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까지 소비 증가액 1.7조원
내년 성과급 올해보다 5배 확대
이천은 주택 매입·청주는 소비로 엇갈려
[한국은행 제공]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급이 소비를 통해 내수로 번지면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최대 0.09%포인트(p)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 이천·화성·청주 등 반도체 수혜지역의 소비는 다른 지역보다 최대 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같은 성과급을 받아도 이천에서는 주택 매입, 청주에서는 소비로 더 많이 흘러가는 등 지역별 차이가 뚜렷해 추가 소득의 사용처가 내수 파급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수혜지역 소비 최대 4% 증가
한국은행이 31일 발표한 ‘반도체 수혜지역의 소비는 어떻게 될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이후 이천·화성·청주 등 반도체 종사자 거주 비중이 높은 지역의 월별 소비는 비수혜 지역보다 최대 4% 많았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 개선이 성과급 지급을 거쳐 실제 가계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은은 시군구별 카드 결제액을 이용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급이 소비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지역별 소비는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결제액이 아니라 그 지역 주민이 다른 지역이나 온라인에서 쓴 금액까지 포함한 수치다. 이번 분석에는 두 회사의 성과급에 따른 소비 효과만 반영됐으며, 반도체 설비투자와 자산효과, 정부 세수 확대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분석 결과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반도체 수혜지역에서 늘어난 소비는 1조1000억원으로 추산됐다. 현재 흐름이 이어지면 올해 말까지 누적 소비 증가액은 1조7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2025~2026년 연평균 증가액인 8000억원은 지난해 전체 민간소비 증가액 41조3000억원의 2% 수준이다.
세후 성과급 가운데 소비로 이어진 비율을 뜻하는 소비파급률은 지난해 27%, 올해 21%로 나타났다. 성과급 규모가 커지면서 비율은 다소 낮아졌지만, 사용기한이나 사용처가 정해진 소비쿠폰과 달리 별도의 소비 유인이 없는 현금성 소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양호한 수준이라는 게 한은의 평가다.
이재호 한은 조사국 조사총괄팀 차장은 “실제로 소비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며 “실증 분석 결과 유의미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성과급에 따른 소비 증가는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지난해 0.01%, 올해 0.03% 높인 것으로 추정됐다. 내년에는 효과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증권사 영업이익 전망 등을 토대로 추산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즉시 현금화 가능한 성과급은 올해 4조4000억원에서 내년 21조9000억원으로 약 5배 증가한다. 지난해 정부 소비쿠폰 지급액 13조5000억원의 1.6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에 따라 내년 GDP 수준은 반도체 호황이 없을 때보다 0.08~0.12% 높아지고, 연간 성장률은 0.06~0.09%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차장은 “두 개 기업의 성과급과 소비 경로만으로도 GDP가 0.1% 정도 높아지는 작지 않은 수준”이라며 “고용과 소비 확산이 긍정적으로 나타난다면 파급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천은 집 사고 청주는 소비…파급효과 갈렸다
[한국은행 제공]다만 같은 기업의 성과급을 받은 지역에서도 소비 반응은 다르게 나타났다. SK하이닉스 사업장이 있는 이천과 청주 모두 비교 지역보다 소비가 늘었지만, 증가폭은 반도체 종사자 거주 비중이 더 낮은 청주에서 오히려 컸다.
한은은 추가 소득이 흘러간 곳에서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청주에서는 늘어난 소득이 소비로 비교적 많이 유입된 반면, 이천에서는 주택 매입에 쓰인 비중이 컸다. 실제 성과급 규모가 확대된 올해 이천 거주자의 타지역 부동산 매입 건수는 전년의 약 2배로 늘었다. 매입 지역도 화성 동탄과 용인·수원 등 이천의 반도체 사업장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경기 남부권에 집중됐다.
반면 청주 거주자는 성과급 지급 이후에도 지역 내 주택을 주로 매입하는 기존 행태를 유지했다. 2025년 기준 청주 거주자의 전체 부동산 매입 중 지역 내 비중은 80.5%로 이천의 49.9%를 크게 웃돌았다. 이천 거주자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도권 주택을 사들이면서 주택 취득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했지만, 청주에서는 추가 소득이 소비로 이어질 여지가 더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차장은 “청주의 소비 반응이 이천보다 크게 나타난 것은 추가 소득이 주택시장보다 소비로 유입된 비중이 더 높았기 때문”이라며 “늘어난 소득이 자산시장보다 소비로 이어진다면 파급 효과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천과 마찬가지로 수도권에 있는 화성에서 주택 관련 소비가 크게 증가하지 않은 데는 성과급 지급 시점의 차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이미 큰 규모의 성과급을 지급한 반면 삼성전자의 성과급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날 예정이어서 아직 화성의 소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현재 소비가 자동차·백화점·가전·가구 등 고가 재량재에 집중된 점도 파급효과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특히 수입 비중이 높은 고가 상품은 늘어난 지출이 국내 가계소득으로 돌아와 다시 소비를 일으키는 ‘소비→소득→소비’의 선순환 효과가 제한적이다. 앞으로 소비가 서비스업 등 다양한 품목으로 확산되면 내수 파급력이 커지는 동시에 수요 측 물가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반도체 호황이 고용 확대로 이어질지도 관건이다. 반도체는 다른 제조업보다 고용유발 효과가 낮지만,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수요 증가에 맞춰 생산능력과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를 확대하면서 신규 채용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하반기 반도체 업종 일자리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증가할 전망이다.
박창현 한은 조사국 조사총괄팀장은 “고용 파급이 확대되고 고가 재량재에 집중된 소비가 서비스와 다양한 품목으로 번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 같은 변화가 나타나면 소비를 통한 반도체 호황의 파급 경로도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