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시 “인플레이션 목표 2% 확고”
9월 금리 인상 확률 57.5%로 급등
트럼프 행정부 통화정책 엇박자 심화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8일 취임 후 첫 잭슨홀 연설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놨다. 금리 인하를 기대했던 트럼프 행정부와 정반대 방향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연준이 ‘충돌 코스(collision course)’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28일 와이오밍주 잭슨 홀에서 열린 잭슨홀 경제 심포지엄에서 케빈 워시 연방준비은행 의장(왼쪽)이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오른쪽)와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워시 의장은 28일 미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경제정책 심포지엄 기조연설, 이른바 잭슨홀 미팅에서 “(금리 인하에 대한) 연준 기준은 이렇다. 기조적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향해 분명하고 충분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연준에는 할 일이 있다(we have work to do)”고 했다. 잭슨홀 미팅은 캔자스시티 연은이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경제학자들을 불러 모아 매년 8월 여는 국제 통화정책 회의다.
워시 의장은 올해 5월 연준 의장 취임 후 이번에 첫 잭슨홀 미팅 연단에 섰다. 그는 기조 연설에서 단기 금리를 “연준의 양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수단(predominant tool)”이라고 규정했다. 워시 의장은 연준이 물가 목표치를 손보려 한다는 시장 관측도 단호하게 일축했다. 그는 연준이 목표로 하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기준 2%를 “확고하고 고정된 목표(firm, fixed target)”라고 재차 강조했다. 현재 금리 수준을 두고는 “전반적인 금융 여건을 긴축적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실제 워시 의장이 근거로 든 물가 지표는 모두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 연준이 선호하는 PCE 가격지수는 7월 전년 같은 달보다 3.7% 올랐다. PCE 가격지수보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도 3.4%를 기록했다. 워시 의장은 “수치들이 더 우려스럽다”며 “이들 수치가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 2%를 웃돌고 있다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워시 의장이 공개적으로 미국 인플레이션에 대해 우려를 밝힌 전례가 드물다며 이번 연설을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워시 의장은 5월 취임 이후 향후 금리 경로를 미리 언급하는 ‘포워드 가이던스’가 증시와 국채 시장을 왜곡한다며 공개 발언을 거의 내놓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하면서 별 다른 판단 기준을 밝히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연설을 두고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겠다는 결의를 가장 강력하게 표명했다”며 “연준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해 가장 명확한 설명을 내놨다”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7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하자 “터무니없다(ridiculous)”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자신의 견해를 지지할 인물을 찾는 검증 과정을 거쳐 워시 의장을 지명했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FT에 “워시는 본인이 추구하는 목표와 그 의도를 놓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며 “이는 지표나 결과와 상관없이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트럼프와 연준을 직접 충돌하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악관은 이번 잭슨홀 미팅 직전 리사 쿡 연준 이사를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로 해임하려는 시도를 다시 꺼내 들며 다시 연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제롬 파월 전(前) 연준 의장 재임 시절 바이든 행정부가 지명한 쿡 이사를 모기지 사기 혐의를 들어 해임하려 했다. 이 시도는 연방대법원에서 절차를 문제 삼으며 무산됐다. 이와 별도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이달 들어 미 국채 장기물 금리가 급등하자 국채 바이백(재매입)을 늘리는 조치를 예고 없이 내놨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20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밖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뉴욕타임스(NYT)는 워시 의장이 금리를 올리면 트럼프 행정부와 부딪히고, 동결하면 물가 대응 의지를 의심받아 시장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투자자들은 잭슨홀 미팅에서 워시 의장이 연설한 직후 연준이 9월 금리를 인상한다는 쪽에 베팅했다. 금리 방향에 돈을 거는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 9월 인상 확률은 발언 전 35% 안팎에서 57.5%로 20%포인트 넘게 뛰었다. 반면 동결할 확률은 42.5%로 내려갔다. 연준은 다음 달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모리스 옵스펠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NYT에 “워시 의장이 등에 여러 표적을 지고 있다”며 “행정부와 시장을 상대로 선전하기 어려운 상황(no-win situation)”이라고 했다.
지난달 FOMC에서도 투표권을 가진 연준 위원 12명 가운데 3명은 금리 인하는 커녕, 0.25%포인트를 인상해야 한다고 표를 던졌다. 아디티야 바브 뱅크오브아메리카 미국 경제조사 책임자는 “8월 고용과 물가 지표가 매우 약하게 나오지 않는 한 9월 금리 인상을 단행할 책임은 워시에게 있다”며 “그러지 않으면 그는 시장 신뢰를 잃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8월 CPI는 FOMC를 나흘 앞둔 다음 달 11일 공개된다.
잭슨홀 미팅에 참석한 유럽 중앙은행 인사들 사이에서도 미국이 물가를 더 죄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로 나왔다. 프리모주 돌렌츠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 겸 슬로베니아 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에 “새로 들어오는 지표를 보면 물가 상황이 저절로 나아질 가능성은 낮다”며 9월 금리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다. 반면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에 “2차 파급 효과가 상당히 억제돼 있고, 노동시장도 한동안 약해지고 있다”며 “당분간은 연준이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웨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FT에 “워시 의장이 매파적(통화 긴축을 선호하는) 신호를 보내려 했다고 본다”며 “다만 트럼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려면 말만 강하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