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롯데의 주요 계열사 반기보고서를 살펴보면 대규모 투자와 자산 매각, 차입 부담, 적자 사업 등이 동시에 나타난다. 전년과 대비해 두드러진 성과는 아직 없다. 롯데가 현재 무엇을 줄이고 어디에 돈을 넣고 있는지, 그 선택이 실제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주요 계열사별로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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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백화점][디지털데일리 왕진화기자] 롯데그룹이 자산을 팔고 사업을 정리하는 동시에 미래 먹거리에는 다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선택과 집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롯데케미칼의 재무 부담이 그룹 전반의 위기감으로 번진 이후 저수익 사업은 재편하고 비핵심 자산은 줄이는 한편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사업에는 자본을 다시 배치하는 모습이다.
한때 그룹의 캐시카우였던 롯데케미칼의 부진은 롯데가 재무건전성을 주요 경영 화두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중국발 공급과잉과 글로벌 수요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실적이 악화됐고, 2024년에는 일부 회사채의 재무특약을 충족하지 못해 약 2조원 규모 회사채에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했다.
롯데가 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해 은행권 지급보증을 받는 신용보강책까지 꺼내 들면서 롯데케미칼의 문제가 그룹 전체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번졌다.
◆케미칼이 울린 경고음…대산 떼내고 차입 1.6조 이관=2년여가 지난 현재 롯데케미칼은 사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단계에 들어섰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산 석유화학 사업 재편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6월 대산공장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롯데대산석화를 출범시켰다. 이 과정에서 대산사업 관련 자산 약 2조2147억원과 부채 약 2조1077억원을 신설법인으로 넘겼다. 이관된 차입금만 1조6212억원에 달한다.
대산공장을 생산자산뿐 아니라 관련 금융부채와 함께 분리하면서 롯데케미칼 본체의 재무 부담을 낮춘 셈이다. 이후 롯데대산석화는 지난 1일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해 ‘H&L어드밴스드’로 새롭게 출범했다.
석유화학 업계와 정부가 추진해 온 사업재편이 기업 간 통합으로 이어진 첫 사례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역시 지난 7월 사업재편계획 승인 이후 관계사들과 통합 운영체계 구축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사업 재편이 곧바로 수익성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롯데대산석화는 출범 후 지난 6월 말까지 한 달간 매출 3908억원을 올렸지만 765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롯데케미칼 역시 통합법인에 대한 추가 출자와 자금보충 부담을 안게 되는 만큼 석유화학 사업의 체질 개선은 아직 진행형이다.
◆팔 건 팔고, 쓸 곳엔 쓴다…롯데가 다시 짜는 ‘돈의 순서’=롯데케미칼에서 시작된 사업 재편의 흐름은 그룹 계열사 곳곳에서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롯데가 올해 비주력 사업 지분과 유휴자산 매각 등을 통해 진행한 거래 규모만 1조7300억원을 넘어섰다.
롯데렌탈 지분 매각을 비롯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롯데에코월 지분 매각, 롯데쇼핑·롯데웰푸드의 분당물류센터와 롯데마트 킨텍스점, 롯데네슬레코리아 청주공장 및 부지 매각 등이 대표적이다. 롯데는 이를 비주력 사업과 자산 효율화를 통한 ‘포트폴리오 리스트럭처링’의 일환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룹이 모든 사업에서 일률적으로 투자를 줄이는 것은 아니다. 저수익·비주력 사업과 자산에서는 자금을 회수하는 동시에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사업에는 다시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국내 사업이 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도 온라인 그로서리를 미래 경쟁력으로 낙점하고 오카도 기반 사업에 총 9500억원을 투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가동을 시작한 ‘제타 스마트센터 부산’에만 약 2000억원을 투입했다.
다만 부산센터의 손익분기점(BEP) 도달까지 5~6년이 예상되는 만큼 투자 속도는 성과와 연동한다. 롯데마트는 부산센터 운영 성과를 후속 CFC의 투자 시기와 운영 방향을 검토하는 주요 기준으로 삼고 전국 6개 CFC의 구체적인 구축 순서와 시기는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식품에서는 자본의 이동 방향이 해외를 향한다. 롯데웰푸드는 분당물류센터를 매각하는 등 국내 자산 효율화를 추진하는 한편 인도를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해외 매출은 575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3% 늘었다.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이 롯데웰푸드와 일본롯데제과의 싱가포르 합작법인 이사회 의장을 맡으면서 해외 식품사업은 차세대 경영의 시험대라는 의미도 더해졌다.
호텔롯데 역시 자산 매각과 투자 사이에 서 있다. 롯데렌탈 지분 매각이 완료되면 호텔롯데에는 8170억원의 현금이 유입될 예정이다.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롯데는 주주총회 등 후속 절차를 거쳐 오는 10월 내 거래를 종결한다는 계획이다.
롯데는 유입 자금을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의 재무건전성 개선 및 사업 경쟁력 강화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거점 리뉴얼과 프리미엄 브랜드 운영 역량 강화에도 재원을 배분해 호텔사업의 수익구조를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뉴욕 롯데뉴욕팰리스 토지 매입에 약 7200억원이 필요한 데다 국내 호텔 리뉴얼과 계열사 지원 등 자금 소요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자산 매각으로 확보한 현금 가운데 얼마를 차입 부담 완화에 투입하고 얼마를 미래 투자에 배분하느냐에 따라 실질적인 재무구조 개선 폭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롯데지주는 5월27일 기업설명회를 개최하고 그룹 1분기 실적 및 포트폴리오 고도화 전략, 신사업 진행 경과 등을 공유했다. 최영준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왼쪽)이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롯데지주]롯데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방향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그룹은 남은 하반기에도 비주력 사업과 유휴자산 매각 등을 통해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롯데 관계자는 “주요 계열사의 상반기 실적 개선과 함께 이번 롯데렌탈 매각 승인으로 그룹의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남은 하반기에도 비주력사업 및 유휴자산 매각 등을 통해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롯데의 움직임은 비용과 투자를 일률적으로 줄이는 ‘허리띠 졸라매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케미칼에서는 대규모 사업 재편을 통해 재무 부담을 덜어내고 호텔·식품에서는 자산을 매각하는 동시에 마트의 온라인 전환과 식품의 해외 확장 등 미래 사업에는 다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롯데케미칼의 사업 재편이 실제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돼야 하고 롯데마트의 9500억원 투자는 장기간에 걸쳐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 호텔롯데 역시 본업 회복과 자산 매각을 실질적인 차입 부담 완화와 수익구조 개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롯데가 풀어야 할 과제는 결국 무엇을 얼마나 파느냐보다 확보한 자본을 어디에서 빼고 어디에 다시 투입할지를 정하는 데 있다. 재무구조 개선과 미래 성장 투자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 다시 짜고 있는 ‘돈의 순서’가 실제 현금창출력과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그룹 체질 개선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박경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한국중소기업학회장)는 “현금흐름과 성장성이 모두 좋은 신규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업을 찾기는 쉽지 않아 장기 투자에 따른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며 “가능한 한 기존에 경쟁력을 갖춘 화학 사업과 관련성이 높은 AI 소재 분야나 유통 등 기존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장(한국경영학회 차기 회장)은 “결국 기존 사업구조에서 새로운 사업구조로 전환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자본의 재배치’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 원장은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업으로 옮겨간 뒤 얼마나 수익성과 성장성을 확보하느냐”라며 “앞으로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통해 영업현금흐름과 현금창출능력, EBITDA 등이 얼마나 개선되는지를 봐야 한다. 결국 이런 수익성 지표가 중요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