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2004년 12월 이라크 자이툰 부대를 방문해 장병을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03년 당시 노무현 정부가 논란 끝에 밀어붙인 이라크 파병이 재소환됐다. 이재명 정부가 23년 만에 호르무즈해협 파병 검토에 나서면서다. 당시처럼 민주당 정부인 데다 미국이 압박한다는 상황이 닮았지만, 달라진 변수가 파병 결정을 고차 방정식으로 만들고 있다. 먼저 ‘거여(巨與) 국회’ 상황인데도 파병 동의안 통과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반전 여론과 지지층 반발을 무릅쓰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한나라당이 우세인 ‘여소야대’ 정국이라 야당의 협조가 결정적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한·미 동맹을 이유로 비교적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현재는 민주당이 다수라 의석수만 놓고 보면 파병동의안 통과 요건(재적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과반 찬성)을 충족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이란전 개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범여권에선 조국혁신당·진보당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내부 핵심 지지 기반부터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다.
2003년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중앙포토 국회를 설득할 명분이 떨어진다는 것도 당시와 차이점이다. 2003년 조지 W 부시 정부 당시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유엔(UN·국제연합) 결의 위반을 전쟁 근거로 내세웠다. 미국은 몇 달씩 유엔 안보리와 국제사회에서 이라크의 WMD 문제를 제기했다. 미 의회에서도 무력 사용 권한을 승인받는 등 노력을 지속했다. 그런데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얻지 못했다. 프랑스·독일 등 주요 동맹국은 침공에 반대했고 결국 영국·호주 등 우방국을 중심으로 ‘의지의 연합’을 구성해 전쟁을 시작했다. 이란 전쟁은 당시보다도 국제법상 명분이 떨어진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국제법상 선제 타격(preemptive strike) 요건인 ‘즉각적이고, 임박한 위협’으로 볼 수 없다는 측면에서다. 미국 내에서조차 의회 승인 없는 전쟁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2003년과 달리 주요 동맹국도 파병에 선뜻 동참하지 않는 이유다.
북핵 위협의 강도가 훨씬 세졌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2003년 당시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는 등 북핵 위기가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핵무기 보유가 현실화한 상황은 아니었다. 북한은 이후 수차례 핵실험을 거쳐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자리 잡았다. 장거리 미사일 타격 능력도 고도화했다. 최근엔 중국·러시아와 연대를 강화하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도가 한층 올라갔다. 호르무즈에 파병할 경우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야 할 군사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2003년보다 더 민감하다. 자칫하면 한반도와 중동 두 곳의 안보 위험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의미다.
2003년 파병지가 이라크라면, 2026년은 이란의 영향력이 미치는 호르무즈해협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2003년 당시 이라크 파병은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뒤 이뤄졌다. 자이툰 부대는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했다. 반면 이란은 현재 미국과 직접 무력 충돌 중인 전쟁 당사자다. (전투부대가 아닌) 초계기와 군수지원함을 파견하더라도 이란이 전투 지원 행위로 볼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 호르무즈를 통한 중동 원유 수입에 크게 의존한다.
이란 국영 파르스 통신은 이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호르무즈에서 한국이 이란에 맞서는 행동을 한다면,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침략 및 전쟁에 대한 참여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