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 “열흘 내 전력 완전히 끊길 수도”
“냉각 펌프 멈추면 대재앙”
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 시설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이 치명적인 방사능 유출 사고를 부를 수 있는 대정전(블랙아웃) 위기에 직면했다. 현재 외부 전력망이 차단된 상태에서 비상 발전기로 냉각 시스템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추정된다. 비축한 연료량은 열흘 치 수준에 그쳐 과열로 인한 방사능 유출 대재앙을 우려하는 국제사회 우려가 커지고 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29일(현지시각) 성명을 내고 자포리자 원전 현장에 충분한 디젤 연료를 확보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고 발표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가까운 시일 내에 외부 전력 공급을 복구하거나 추가 디젤 연료를 반입하지 못하면, 원전은 약 열흘 안에 전력 공급이 완전히 끊기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8일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에서 러시아 드론 공격 후 가정용품 및 건축자재 쇼핑몰 현장에 연기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자포리자 원전은 지난 20일 인근 드니프로강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군사 작전 여파로 마지막 남은 330kV(킬로볼트) 외부 전력선 연결마저 끊어졌다. 전력이 끊겨 냉각수를 순환시키지 못하면 원자로가 과열돼 방사능 유출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 원전 측은 가동을 멈춘 원자로 6기와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를 식히는 필수 냉각 펌프를 돌리기 위해 비상 디젤 발전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IAEA는 현장에 파견된 전문가팀을 인용해 “23일 기준 디젤 연료 재고를 점검한 결과, 규제 기준상 최소치인 열흘 분량만 남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러시아형 가압수형 원자로(VVER-1000) 6기를 보유한 설비용량 6기가와트(GW) 규모 유럽 최대 원자력 시설이다. 이 원전은 러시아 침공 이후 2022년 9월부터 전력 생산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원전 통제권을 쥔 우크라이나 측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2025년 3월부터 IAEA 조사단이 연료 저장소에 접근하는 것마저 차단했다.
러시아 역시 여전히 자포리자 원전을 겨냥해 무인기(드론)을 이용한 물리적 타격을 이어가고 있다. IAEA 전문가팀은 “매일 원전 부지 근처에서 폭발음을 듣고 있다”고 이날 로이터에 전했다. 지난 25일에는 냉각 연못 근처를 노린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근무자 2명이 다쳤다. 26일에는 건식 사용후핵연료 저장 구역에서 무인기가 폭발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원전 직원을 위협하거나 핵심 냉각 시설 주변을 공격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핵물질 유출이 없더라도 이는 원자력 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했다. IAEA는 전력망 복구 작업을 위해 원전 일대를 국지적 휴전 구역으로 설정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역에 걸친 다른 원자력 시설 상황도 자포리자 원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체르노빌 원전을 비롯해 남우크라이나 원전과 흐멜니츠키 원전 등 여러 핵시설 주변에서 연일 무인기가 포착되고 있다. 흐멜니츠키 원전에 머무는 IAEA 조사단은 잦은 공습경보를 피해 수시로 방공호로 대피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IAEA는 한국과 영국, 스웨덴 등 국제사회가 제공한 자금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규제 당국에 휴대용 발전소와 방사선 측정기 등 핵심 장비를 긴급 지원하며 재난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