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 신관 전경. 연합뉴스 KB금융이 현직 회장의 연임 대신 세대교체를 택하면서 금융당국이 추진해온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편의 방향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최고경영자(CEO)의 연임 횟수를 법으로 제한하기보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선임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쪽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1일 이재근 KB금융지주 글로벌사업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이 부문장은 양종희 현 회장과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을 제치고 최종 후보에 올랐다.
금융권에서는 당초 양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봤다. 양 회장 재임 기간 KB금융이 역대 최대 수준의 실적을 기록한 데다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도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추위는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조직 쇄신을 앞세워 새로운 리더십을 선택했다.
이번 결정이 관심을 받는 것은 별도의 임기 제한 없이 이사회가 현직 회장을 교체했다는 점이다. 금융지주 회장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이사회를 구성해 장기 집권의 기반을 다지는 이른바 ‘참호 구축’ 문제가 이번 인선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11일 오후 회의를 열어 이재근 KB금융 부문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이 부문장. 연합뉴스 양 회장이 장기 연임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첫 연임에 도전한 현직 회장도 실적만으로 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선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후보자의 경영 성과와 향후 전략을 평가한다면 CEO 임기를 법으로 일괄 제한하지 않고도 자체적인 견제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금융지주를 둘러싼 폐쇄적인 승계 구조와 장기 연임 문제를 손질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 관련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CEO 선임 과정의 공정성, 이사회 견제 기능, 성과보수 체계 등을 들여다봤다.
논의 과정에서는 금융지주 회장의 3연임을 법으로 막거나, 연임할 때 주주총회 의결 기준을 높이는 방안 등이 검토됐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3연임 후보를 추천하려면 사외이사 전원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그러나 민간 금융회사 CEO의 임기를 법률로 직접 제한하는 방식은 경영 자율성과 주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론에 부딪혔다. 해외 민간기업에서도 CEO의 연임 횟수를 법으로 제한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외이사 전원 동의를 요구하는 방안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사외이사 한 명에게 사실상 거부권을 부여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외부 압력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오히려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13일 국민은행 신관 전경. 연합뉴스 KB금융의 이번 선택은 이러한 논쟁에서 임기 자체보다 선임 절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CEO가 몇 차례 연임할 수 있는지를 일률적으로 정하기보다 후보군 관리와 평가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사회가 현직 회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KB금융은 이번 경영승계 절차를 이전보다 한 달 이상 앞당겨 후보자 검증 기간을 늘렸다. 외부 후보자가 정보 접근성 등의 측면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절차를 보완하고, 진행 과정도 시장에 공개했다. 최대 실적을 거둔 현직 회장이 탈락한 결과까지 더해지면서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여준 사례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KB금융 한 곳의 결정만으로 금융권의 지배구조 문제가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지주별로 CEO가 이사회 구성과 후보 추천 과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만큼 폐쇄적인 승계를 차단할 제도적 안전장치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는 당초 예고보다 늦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주요 금융지주의 회장 선임 절차가 본격화하기 전에 결과물을 내놓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률 개정안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신관 전경. 연합뉴스 이에 따라 최종안에는 CEO 연임 횟수를 직접 제한하는 내용보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독립성 강화, 선임·연임 절차 공시 확대, 사외이사의 책임성 제고 등이 비중 있게 담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사고나 대규모 손실이 뒤늦게 드러났을 때 이미 지급된 임원 성과급을 돌려받는 ‘클로백’ 제도 역시 주요 검토 과제로 꼽힌다.
결국 KB금융의 세대교체가 법적 연임 제한의 필요성을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지만, 규제의 초점을 ‘임기’에서 ‘절차’로 이동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 인선은 현직 회장의 연임을 법으로 제한하지 않더라도 독립적인 이사회와 투명한 평가 절차가 갖춰지면 내부 견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다만 한 번의 사례만으로 자율적인 개선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만큼 CEO 선임 과정의 투명성과 사외이사의 책임을 함께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