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체감과는 먼 ‘그들만의 리그’
중랑·성북·노원 등 중저가 지역 상승폭 확대
경제·국토 수장 동시 교체, 주택시장 안정 과제
규제할수록 지역·가격대별 온도차 세분화
‘2026년 세제개편안’이 발표된 3일 서울 강남지역 부동산 중개업소에 개정안 적용 시 납부해야 할 양도세액 사례가 게재돼 있다. [연합뉴스][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강남 집값이 떨어지면 서민에게 좋은 것 아닌가.” vs “강남 급매가 늘던지 말던지, 내가 살 집값과는 아무 상관없다. 노도강이 오르는 게 더 화난다.”
서울 부동산 민심이 갈라지고 있다. 정부의 세제·대출 규제가 주택 가격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으면서다. 강남에서는 세 부담을 우려한 급매물이 늘고 있지만, 강북 중저가 아파트에서는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모습. [연합뉴스]경제·부동산 수장 동시 교체 승부
또다시 집값이 정권의 시험대가 됐다. 집값이 오르면 무주택자의 불만이 커지고, 규제를 강화하면 집주인의 반발이 커진다. 여기에 같은 규제라도 주택 가격과 보유 형태에 따라 체감 효과가 달라지면서 정부의 정책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경제·부동산 정책을 책임지는 핵심 부처 수장을 동시에 교체했다. 30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에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홍지선 국토부 2차관을 지명했다. 경제와 주택정책의 사령탑을 함께 바꾸면서 집권 2년차 정책 추진의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지율 하락도 부담이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24~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25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38.9%로 전주보다 1.3%포인트 하락했다. 취임 후 처음으로 30%대에 진입했다. 부정 평가는 58.7%로 1.8%포인트 상승했다. 리얼미터는 집값·전월세 문제로 악화한 부동산 민심을 지지율 하락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부동산이 지지율 하락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하지만 집값과 주거비는 국민이 정책 효과를 일상에서 직접 체감하는 대표적인 변수다. 새 경제·국토 라인에 시장 안정과 주거 부담 완화라는 과제가 동시에 주어진 이유다.
노도강 전경. [연합뉴스]압구정은 급매, 노도강은 신고가?
정부가 지난 3일 공개한 세제개편안 이후 서울 주택시장은 가격대별로 뚜렷하게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남권에서는 세 부담을 피하려는 매물이 늘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대형 주택형을 중심으로 직전 최고가보다 20억~30억원 낮은 급매물이 등장했다. 8월 30일 기준 압구정 현대 1·2차에서는 90억원 수준의 매물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전용 84㎡에서도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최근 시세보다 10억원 이상 낮은 50억원 초반대 급매물이 등장했다.
매물 증가세도 뚜렷하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세제개편안 발표 당일인 지난 3일 6만409건에서 30일 6만7695건으로 12% 증가했다. 강남구가 1만1041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 8975건, 송파구 5903건이 뒤를 이었다. 강남3구 매물이 서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3%에 달했다.
반면 중저가 주택 시장은 정반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0.29% 올랐다. 중랑구가 0.56%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성북·강북구 0.55%, 도봉·노원구 0.54%, 서대문구 0.53% 등도 큰 폭으로 올랐다.
실제 노원구 상계주공1단지 전용 41.3㎡는 지난달 말 5억2000만원에 거래된 뒤 이달 8일 5억6000만원, 14일 5억8000만원에 잇따라 거래됐다. 1년 전 3억3000만원대였던 가격과 비교하면 1억5000만원가량 올랐다.
정부가 고가주택에 대한 세제와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수요가 줄고 서울 주택시장 전반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중저가 주택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민심도 한쪽으로 모이지 않는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고가주택에 대한 세 부담 강화를 반기는 의견과 함께 “강남 급매가 늘어도 중산층이 살 집값과는 무관하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온다. 강남 집값이 떨어지는 것보다 대출이 가능한 중저가 주택 가격이 오르는 것이 무주택자에게 더 큰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같은 정책을 두고도 이해관계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는 셈이다.
고가주택 보유자에게는 세 부담이 핵심 변수지만, 무주택자에게는 대출 가능 금액과 실제 매입 가능한 주택의 가격이 더 중요하다. 정부가 시장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정책을 설계하기 어려운 이유다.
윗줄 왼쪽부터 재정경재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이형일 1차관,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 국방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강신철 전 연합사 부사령관. 아랫줄 왼쪽부터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국토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홍지선 2차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민주당 이소영 의원. 청와대 제공규제보다 중요한 것
그동안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쏟아낼수록 시장은 혼란만 겪어왔다. 단순히 서울 집값 상승률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정책 효과를 체감시키기 어렵다. 고가주택의 가격 안정과 중저가 주택의 추가 상승을 동시에 막아야 하고, 그로인한 혼란까지 잠재워야 하기 때문이다.
대출 규제는 단기적으로 매수세를 낮출 수 있지만 실수요자의 자금 마련까지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세제 강화는 고가주택 매물을 늘릴 수 있지만 거래 자체를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다. 반면 공급 확대는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지만 택지 확보와 정비사업, 인허가를 거쳐 실제 입주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의 강도보다 정책의 일관성"이라면서 "지역별 공급 계획과 입주 시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금융·세제 정책의 방향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야 시장의 불안과 집값 상승 기대를 동시에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지금 서울 주택시장은 강남 고가주택과 강북 중저가 주택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며 “특정 계층이나 지역을 누르는 방식만으로는 시장 전체를 안정시키기 어려운 만큼 공급 확대와 금융·세제 정책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