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식당-경비업체 사용자성 인정
“안전 관여하면 교섭 부담 늘고 안 챙기면 안전사고 우려” 한숨
경총 “사용자성 명확한 기준 필요”
Gemini, 게티이미지뱅크앞으로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구내식당·경비 협력업체 직원들은 현대차와 산업안전과 관련된 문제에 한해 직접 교섭에 나설 수 있다. 반면 현대차 판매대리점 영업사원인 ‘카마스터’는 현대차와 직접 교섭할 수 없다.중앙노동위원회가 지난달 31일 현대차 하청노조들의 직접 교섭 요구에 대해 내린 판단이다. 이처럼 판단이 엇갈린 이유는 ‘실제로 누가 근로조건을 바꿀 수 있느냐’의 차이다. 구내식당과 경비 직원은 현대차가 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안전시설이나 작업환경을 바꾸려면 현대차의 결정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중노위는 울산지방노동위원회 초심에서 의무실·휴게공간 등에 한정됐던 교섭 범위를 산업안전 관련 의제 전반으로 넓혔다. 반면 카마스터는 대리점 사업주가 관리하고 보수도 지급하기 때문에 현대차 교섭 의무가 없는 것으로 봤다.
● ‘안전관리 딜레마’ 우려 나오는 원청 교섭 의무
이 같은 기준은 현대차만의 사례가 아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자동차·조선·철강·건설 등에서 나온 노동위 판정을 종합하면 ‘누가 실제로 안전 관련 근로조건을 바꿀 수 있느냐’가 원청 사용자성을 가르는 핵심 기준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원청 소유 시설이나 설비처럼 하청업체가 혼자 바꾸기 어려운 산업안전·작업환경에서는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정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하청업체가 직접 정한 뒤 지급하는 임금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받는 경우가 드물다.
중노위는 한화오션 사업장에서 급식·세탁·통근버스 등을 담당하는 웰리브 노동자들이 시설이나 설비를 개선하려면 한화오션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웰리브 노동조합이 안전과 작업환경 문제를 한화오션과 직접 교섭하도록 했다. 중흥건설·중흥토건의 타워크레인 노동자 사건에서도 협력업체가 자체적으로 안전 시설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청과 교섭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포스코 역시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안전 및 작업 환경 문제에 대해 직접 교섭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이 같은 판단 기준이 오히려 ‘안전관리 딜레마’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협력업체 근로자의 안전과 작업 환경에 적극 관여할수록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관여하지 않으면 산업안전 문제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체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한 기업 임원은 “전체 안전 교육이 사용자성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작업 조회를 한 뒤 협력업체별로 다시 모여 안전 교육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 때문에 작업 시간 상당 부분을 안전 교육에 쓰는 촌극도 벌어진다”고 말했다.
● 원청 교섭서 제외되는 ‘임금’
반면 현재까지 중노위 판단을 보면 임금과 관련해선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중흥건설·중흥토건 사건에서 중노위는 산업안전에 대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했지만, 임금은 원청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현대차 역시 급여·상여금·격려금 등 임금 의제에서는 원청 지배력이나 결정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안전 문제는 원청과, 임금 문제는 원소속 협력업체와 교섭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나는 셈이다.
다만 산업안전 관련 의제라도 수당·비용 보전 등 사실상 임금과 관련 있는 요구가 포함될 수 있다. 이를 안전 문제로 볼지 임금 문제로 볼지를 놓고, 현장에서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는 이번 주 중 노란봉투법상 노동쟁의 대상의 판단 기준을 담은 해석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의 통상적인 투자나 증설 등은 노동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법에 따라 하청 근로자의 안전을 관리했다는 이유만으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