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성 이미지1. 마지못해 서명한 한 장
2000년 밀레니엄의 문이 열리던 해, 나는 교단에 첫발을 내디뎠다. 젊음은 무적이라 여겼고, 보험은 내 사전에 없는 단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교무실 문이 열리고, 임용 시험에 거듭 실패한 대학 동창이 들어섰다. 보험 일을 막 시작한 그는 머쓱하게 가입을 부탁했다. 홀로 되신 어머니를 모시는 처지가 나와 같아 동병상련이었다.
그는 말했다.
“현재로 미래를 앞당겨 살 수 있는 건 손해보험뿐이야.”
그때는 그 말의 뜻을 몰랐다. 실손에 암보험, 사망보험까지 패키지로 묶인 보험료가 부담스러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입원하셨고, 보험이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일상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홀어머니를 위한 효도로 시작한 가입이, 이후 나 자신을 위한 선택으로 이어졌다. 겨울이 오기 전에 뿌리를 내리는 동백나무처럼, 손해보험은 폭풍이 오기 전 조용히 땅속에 박힌 닻이었다. 철봉을 붙잡을 힘이 생기기도 전에 누군가 먼저 그 철봉을 세워둔 셈이었다.
국어 교사로서 나는 늘 아이들에게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는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정작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준비는 교무실 한 귀퉁이에서, 동창의 부탁을 이기지 못해 마지못해 서명한 그 순간에 이루어졌다. 가르치는 자가 삶에게 배운 첫 번째 역설이었다. 그 한 장이 스무 해 뒤 내 인생을 두 번 구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2. 어머니의 겨울
2018년 겨울, 어머니는 인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 나는 망설임 없이 휴직계를 제출하고 어머니 곁을 지키는 전담 간병인의 길을 택했다. 항암이 시작되자 어머니의 몸은 무너졌다. 구역질, 탈모, 섬망. 하루 여섯 번 비위관으로 미음을 밀어 넣으며 나는 삶이 얼마나 서툰 반복인지를 배웠다. 어느 날 밤, 어머니는 거울을 보시더니 조용히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전기 이발기를 들고 남은 머리카락을 깨끗이 밀어드렸다. 떨어지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내 가슴을 베어내는 것 같았다.
그 긴 싸움에서 ○○손해보험은 말없이 내 옆에 있었다. 입원비와 치료비, 후유 보상까지 청구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어머니 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휴직으로 줄어든 수입의 빈자리를 보험이 채워주었고, 그 덕에 나는 간병인이 아닌 아들로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있었다. 손해보험은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사 주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을 시간, 눈을 맞출 시간, “엄마 사랑해요”를 속삭일 시간을. 어머니는 그 혹독한 겨울 속에서도 동백꽃처럼 끝까지 붉게 버티셨다. 손을 놓지 않으면 봄이 온다고, 당신의 몸으로 증명하셨다.
섬망으로 계절을 잃으신 날에도 어머니는 “선운사에 동백꽃이 피었을 텐데”라 하셨다. 봄을 기억하는 것이 곧 철봉을 붙잡는 힘이었다. 보험이 생계를 지탱하는 동안, 어머니는 그 믿음으로 겨울을 버티셨다. 2020년 새해 첫날 새벽,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쥔 채 눈을 감으셨다. 훗날 낡은 휴대폰 임시저장함에서 발견한 미전송 문자-“아드 ㄹ고마어”-는 마지막 힘으로 눌렀던 사랑의 고백이었다.
3. 나의 겨울
슬픔을 채 삭히기도 전인 2020년 가을, 나는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하필 어머니가 계셨던 암병동 6층, 같은 침대였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이어지던 2022년 여름,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사망률 40~50%의 중환자실에 실려갔다. 어머니가 마지막을 보낸 바로 그 자리에서, 나도 인공호흡기 소리를 들었다. “휘이익, 푸슈.” 기관삽관 튜브가 목구멍을 파고들 때, 나는 어머니가 홀로 견뎌야 했던 그 고통이 얼마나 시리고 외로운 것이었는지를 비로소 알았다.
그 절박한 시간 속에서도 보험은 흔들리지 않고 내 곁에 있었다. 항암부터 방사선, 각종 검사와 치료, 후유 부분까지 손해보험으로 처리하면서 교단을 떠난 긴 공백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안정적인 직업이라 자만했던 내 삶에서, 손해보험의 존재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말을 잃은 중환자실의 밤, 간호사가 조용히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님도 이 자리에서 끝까지 아들 생각하셨어요. 선생님도 버티실 수 있어요.”
그 말에 나는 울컥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철봉을 붙잡았고, 같은 손길에 기대어 버텼다. 보험이 몸을 지탱하는 동안, 사람의 온기가 마음을 붙들었다.
방사선 대기실 TV 속 철봉에 매달린 여학생을 보며 깨달았다. 저 아이도, 어머니도, 나도 결국 같은 철봉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보험은 그 철봉을 조용히 높이 세워준 손이었다. 나는 다시 펜을 들었고, 시를 썼고, 2021년 봄 문예지에 등단했다.
4. 봄은 온다
202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와의 약속대로 선운사를 찾았다. 동백꽃 길을 걸으며 속삭였다.
“엄마, 약속 지켰어요.”
붉은 꽃잎 하나가 내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겨울을 이긴 동백꽃. 어머니와 내가 각자의 겨울을 견디며 피워낸 생명의 꽃잎이었다. 어머니는 “아드 ㄹ고마어”라는 사랑의 꽃잎을 남기셨고, 나는 시와 글이라는 꽃잎을 피워냈다. 그리고 그 두 꽃잎 사이에는 언제나 손해보험이 있었다. 청구서 대신 손을 내밀고, 숫자 대신 시간을 건네준 그 존재가.
이제 나는 안다. 철봉은 혼자 버티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 그것을 세워주고, 높이를 맞춰주고, 떨어질 때 받아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손해보험은 내 인생의 그 철봉이었다. 동창이 교무실 문을 두드리던 그 날, 그가 세워준 철봉이 어머니를 지탱했고, 다시 나를 지탱했다. 한 사람의 선한 권유가 두 생명의 겨울을 건넌 것이다. 손해보험의 가치는 계약서 안에 있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지막 손길 속에, 중환자실의 어두운 새벽 속에, 선운사 동백꽃 한 송이 속에 깃들어 있었다. 쉰일곱의 나이에 나는 처음으로 다시 출발선에 섰다.
이제 주말이면 병원을 찾아 환자들에게 시를 읽어주며 다른 이들의 철봉이 되어주려 한다. 동백꽃이 혹한을 견뎌 피어나듯, 삶은 버티는 자의 것이다. 그 버팀 곁에 손해보험이 있었기에, 나의 부활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