무를 알아서 처리하는 것이다. 또 다른 AI 자동 지원 플랫폼 ‘레이지어플라이’도 연간 1099달러를 내면 AI가 지원자의 이력서 프로필 20개를 만들어 매일 1500개의 지원서를 접수한다. 2023년 미국의 한 프로그래머는 노트북 두 대에 레이지어플라이 확장 프로그램을 켜두고 잤더니 하룻밤 사이에만 약 1000곳에 자동으로 지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소서를 가장한 ‘AI 스팸’이 쏟아지면서 기업 인사팀의 업무만 가중되고 있다. IT 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지원자의 기본 소양과 문서 작성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자소서였는데 이제 그 소임을 다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