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도시'로 불리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역 인근의 한 백화점이 최근 인파로 붐비고 있다. /박성원 기자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직원의 성과급 급증으로 이들 기업이 있는 지역의 소비가 크게 늘었다는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소비가 자동차와 가전 등 일부 고가품에 집중되는 현상은 이 기업들의 성과급이 다른 분야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낙수 효과’를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성과급을 받은 후 주택 구입에 많이 쓰면 소비 진작 효과는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시·군·구 거주자별 NH농협·하나카드 결제액을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반도체 성과급, 연간 소비 8000억원 늘려
이재호 한은 조사통괄팀 차장 등은 31일 발표한 보고서 ‘반도체 수혜 지역의 소비는 어떻게 될까’에서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위치한 경기도 이천·화성, 충청북도 청주의 소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성과급이 지급된 지난해 1월 이후 이 지역 소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약 4% 많았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지난해부터 지난 6월까지 누적 소비 증가액이 약 1조1000억원으로,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연말까지 증가액은 총 1조7000억원 정도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연평균 소비 증가액 약 8000억원은 지난해 민간 소비 증가액의 2%에 달한다.
두 기업의 지난해 성과급 지급액은 총 4조4000억원이다. 내년엔 이보다 5배 많고 정부의 지난해 소비 쿠폰 지급액 13조5000억원의 약 두 배에 달하는 21조9000억원이 성과급으로 지급될 예정이라 소비는 더 많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한은은 보고 있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지난 27일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연속 인상하면서 반도체 호황이 유발하는 소비 증가 및 이로 인한 물가 압력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로 지목했었다.
소비 증가액을 세후 성과급 지급액으로 나눈 ‘소비 파급률’은 지난해 27%, 올해 21%로 나타났다. 성과급을 받은 돈의 약 5분의 1 정도를 소비로 썼다는 의미다.
3개월 이동평균, 2024=100 /한국은행반도체 수혜 지역의 소비 증가 효과는 국내총생산(GDP)을 지난해와 올해 각각 0.01%, 0.03% 늘리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아울러 내년 반도체 성과급 지급 규모가 지금의 예상만큼 늘어날 경우 이로 인한 소비 증가가 내년 성장률을 약 0.06~0.09%포인트 높일 전망이라고 연구진은 보았다.
자동차·주택 샀더니 “소비 효과 반감”
반도체 성과급이 소비 확대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무디게 하는 제약 요인도 있었다. 이 성과급을 상품·서비스 구매가 아닌 주택 구매에 쓸 경우 소비를 늘리는 효과는 반감됐다. 성과급 지급 직후 서울과 경기도 동탄 등 수도권 주택 구매 건수가 크게 늘어난 SK하이닉스 소재지 이천이 대표적이다. 2024년 대비 이천의 소비는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지난 6월 기준 1.48%포인트 더 늘었는데, 이는 같은 SK하이닉스가 위치한 청주의 상대적 소비 증가율 4.95%포인트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재호 차장은 “같은 기간 이천의 주택 관련 소비가 청주에 비해 뚜렷하게 증가했다”며 “추가 소득이 주택 등 자산 시장으로 흡수되는 정도가 클수록 소비 파급 효과가 작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서울 시내 테슬라 매장에서 시민들이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반도체 수혜 지역의 소비 증가가 자동차와 가전 등 고가품에 편중됐다는 점도 성과급의 ‘과실’의 확산 효과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예를 들어 반도체 수혜 지역의 테슬라 구입 대수는 2025년 월평균의 105.6%로 전국 77.2%보다 훨씬 많았다. 한은 연구진은 “소득 증가 초기에 통상적으로 고가 내구재 중심의 소비가 먼저 나타난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선순환 효과가 큰 외식·여가 등으로 소비가 다변화될수록 반도체 호황의 성과가 보다 폭넓은 가계로 파급될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반도체 공장 증설을 추진하는 가운데 고용 증가가 이뤄진다면 소비 파급 효과는 더 확대될 것으로 연구진은 예상했다. 이재호 차장은 “올해 하반기 중 반도체 업종의 고용이 전년보다 5.1% 증가할 전망으로, 임금 상승과 고용 확대가 병행되면 소비 파급 효과는 점차 커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