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과 기관, 외국인 3주체가 모두 팔았다. 기관(6340억원), 개인(5398억원), 외국인(4867억원)을 합치면 1조6605억원어치 순매도였다. 그런데도 코스피는 0.23% 상승했다.
이날 기타법인이 홀로 1조6657억원어치를 순매수했기 때문이었다. 3대 주체가 내놓은 물량을 그대로 받아냈다. 기타법인은 개인·외국인·기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일반 법인을 뜻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이 여기에 속한다. 기타법인은 1일까지 10거래일 연속 순매수했다. 이 가운데 9거래일은 하루 1조원을 넘겼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19일 이사회를 열고 40조43억원어치 자사주를 사서 전량 소각하기로 의결했다. 보통주 2407만주로 발행주식의 3.3%다. 국내 상장사 사상 최대다. 취득 기간은 8월 20일부터 11월 19일까지다. 삼성전자는 최대 110조원 규모 주주환원 방안을 내놓고 지난달 24일 매입에 들어갔다. 두 회사가 지난달 20일부터 31일까지 사들인 자사주는 11조8365억원어치다. SK하이닉스가 8조7820억원, 삼성전자가 3조545억원이다. KB금융도 하반기 7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소각을 확정했다.
자사주 매입이 곧 소각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법으로 굳어졌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 3차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공포·시행됐기 때문이다. 취득한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1년 안에 소각해야 한다. 법 시행 전 취득분은 1년 6개월 안이다. 소각하지 않고 경영권 방어나 주가 관리에 쓰던 길이 닫힌 것이다.
다른 매수 주체는 사라져
문제는 자사주 말고 살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국인은 올 들어 1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69조6070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해 연간 순매도액 4조6546억원의 36배다. 8개월 가운데 월간 순매수를 기록한 달은 1월 1186억원과 4월 1조1283억원 두 번뿐이다. 5월 44조7000억원, 6월 48조6000억원을 판 뒤 7월 9조9000억원, 8월 10조2000억원으로 매도 규모만 줄었다.
미래에셋증권 김석환 연구원은 “상반기까지가 리밸런싱이었다면 하반기는 업황 고민과 매크로 변수가 맞물리고 있다”고 했다. 상반기까지는 목표 초과분을 기계적으로 매도했다면 하반기에는 외국인이 위험 회피 국면에 있다는 진단이다.
개인은 매물 벽에 갇혔다. 키움증권은 코스피 7000 이상 지수대에 쌓인 개인 순매수를 87조원으로 집계했다. 개인이 상장지수펀드(ETF)·선물·옵션을 통해 간접적으로 산 몫이 투자자 분류상 ‘금융투자’로 잡힌 현물 매수 금액 24조5000억원을 더하면 111조5000억원이다. iM증권은 작년 10월 이후를 기준으로 173조9000억원으로 봤다. 지수가 오를 때마다 원금을 회수하려는 개인 매물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
연기금은 자사주가 들어오자 팔았다. 지난달 3일부터 1일까지 삼성전자를 7172억원 순매도했다. SK하이닉스는 8월 한 달 3018억원을 순매수했다가 지난달 26일부터 5거래일 연속 총 1275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자사주도 만능키 아냐
그러나 자사주 매입이 늘 지수를 올리는 열쇠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사주 소각을 성장 정체의 신호로 읽는 시각도 있다. 벌어들인 돈을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에 넣지 못하고 자기 주식을 사는 데 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이 과도하면 투자 여력이 줄고 결국 기업의 미래 성장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직원과 협력업체 같은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돌아갈 몫도 줄어든다.
코스피를 떠받치는 자사주 매입의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SK하이닉스의 취득 기간은 11월 19일에 끝난다. 매입이 멈추면 하루 1조원대 매수도 사라진다.
신한투자증권 강진혁 연구원은 “(금리·환율 등) 매크로 압력에 적극적인 매수 주체가 없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 등 기타법인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도 “자사주 매입은 상방 요인은 아닌 만큼 외국인 매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사주 매입이 코스피 하방을 받칠 뿐 밀어 올리지는 못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