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스콜 육군장관 전격 사임
美 육군 장관·참모총장 초유의 동시 공백
헤그세스 취임 19개월, 육군 4성 장군 반토막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미 육군 현대화를 이끌던 댄 드리스콜 육군장관이 취임 18개월 만에 물러났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취임한 지난해 1월 10명이던 미 육군 현역 4성 장군은 19개월 만에 5명으로 줄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드리스콜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냈다고 전했다. 미국 육군장관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하는 민간인 정무직이다. 육군장관은 육군 예산을 짜서 의회에 제출하고, 무기 구매와 부대 개편을 최종 결재한다. 육군장관이 결재를 하면, 4성 장군이 맡은 육군참모총장은 이 예산을 활용해 어느 부대를 언제 어디로 보내고 어떻게 훈련시킬지 실행 계획을 짠다.
미 정치 전문 매체 악시오스는 드리스콜 장관이 그동안 육군 운영 방향과 고위 장교 연쇄 해임을 놓고 헤그세스 장관과 수개월 넘게 충돌했다고 전했다. 올해 40세인 드리스콜 장관은 이라크 참전 장교 출신으로 JD 밴스 부통령의 예일대 로스쿨 동기다. 그는 야전 경험과 벤처 투자 경력을 살려 값싼 드론과 이를 잡는 대드론 장비를 대량으로 사들이자고 주장했다. 대신 대형 방산업체에 기대던 조달 절차를 실리콘밸리식으로 줄이겠다는 의견을 밀어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얼마 전까지도 헤그세스 장관이 물러날 경우 뒤를 이을 후보로 거론됐다고 전했다.
드리스콜 장관은 헤그세스 장관이 취임 직후부터 밀어붙인 장성 감축에 불만을 드러냈다. 헤그세스 장관은 취임 이후 현역 4성 직위와 주방위군 장성을 각각 최소 20%, 통합전투사령부 개편과 함께 장성·제독 직위를 10% 더 줄이겠다고 했다. 이런 기조 속에서 지난해 2월 전투기 조종사 출신 찰스 브라운 합참의장이 임기 도중 해임됐다. 같은 달 미 해군 첫 여성 참모총장인 리사 프란체티 제독과 제임스 슬라이프 공군참모차장도 물러났다.
육군에서는 지난해 10월 제임스 밍거스 육군참모차장이 임기를 1년 남기고 밀려났다. 이어 헤그세스 장관은 이란전 개전 직후였던 4월 2일 임기가 1년 이상 남았던 랜디 조지 육군참모총장에게 즉시 퇴역을 요구했다. 조지 전 총장은 42년을 복무하며 퍼플하트 훈장을 받은 야전 지휘관이었다. 같은 날 육군 훈련·변혁사령관 데이비드 호드니 대장과 윌리엄 그린 소장도 자리에서 내려왔다. 당시 국방부는 세 사람을 왜 내보냈는지 밝히지 않았다. 7월에는 이슬람국가(IS) 소탕전에서 델타포스를 지휘했던 크리스토퍼 도너휴 대장이 맡은 미 육군 유럽·아프리카 사령관 직위가 3성으로 낮아졌다. 당시 의회에서는 이슬람국가(IS)와 싸울 때 델타포스를 지휘했던 지휘관을 이렇게 내보내도 되느냐는 우려가 나왔다. 주요 매체들은 드리스콜 장관이 사직서를 내기 직전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에서 열린 크리스토퍼 도너휴 대장 전역식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미군에 장군과 사령부가 지나치게 많다며 지휘 계층을 줄여 예산과 권한을 일선 전투부대로 돌리겠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도너휴 대장 직위 하향도 이 감축 계획 일부라고 설명했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군 수뇌부를 교체하는 일 자체는 미국 문민통제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 민간 수장에 해당하는 드리스콜 장관까지 물러나면서 미 육군에는 상원 인준을 거친 정식 지휘부가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하지만 의회는 헤그세스 장관이 해임 사유를 공개하지 않은 채 유사한 인사를 반복했고, 조지 전 총장과 가까웠던 대령 4명의 준장 진급까지 막은 점을 문제 삼았다. NYT는 헤그세스 장관이 조지 전 총장 후임으로 거론되던 고위 장교를 최소 3명 밀어냈다고 전했다. 육군 정보장교 출신 팻 라이언 민주당 하원의원은 NYT에 “전시에 가장 실전 경험이 많은 지휘관들을 비워내면 병사들이 덜 안전해진다”고 했다.
드리스콜 장관과 조지 총장 빈자리를 채울 후임 인선 역시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헤그세스 장관은 션 파넬 국방부 대변인을 새 육군장관에 앉히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넬 대변인은 중동에 배치된 항공모함의 열악한 근무 여건을 보도한 성조지 기자 3명을 해고해 소송을 당한 인물이다. 국방부 출입기자 취재를 제한하는 조치도 주도했다. WSJ는 행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상원 의석이 팽팽하게 갈린 상태에서 파넬 대변인이 의회 인준을 통과하기 어렵다고 봤다. 현재 대행인 라네브 대장을 정식 참모총장에 앉히려는 구상에는 공화당 일부조차 난색을 보이고 있다.
잭 리드 상원 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는 같은 날 “헤그세스 장관은 이견이 처벌받고 능력이 개인적 충성심 뒤로 밀리는 문화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육군 정보장교로 복무했던 제이슨 크로 민주당 하원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지금 국방부는 어떤 영역에서는 방향타를 잃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