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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수송로 바뀌자…‘수에즈 맞춤형 배’ 덕보는 K조선

미국·이란의 무력충돌로 중동 정세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해상 물류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 특히 원유 수송로가 바뀌면서 유조선 수요에도 변화가 나타나, 국내 조선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쟁 이전 하루 1800만 배럴이던 전 세계 호르무즈해협 통과 원유·석유제품 물량이 지난달 하루 200만 배럴까지 감소했다고 밝혔다. 89%가량 급감한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은 중동 산유국에서 아시아와 유럽으로 가는 원유의 핵심 수송로다. 하지만 이란과 미국 정부의 강대강 대치로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수송량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불확실한 호르무즈해협 대신 동서횡단 송유관을 활용하고 있다. 동부에서 생산한 원유를 서부 얀부까지 보낸 뒤 홍해를 통해 수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후티 반군의 위협이 바브엘만데브해협까지 확대되며 홍해 남쪽 항로의 위험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에 사우디는 얀부에서 홍해를 북상해 이집트 아인수크나로 원유를 보내는 방안을 활용하고 있다. 아인수크나에서 원유를 내린 뒤 이집트의 ‘수메드(Sumed) 송유관’을 통해 지중해 연안으로 보내고, 이후 유럽·아시아 등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원유 운송로가 바뀌며 업계에서 원하는 선박도 달라졌다. 그간 얀부~아인수크나 구간에는 원유 약 200만 배럴을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이 주로 투입됐다. 그러나 원유 수송경로가 바뀌면서 12만~20만 재화중량톤수(DWT)급 중형 원유운반선인 ‘수에즈막스 탱커(Suezmax Tanker)’ 활용이 늘고 있는 것이다.

VLCC는 화물과 연료 등을 최대치로 실으면 흘수(배에서 물에 잠겨있는 부분의 깊이)가 깊어 수에즈운하(흘수 약 20m까지만 허용)를 지나기 어렵다. 일례로 VLCC는 원유 200만 배럴을 가득 실으면 수에즈운하 통항이 어렵지만, 이보다 작은 수에즈막스는 100만 배럴 수준인 최대치 무게로 통과할 수 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소에도 수에즈막스를 찾는 문의가 크게 늘었다. 대형 조선 3사뿐 아니라 중형선을 주력으로 하는 중형 조선사들까지도 수주가 이어지고 있다. 수에즈막스를 주력으로 건조하는 대한조선은 올해만 17척을 수주했다. 2029년 인도 물량도 사실상 마감됐고, 현재는 2030년 인도 물량 판매에 나서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지난 7월 말 튀르키예 선주로부터 수에즈막스급 원유운반선 2척을 수주했다. 1척당 가격이 9300만 달러(약 1277억원)로, 직전 신조선가(8653만 달러)보다 약 7.5% 높은 가격에 수주를 따냈다.

중고선박 수요도 늘고 있다. 새 배를 주문하면 인도까지 통상 3년 이상 걸리는 만큼, 선주들이 비싼 값에 중고선을 사더라도 높은 운임을 받을 수 있는 시장에 곧바로 투입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선사 나프토마르는 2년 된 중고 수에즈막스 선박을 1억23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이는 VLCC 신조선가인 1억3100만 달러의 94% 수준이다. 일각에선 중고선 가격이 신조선 가격을 웃도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인기 차종의 중고차 가격이 신차 가격보다 높아지는 것처럼, 선주들이 선박 확보를 서두를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업계는 호르무즈해협과 바브엘만데브해협을 둘러싼 위험이 계속되면 원유 수송로 다변화가 불가피하고, 당분간 수에즈막스 수요도 강세를 보일 것으로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선박이 얼마나 비싸냐보다 선박을 얼마나 빨리 확보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상황”이라며 “수에즈막스 쓰임새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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