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332조, 朴·文·尹 합쳐 348조
내년 예산안이 총지출 820조원을 넘어서는 사상 최대 규모로 편성됐다. 올해 본예산보다 13% 가까이 늘어나는 것으로, 10%쯤 증가한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기록을 넘었다. 반도체 호황에 따라 내년 국세 수입이 사상 최대인 500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에 힘입어 ‘수퍼 예산’을 편성한 것이다.
정부는 연평균 8.4% 증가하는 확장재정 기조를 이어가 이재명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30년엔 총지출을 1000조원대까지 늘릴 계획이다. 다만 경제 성장으로 국가채무 비율은 재정 건전성의 기준선인 50% 미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추정했다. 하지만 반도체 업황 악화나 경제 위기시 재정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어지는 확장 재정 기조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1일 새해 예산안을 발표하며 “과감한 재정투자로 성장의 물꼬를 트고, 그 성장이 다시 재정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적극 재정·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반드시 안착시키겠다”고 했다.
이번 예산안은 지난 1월 기획재정부(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의 전신)에서 쪼개져 출범한 기획예산처의 첫 예산안이다. 일각에선 “이 같은 예산 조직 개편이 정부의 확장재정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 아니었느냐”는 해석도 나온다.
과거 정부에서 기획재정부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나 자영업 손실 보상제 법제화, 추가경정예산 편성 규모를 두고 신중론을 폈을 때, 민주당 고위 인사들은 “이게 기재부의 나라냐”며 공개적으로 강하게 반발했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기재부에서 예산 부문을 떼어 내 기획예산처를 출범시켰다. 양준석 가톨릭대 교수는 “경기 침체가 예상되지 않는 한 이렇게 정부 지출을 빠르게 늘리는 것은 이론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며 “세수가 계속 증가한다는 게 보장되지 않은 가운데 이렇게 총지출 증가율을 가파르게 올리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 5년간 나라 씀씀이 332조원 증가
하지만 정부는 향후 재정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 나랏빚이 늘더라도 경제 규모가 함께 커지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내년부터 2030년까지 48~49%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국가채무액은 올해 말 1413조원에서 내년 말 1520조원으로 1년 만에 107조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추가 세수로 빚을 갚지 않고 미래대응기금 등에 적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향후 재정운용계획을 들여다보면 재정 수입은 2026~2030년 연평균 9.9% 증가할 전망이다. 세수의 핵심 기반인 법인세·소득세 등 국세 수입은 5년간 연평균 13.4%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추정했다. 이에 정부는 올해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씀씀이를 8.4%씩 늘리기로 했다. 2030년에는 총지출을 1005조2000억원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정부 5년간 나랏돈 씀씀이 증가 폭은 331조9000억원으로,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13년 치 증가 폭(347조9000억원)에 버금가게 된다.
박창환 기획예산처 예산총괄심의관은 “GDP 대비 재정지출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42%, 미국이 37.7%인 반면 한국은 35% 수준”이라며 “1000조원에 놀랄 게 아니라 더 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 “반도체 호황발 세수 영원하지 않아”
전문가들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급격히 늘려 놓은 나라 씀씀이는 예상치 못한 경제 위기 때 재정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올해는 경제 성장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커 국민들이 대규모 확장 예산을 동의해 준 측면이 있겠지만 앞으로는 다르다”라며 “반도체 업황이 언제 하향 국면을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총지출을 확 늘려 버리면 재정 적자 폭이 불어날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했다.
특히 ‘결혼하면 100만원’, ‘첫째 아이 출산하면 1000만원’과 같은 현금성 재정지출은 새로 편성되면 다시 금액을 줄이거나 폐지하기 어렵다. 허준영 서강대 교수는 “지원금 증액 규모가 큰 데다 현금 지원은 한 번 늘리면 줄이기 어려운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