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자금난에 공급망 진입 어려워
핵심장비·공정 수주는 해외기업 몫
TSMC 중심 생태계 키운 대만처럼
실증 기업에 금융사다리 제공해야
국내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 건설 현장. 조태형 기자수출 대기업들이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을 바탕으로 쏟아낸 대규모 투자 계획의 온기가 국내 벤처·중소기업 생태계로 확산할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형 반도체 프로젝트의 핵심 장비·공정 수주가 해외 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데다 기술력을 갖춘 국내 기업들도 긴 실증·인증·양산 검증 과정에서 자금난에 부딪혀 공급망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10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각각 391조 원과 265조 원의 연결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들은 전례 없는 이익을 바탕으로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에 약 1500조 원을 투입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 등 다수 투자 청사진을 발표했다.
문제는 대규모 실적·투자의 온기가 벤처·중소기업까지 퍼지느냐다. 약 360조 원이 투자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ASML,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 등 글로벌 4대 장비 기업이 모두 지사를 설립했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생산 장비 대부분을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국내 한 반도체 장비 기업 대표는 “국내 기업이 공급 라인에 들어가도 2차·3차 공급사에 그치는 경우가 다수”라며 “대기업 입장에서는 한 번의 오류가 막대한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신규 진입 자체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벤처 업계에서는 기간·비용·인력 등의 부담이 큰 만큼 기업들에 기술 실증 및 양산 검증 과정을 뒷받침하는 방식의 정책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 다수가 벤처·중소기업에 실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대부분은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단순히 실증 기회를 주는 것을 넘어 공공기관이 전면에 나서 실증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거나 유망 실증 기업에 금융 사다리를 제공해야 협력 대기업과 벤처·중소기업이 ‘윈윈’하는 방식으로 중장기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TSMC를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가 견고히 형성돼 있는 대만은 공공기관인 공업기술연구원(ITRI)이 ‘실증의 중간 기지’ 역할을 한다. ITRI는 약 6500명의 연구원과 1조 원 이상의 예산을 운영하면서 현지 벤처·중소기업이 각종 기술 연구개발(R&D)과 실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규모 파일럿(테스트) 라인을 구축해 설계 검증, 공정 개발, 시제품 생산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고 팹리스에는 약 60개의 반도체 설계 지식재산권(IP)을 제공해 초기 비용과 리스크를 낮춰주고 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공동대표는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한국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라며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이 장기간 실증 및 검증을 거치는 과정에서 자금난으로 고사하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