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가격 하락에도 인기 떨어져
다카이치 내각 역대 최대 예산에
성장없는 재정악화 우려 커진 탓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말라.”일본 10년물 금리(수익률)가 한때 3%를 돌파하면서 일본 국채 장기금리 상승 바람이 꺼지지 않고 있다.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가격이 급락할 때 섣불리 매수에 나서면 안 된다는 시장 격언을 인용하며 채권 시장의 혼란을 조명했다.
3일 닛케이는 지난 1일 장기금리의 기준으로 꼽히는 일본 10년물 금리가 3%를 돌파한 데는 재정 악화에 대한 불안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2일 3.027%까지 오른 10년물 금리는 3일 2.9%대로 약간 내렸다.
3% 진입 당일에는 일본 금융권 관계자들의 탄식이 이어졌다고 한다. 일본 동부 지역의 한 지방은행 간부는 “너무 급격한 움직임”이라며 “이런 시기에 운용을 담당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닛케이에 토로했다. 이번 금리 상승에서는 이례적인 현상도 벌어졌다. 통상 채권가격이 하락하면 가격 메리트가 생기지만, 이번에는 그런 장점마저도 인기를 끌지 못한 것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채권 딜러는 “3%를 돌파했다고 해도 재정을 배경으로 금리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누가 사주겠느냐”고 짚었다.
실제로 지난 6월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은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을 뜻하는 ‘호네부토(骨太) 방침’을 변경하려 했다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독립성을 침해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 기조를 보이는 반면, 성장과 적극재정을 내세운 다카이치 내각은 금리 인하를 바라고 있다는 입장에서다. 이에 금리가 급등하자 정부는 시장 진화에 나섰다.
여기에 지난달 말 2027년도 예산의 ‘개산(概算) 요구’ 규모가 역대 최대인 약 143조 엔에 달한다는 전망이 나오자 재정 건전성을 둘러싼 시장의 의구심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 기무라 류타로 BNP파리바자산운용 분석가는 “일본 국채를 보유한 보험사와 연기금으로부터 평가손실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등에 대한 문의만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도 채권 매도세가 확산하는 한편,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였던 일본은행도 국채 매입 속도를 늦췄다.
금리가 상승하면서 가격은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닛케이에 따르면 40년물 국채가격은 액면가 100엔당 약 93엔까지 떨어졌고 25년물은 한때 80엔을 밑돌았다. 닛케이는 “국채를 보유하는 것 자체에 대한 위험도 의식되고 있다”고 짚었다.
일본 금리를 둘러싼 소음은 미국으로도 옮겨가고 있다. 미국 정부가 재정 규율을 갖춘 재정 운용과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주저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면서 미국 국채 매도로 이어져 미국 금리를 상승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1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재정 확대와 금융완화에 적극적인) 리플레이션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CNBC 인터뷰에서도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엔고로 이어지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토 유지노리 노무라증권 수석 외환전략가는 “일본은행의 정책 운용에 대한 상당히 직접적인 개입”이라며 “엔화 가치가 달러당 160엔 부근에 머문다면 미국의 압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일본은 재정 악화 대책을 촉구하는 미국과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은 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포함한 각국이 일본의 재정정책에 우려를 표명했느냐는 질문에 “놀라울 정도로 없었다”면서 주요 7개국(G7) 가운데 단년도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낮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엔화는 다시 156엔대로…끝없는 ‘엔저 터널’, 빛 볼까?
다만 엔저 흐름은 3일 중단되는 모양새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한때 달러당 156엔대까지 하락했다. 엔화가 156엔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달 7일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일본 외환당국이 계속해서 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이를 경계하는 시선도 이어지고 있다.
닛케이는 “엔화 매수의 배경에는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고 분석했다. 베선트 장관의 압박에 이어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일본은행에서 가장 강한 매파로 꼽히는 다카타 하지메 심의위원 등도 연달아 금리 인상에 우호적인 발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주기가 기존의 ‘6개월에 한 번 정도’에서 ‘대략 3개월에 한 번’으로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