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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형 선박은 블루오션…건조 경험 조선 빅3·HJ重 뱃고동

북극항로가 열렸다 <2> 부울경 조선업의 기회 우리나라 유일의 극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북극 생태계 조사를 위해 북극 해빙에 정박해 있다.  국제신문DB 우리나라 유일의 극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북극 생태계 조사를 위해 북극 해빙에 정박해 있다. 국제신문DB
- 선체·기관·항해시스템 큰 차이
- 일반 상선보다 높은 수준 요구

- 쇄빙선·LNG운반선·내빙 컨선
- 지역 조선사들 건조 기반 갖춰

- 유지·보수·정비 분야 선점 기대
- 조선기자재 업체도 대비 필요

부산항을 떠난 컨테이너선 한 척이 북극해를 통과한다고 해서 북극항로 시대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항로가 상시 물류망으로 자리 잡으려면 그 길을 오갈 선박부터 달라져야 한다. 얼음과 극저온을 견디는 선체, 저온에서도 작동하는 기관과 장비, 얼음 상태를 파악할 항해시스템까지 일반 항로와는 요구 조건이 다르다.

북극항로 개척이 해운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업의 새로운 시장으로 연결되는 이유다. 부산 경남 울산에 세계적인 대형 조선소와 기자재업체가 몰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극항로의 산업적 파급효과 역시 동남권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얼음바다 오가는 배부터 달라져야

지난 22일 부산신항을 출항한 ‘팬스타 아크로호’는 국내 컨테이너선으로는 처음으로 북동항로 시범운항에 나섰다. 화학제품과 자동차 부품 등 실제 화물을 싣고 부산과 유럽을 오가며 운항 기간과 비용, 안전성, 화물 수요 등을 검증하는 항해다.

팬스타 아크로호는 자체적으로 두꺼운 얼음을 깨고 나아가는 전용 쇄빙선은 아니다. 다만 극지 해역 운항을 고려한 내빙 성능을 갖춘 선박이다. 북극을 오가는 배가 모두 쇄빙선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해빙의 두께와 분포, 운항 계절에 따라 필요한 선박 성능은 달라진다. 그러나 얼음이 선체와 추진기에 강한 충격을 주고, 극저온은 갑판 장비와 기관·안전설비 성능까지 떨어뜨릴 수 있어 극지 운항선에는 일반 상선보다 높은 수준의 선체 강도와 장비가 요구된다.

운항 가능 기간을 늘리고 정시성을 확보하려면 요구 수준은 더 높아진다. 선체를 보강하고 저온에 견딜 수 있는 강재와 기자재를 적용해야 하며, 추진장치와 프로펠러 역시 얼음 충격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정부가 북극항로 개척과 함께 국적 내빙·쇄빙선대 확충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30년 한-유럽 정기항로 개설을 목표로 쇄빙 컨테이너선 기술 개발과 극지 운항선 확보를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울산·거제, 극지선박 건조 경험

가장 직접적인 수혜 가능성이 거론되는 곳이 부산과 울산, 거제를 중심으로 한 동남권 조선산업이다.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이미 극지선박 건조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HJ중공업은 국내 최초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를 건조했다. 아라온호는 6950t급의 연구선으로 시속 3노트 속도로 1m 두께의 얼음을 연속 쇄빙하는 성능을 갖췄다. HJ중공업은 비교적 얇은 얼음을 견딜 수 있는 내빙 상선 건조 경험도 풍부하다. HJ중공업 관계자는 “기존 쇄빙연구선과 내빙 컨테이너선 건조 경험을 바탕으로 쇄빙 상선 시장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스웨덴 해사청으로부터 5148억 원 규모의 쇄빙선 1척을 수주했다. 국내 조선소가 해외에서 전용 쇄빙선을 수주한 첫 사례다. 2029년 인도 예정인 이 선박은 얼음을 깨면서 다른 선박의 항해를 지원하는 고부가가치 특수선이다.

거제에도 기술이 쌓여 있다. 한화오션은 지금까지 21척의 쇄빙 LNG운반선을 건조한 실적을 갖고 있다. 지난해에는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차세대 쇄빙연구선은 영하 45도 환경에서 운항하고 1.5m 두께의 얼음을 깨며 전·후진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삼성중공업 역시 극지용 셔틀탱커를 건조한 경험이 있다. 양방향 운항이 가능하고 두꺼운 얼음을 깨면서 극저온 환경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선박이다.

울산의 HD현대중공업과 거제의 한화오션·삼성중공업을 잇는 동남권에는 세계 최대 수준의 조선 생산능력이 집적돼 있다. LNG선과 친환경 선박에서 쌓은 기술에 극지선박 경험까지 갖춘 만큼 북극항로가 확대될 때 새로운 고부가 선박 시장을 선점할 기반은 이미 마련돼 있는 셈이다.

▮조선기자재·개조·MRO까지

북극항로가 만드는 시장은 대형 조선소에서 끝나지 않는다. 극지선은 저온에 견디는 강재와 배관, 고출력 추진장치, 특수 프로펠러, 방빙·제빙 장치, 통신·항법장비 등 일반 상선보다 많은 특수 기자재가 필요하다.

부산·울산·경남에 밀집한 조선기자재업체에도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의미다. 운항 선박이 늘어날수록 수리·정비 수요도 따라온다. 정부 역시 북극항로 정책에서 선박 유지·보수·정비, 이른바 MRO를 주요 연관산업으로 보고 있다. 부산항 신항에는 대형 선박을 수리할 수 있는 수리조선단지 조성도 추진되고 있다. 북극항로를 오가는 선박이 부산에 들어와 화물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연료를 공급받고 점검과 수리를 거쳐 다시 출항할 수 있다면 부산항의 부가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부산조선기자재조합 최금식 이사장은 “부산은 3만t급 이상 대형 선박을 전문적으로 수리할 수 있는 신항 수리조선단지가 아직 조성되지 않았고, LNG 벙커링도 선박 간 공급은 시작됐지만 전용 터미널 등 기반시설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북극항로 시장을 선점하려면 신항 수리조선단지와 친환경 벙커링 인프라를 조속히 구축하는 동시에 지역 기자재업체들이 국가 연구개발 등을 통해 극지용 쇄빙·내빙 기자재 기술과 실적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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