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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시, ‘물가냐 트럼프냐’…잭슨홀 발언으로 금리인상 가능성 급등

잭슨홀서 “물가 2% 향해 움직여야”…금리인상 시사
인상 확률 35%→57.5% 급등…시장 “행동 보여야”
트럼프와 충돌 가능성…중간선거 앞두고 긴장 고조
“인상하면 백악관과 충돌, 동결하면 시장 신뢰 잃어”

케빈 워시(왼쪽) 미국 연준 의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이 워시 의장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케빈 워시(왼쪽) 미국 연준 의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이 워시 의장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잭슨홀 연설을 통해 취임 이후 가장 분명한 ‘매파’ 메시지를 내놨다.

금리인상을 반기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충돌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워시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 수준인 2%를 향해 충분한 속도로 둔화하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시장에서는 워시 의장이 그동안 고수해온 ‘조용한 연준’ 기조에서 한발 물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통화정책의 방향을 미리 제시하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경계해온 그가 이번에는 어떤 조건에서 금리를 움직일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급부상했다.

문제는 실제 행동이다. 워시 의장이 자신의 발언대로 금리를 올릴 경우 그동안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금리를 동결하면 물가 대응 의지를 둘러싼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백악관과 연준의 긴장이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시장은 워시 의장의 잭슨홀 연설을 계기로 그의 통화정책 판단 기준을 이전보다 훨씬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워시 의장은 과거 연준 이사 시절부터 인플레이션 억제와 통화긴축을 강조해온 대표적인 매파 성향 인사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지난 5월 의장 취임 이후에는 자신의 정책 판단 기준이나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해왔다.

지난달 28~29일 열린 FOMC에서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한 뒤에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심은 강하게 드러냈지만, 어떤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하거나 인하할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워시 의장은 시장에 금리 경로를 미리 알려주는 포워드 가이던스가 금융시장의 가격 형성을 왜곡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을 아끼는 연준’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정책 결정의 최소한의 기준조차 알기 어렵다는 불만이 제기됐고, 연준의 지나친 침묵이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런 워시 의장이 잭슨홀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는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연설에서 “기조적인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향해 분명하고 충분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금리인상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둔화하지 않을 경우 기준금리를 추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워시 의장은 “단기 금리는 연준의 양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라고도 강조했다.

구체적인 물가지표도 직접 거론했다. 연준이 선호하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7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한 데 대해 “수치들이 더 우려스럽다”고 평가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역시 3.4%를 기록하고 있다며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연준 목표치인 2%를 여전히 크게 웃돌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WSJ은 워시 의장의 이번 연설에 대해 인플레이션 억제에 대한 결의를 가장 강하게 표현하면서 연준이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해서도 취임 후 가장 명확한 설명을 내놓았다고 평가했다.

씨티그룹의 네이선 시츠 글로벌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시 “이제 워시 의장이 경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훨씬 더 잘 알게 됐다”며 “매우 유용하고 건설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7월 기자회견 당시와 비교하면 워시 의장의 판단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워시 의장의 발언이 곧바로 금리 전망에 반영됐다.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는 9월 금리인상 확률이 연설 전 약 35%에서 57.5% 수준까지 급등했다. 반면 금리 동결 가능성은 42.5%로 낮아지면서 인상 시나리오가 동결보다 우세해졌다.

다만 시장의 평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워시 의장이 이번 연설을 통해 얻은 신뢰를 유지하려면 결국 9월 FOMC에서 실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아디티야 바브 미국 경제조사 책임자는 “8월 고용과 물가 지표가 매우 약하게 나오지 않는 한 9월 금리인상을 단행해야 할 책임이 이제 워시에게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오늘 얻은 신뢰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연준은 다음 달 15~16일 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앞으로 발표될 고용·물가 지표가 워시 의장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워시 의장의 고민은 통화정책 자체에만 그치지 않는다. 백악관과의 충돌 가능성이 함께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 경제를 위해 금리를 낮춰야 한다며 연준을 공개적으로 압박해왔다. 금리가 내려가면 기업과 가계의 금융비용이 낮아지고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논리다.

이런 상황에서 워시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금리를 올린다면 대통령의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워시 의장이 11월 중간선거를 불과 몇 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백악관과 연준이 ‘충돌 코스’에 들어설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워시는 자신의 목표와 의도에 대해 명확한 선을 그었다”며 “경제지표나 그 결과와 관계없이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트럼프와 직접 충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통화정책 구상을 뒷받침할 인물을 찾는 과정을 거쳐 워시 의장을 선택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런 워시 의장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금리를 올릴 경우 백악관과 연준 사이의 긴장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금리인하 의지는 재무정책에서도 드러난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미 장기국채 금리의 급격한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국채 바이백(재매입) 확대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결국 워시 의장은 어느 쪽을 선택해도 부담을 떠안게 되는 상황이다.

금리를 올리면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하고, 동결하면 인플레이션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자신의 발언과 시장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모리스 옵스펠드 선임연구원은 이런 상황을 두고 “그는 여러 표적을 등에 지고 있다.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오는 9월 FOMC는 따라서 단순한 금리 결정회의가 아니다. 워시 의장이 ‘물가 안정’이라는 자신의 원칙을 실제 정책으로 관철할 수 있는지, 동시에 정치권의 압박에서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첫 번째 본격적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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