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어려운 단어 ‘화학’. 그러나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에는 화학이 크고 작은 마법을 부리고 있다. 이광렬 교수가 간단한 화학 상식으로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법, 안전·산업에 얽힌 화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이가 들수록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노인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피부가 창백해지는 건 증가한 활성산소가 멜라닌 세포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GETTYIMAGES |
나이가 들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멜라닌 세포 수와 기능이 감소한다. 첫째, 나이가 들수록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능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활성산소는 세포와 DNA를 파괴한다. 멜라닌 생성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활성산소가 발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옆에 있는 멜라닌 세포를 공격하기에 기능 저하 및 사멸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다.
둘째, 모낭과 피부 기저층에 있는 멜라닌 세포의 줄기세포가 노화하면 DNA 손상을 복구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멜라닌 세포 공급이 차단될 수 있다. 특히 눈 망막 아래 맥락막에 있는 멜라닌은 망막을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 이 영역의 멜라닌이 줄어들면 황반변성처럼 시력에 치명적인 병이 생길 수 있다. 아주 큰 에너지를 가진 자외선이 우리 눈에 침투해 활성산소종 생성을 촉발하면 안과질환 진행 속도가 더 빨라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야외에 나갈 때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나이 들수록 자외선 차단, 피부 보습에 신경 써야멜라닌 세포가 감소하면 멜라닌을 만들어 자외선이 피부에 끼치는 악영향을 막는 능력도 떨어진다. 따라서 노인은 젊은 사람보다 피부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피부 재생 속도도 느려지는 만큼 자외선 차단제를 챙겨 바르고 피부 보습에 신경 쓰는 등 피부 노화를 막을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한편 머리카락의 경우 노화 말고도 퇴행을 촉진하는 요소가 있다. 테스토스테론이 변해 생기는 DHT(Dihydrotestosterone·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가 남성 두피 모낭의 안드로겐 수용체와 결합하면 머리카락이 빨리 퇴행기를 맞는다.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솜털 같은 상태로 있다가 빠지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모낭 소형화라고 한다. 나중에는 모낭이 아예 없어지고 탈모에 이른다. 완전히 사라진 모낭은 영원히 복구될 수 없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다 없어져도 수염과 팔다리의 체모는 풍성한 남성이 많다. 왜일까. 두피를 제외한 곳에 있는 모낭의 안드로겐 수용체도 DHT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동일하다. 그런데 이때는 체모 성장을 촉진하는 유전자가 발현돼 성장 촉진 인자가 생성된다. 그 결과 굵고 긴 체모가 자란다.
눈썹과 코털 또한 수염, 팔다리에 난 체모와 같은 운명이다. 긴 성장기에 눈썹은 아주 길고 굵게 자란다. 코털도 멈추지 않고 자라 콧구멍 밖으로 나오는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중년 이후 남성들이 눈썹과 코털을 정기적으로 잘라야 하는 데는 이러한 DHT와 안드로겐 수용체 간 상호작용이 숨어 있다.
머리카락은 빠지게, 수염은 자라게 하는 DHT피나스테리드, 두타스테라이드 같은 약물은 DHT가 형성되는 과정 자체를 막아 탈모를 방지한다. 이러한 약물을 통해 DHT가 감소하면 머리카락을 제외한 다른 부위 체모 성장이 다소 느려지고 체모가 가늘어질 수 있다. 피나스테리드와 두타스테라이드는 극히 일부 남성에게 성기능 저하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는데 자칫하면 수염조차 줄어 외견상 남성성도 훼손될 수 있다.
눈썹, 코털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잘 자라거나 머리카락, 피부, 눈동자 색이 옅어지고 있다면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다. 이때 몸속에 활성산소가 조금이나마 덜 생기게 하려면 비타민C 같은 항산화물질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게 좋다. 스트레스 유발 상황을 피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운동하는 것도 노화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맞겠지만 그때까지 더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광렬 교수는… KAIST 화학과 학사, 일리노이 주립대 화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게으른 자를 위한 수상한 화학책’ ‘초등일타과학’ ‘사춘기는 처음이라’ 등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노인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피부가 창백해지는 건 증가한 활성산소가 멜라닌 세포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GETTY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