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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매 아빠 역무원 김 과장이 부동산 논문 쓴 까닭은

입사 11년차 지하철 역무원 김유승 과장의 부동산 정책 논문
막차 끊긴 역무실서 AI와 밤샘 연구…KCI 학술지 첫 논문에
가격만 누르는 정책에 던진 물음표, 행동경제학으로 풀어내
김유승 서울교통공사 과장이 근무지인 서울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역사에서 27일 자신이 쓴 ‘매도자의 닻내림 심리와 아파트 가격의 하방 경직성 연구’ 논문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당 논문은 한국부동산원 김유승 서울교통공사 과장이 근무지인 서울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역사에서 27일 자신이 쓴 ‘매도자의 닻내림 심리와 아파트 가격의 하방 경직성 연구’ 논문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당 논문은 한국부동산원 학술지 ‘부동산분석’ 최신호에 실렸다. 최현규 기자 일곱 살 난 딸을 태우고 가던 차 안에서였다. 라디오에서 정부가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인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대통령이 ‘부동산 정상화’를 선언하고, 정부가 강력한 과세로 투기를 근절한다고 벼렸다. 한때 경제학도였던 그의 뇌리에 의문이 떠올랐다. 과거 실패했던 부동산 과세 정책을 왜 다시 꺼내는지, 시장이 과연 뜻대로 움직여줄지 하는 물음표였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앞서 느낀 의구심을 그때쯤 유료 결제한 인공지능(AI) 제미나이에 털어놨다. 대화를 하다 보니 의문을 다듬으면 꽤 괜찮은 학술 논문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울지하철 영등포구청역에서 일하는 김유승(41) 서울교통공사 과장의 논문 집필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국민일보는 그를 27일 역무실에서 만났다.

아빠의 도전

김 과장이 쓴 논문 ‘매도자의 닻내림 심리와 아파트 가격의 하방 경직성 연구’는 올해 12년째를 맞은 한국부동산원의 학술지 ‘부동산분석’ 지난달 최신호 맨 앞에 실렸다. 전업 학자도 아닌 일반 직장인이 쓴 논문이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KCI 등재 학술지의 첫머리를 장식한 셈이다. 논문은 가격대별로 달라지는 금리 민감도, 또 정책 이후 오히려 강해진 고가시장의 버팀 심리를 행동경제학 이론을 동원해 예리하게 분석해냈다. 넓게 보면 낮은 정책금리 속 불붙은 외곽과 높은 시장금리 속 얼어붙은 중상급지, 정책과 금리 등 각종 가격 하락 압력에도 버티는 강남 고가지역까지 서울 부동산 시장의 엇갈린 현재 모습을 해설하기에도 유용한 연구다.

입사 11년차 김 과장의 일터는 서울지하철 2·5호선이 오가는 영등포구청역 역무실이다. 한 조 3명이 주·야간·비번·휴무를 반복하는 근무 특성상 주말이 따로 없다. 기계 관리와 카드 충전, 수익금 정산, 안전 순찰까지 이어지는 업무 도중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 야간 근무날 막차가 지나간 자정 너머부터 첫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새벽 5시 무렵까지 시간을 쥐어짜 논문을 썼다. 수정 기간인 2~3주간에는 집에서도 첫째 딸과 두 돌을 앞둔 둘째 아들까지 재운 뒤 홀로 일어나 밤을 지샜다. 아내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진 않았냐 묻자 김 과장은 학술지에 게재되면 받는 연구지원금 200만원 덕분에 응원을 받았다며 껄껄 웃었다. 물론 지원금은 육아로 쌓인 카드빚을 갚고 생활비로 쓰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김유승 과장이 27일 서울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역사에서 사진 촬영 중 길을 물어온 노부부 이용객에게 안내를 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김유승 과장이 27일 서울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역사에서 사진 촬영 중 길을 물어온 노부부 이용객에게 안내를 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AI는 내 동료

없는 시간을 쪼개 논문에 매달린 건 못다 이룬 학문의 꿈 때문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경제학자를 꿈꾸고선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목표를 이루더라도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 녹록치 않았다. 그는 “공부를 해보니 내 머리가 박사할 머리는 아닌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국 대학원생 2년차에 석사과정 수료 상태로 학교를 떠났다. 일단 스스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컸다. 4년간의 방황 끝에 결국 현 직장에 입사했다. 그는 “약간 사춘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입사 전에는) 한때 보험 영업까지 해봤다”고 돌이켰다. 완결짓지 못한 공부를 향한 미련과 열망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의 마음에 남아있었다. 교대 근무와 심야 집필이 겹쳐 수면 장애까지 겪는 와중에도 그가 버텨낸 이유다.

집필 기간 동안 AI는 지도교수이자 과업을 해내는 대학원생이면서 동료 학자였다. 제미나이로 통계 분석과 방법론 검토 등을 한 뒤 단락이나 논리를 클로드, 챗GPT에게 넘겨 검토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거쳤다. 피드백이 오면 다시 제미나이와 토론해 수정하는 식이다. 순탄하진 않았다. AI 특유의 할루시네이션(환각)을 걸러야 했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초기에 통계 데이터가 너무 깔끔하게 나와 의심스러웠다. 제미나이를 추궁하니 ‘거짓말을 했다’고 실토하더라”며 “이후엔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AI가 짠 파이썬 코드를 구글 코랩(Colab)에서 직접 실행해 결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분석을 통째로 갈아엎은 것만 네다섯번이다.

AI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쓰며 확인한 건 역설적으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다. 논문을 쓰기 얼마 전 김 과장은 제이슨 권 오픈AI 최고전략책임자(CSO)가 국내 언론과 나눈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었다고 했다. AI 시대일수록 앞으로는 인간의 능력보다 내면의 욕구가 중요해질 것이라는 메시지다. 나이가 들면서 철학책을 부쩍 자주 읽는다고 한 그는 “니체가 하는 이야기 중에도 ‘힘에의 의지’라는 게 있다. ‘네 실존과 네 안에서 뭘 하고 싶어하는지가 중요하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말처럼) 꼭 논문이 아니더라도 뭐가 됐든 내가 정말 하고자 하는 욕구, 욕망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시대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유승 과장이 자신의 근무지인 서울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역사에서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난간에 기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김유승 과장이 자신의 근무지인 서울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역사에서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난간에 기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가격 아닌 주거를

부동산 시장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살갗에 쓸리듯 가깝고 아프다. 김 과장과 만난 날은 한국부동산원이 주간아파트가격동향을 발표하는 목요일이었다. 이날 발표에서 서울 집값은 또 뛰었다. 올해 내내 그랬듯 외곽이 주도하는 상승세다. 논문을 쓰던 5~6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에도 김 과장 가족은 아내의 직장 때문에 전·월세로 이사갈 곳을 알아보다 가격이 너무 오르는 바람에 발이 묶였다. 그는 “내가 가야 하는 곳에 매물이 나와 있고, 내 미래소득을 금융으로 바꿔 그걸 살 수 있어야 ‘주거 안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정부를 향한 김 과장의 바람에는 비단 부동산 논문 저자로서의 고민만 담긴 게 아니다. 출렁이는 시장의 파도 앞에 무력한 서민으로서의 경험도 배어 있다. 그는 “정부가 ‘가격’이라는 단어 자체에 너무 매몰됐다”면서 “가격뿐 아니라 거래량, 또 다른 금융지표가 많이 있는데 가격만 보니 다른 쪽이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것에 근거한지도 모를 ‘적정가격’으로 통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매몰되기보다 ‘과연 그게 서민들에게 도움이 될까’를 먼저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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