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음력 8월 3일이 양력으로 9월 13일이다. 그래서 서울 용산학 연구센터와 조선시대통신사 현창회는 통신사 옛길 걷기 행사를 벌였다. <조선시대통신사 옛길을 용산공원으로 다시 이어 보자>는 것이 주제고 취지다. 한 마디로 미군부대, 현재는 용산공원 때문에 통신사 옛길이 막혀 통행할 수가 없다. 그 길을 뚫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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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희궁 숭전정 앞을 출발하는 통신사 옛길 걷기팀 |
| ⓒ 이상기 |
당시 통신사는 8월 3일 출발지인 경희궁에서 남대문 이태원 한강진을 거쳐 양재까지 갔다. 통신사 정사 조엄이 쓴 <해사일기(海槎日記)>에 따르면 영조대왕이 경희궁 중문인 숭현문(崇賢門)까지 나와 통신 삼사를 맞이한다. 그리고 잘 갔다 오라(好往好來)는 격려의 글을 준다.
그래서 용산학 연구센터와 현창회는 9월 13일 경희궁에서 출발 남대문을 거쳐 이태원까지 통신사 옛길을 걷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경희궁 숭정전, 흥화문 표지석, 광화문 사거리, 시청, 덕수궁, 남대문, 남관왕묘, 두텁바위(우수현: 牛首峴), 전생서 표지석, 이태원 표지석(용산고등학교), 미군부대 게이트 20이다.
통신사 옛길 걷기 행사, 우회 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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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텁바위로 끝에 있는 게이트 20 |
| ⓒ 이상기 |
용산학 연구센터 10명, 통신사 현창회 15명, 팔도국악예술단 취타대 15명이 오전 10시 경희궁 숭정전 앞에 모였다. 이 행사를 주관한 용산학 연구센터 김천수 센터장이 행사의 취지와 의미를 설명하고, 일정을 안내한다. 이번 행사를 개최한 목적은 용산공원을 감싸고 있는 게이트(Gate) 20과 21을 열어 통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게이트 20은 두텁바위로 남쪽 끝에 있다. 게이트 21은 녹사평역 쪽에 있다.
이 길이 막혀 통신사 옛길 걷기 행사를 할 때마다, 이태원로, 숙대입구역, 전쟁기념관으로 우회해 녹사평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직선거리의 3배나 되는 거리를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길을 뚫기 위해 게이트 20 앞에까지 갔지만 올해도 역시나 통과할 수 없었다. 케이트 20은 철책과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철책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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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한구역 경고판 |
| ⓒ 이상기 |
"제한구역. 경고. 1950년 통과된 국내 보안법 제21절의 규정에 의거한 1954년 8월 20일자 국방장관 지시에 의거하여, 사령관의 명에 따라 이 지역은 제한구역으로 선포되었음. 본 지역을 출입하는 모든 요원 및 차량은 검색을 받아야 함. 부대장이 특별히 허가하지 않는 한, 본 지역에 대한 촬영, 도화, 기록, 지도 또는 도표의 작성 및 동 행위는 금지됨. 상기 자료를 가진 비인가자가 발견되는 경우 압수될 것임."
1954년부터니 무려 70년 이상 이곳은 금단이 땅이 되었다. 이 길은 과거 충청도와 영남지방 사람들이 한강을 건너 서울로 들어오는 거의 마지막 고개였다. 이 고개에 서면 북한산 보현봉이 정면으로 보인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25명 회원은 게이트 20 앞에 서서 "게이트 20, 열자!"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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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부대에 의해 만들어진 출입금지 표지판 |
| ⓒ 이상기 |
이곳은 막다른 길이어서 군부대를 출입하는 사람 외에는 찾지 않는다. 군 관련 시설로는 국군복지단, 국방시설본부, 국방대학교, 국가안전보장연구소가 있다. 회원들의 외침이 국군복지단과 용산공원 쪽으로 울려 퍼진다. 이번에도 공허한 외침이 되고 말 것인가.
공원 안으로 연결된 길이 600m 정도다. 길이 잘 나 있어 문만 열면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다. 그동안은 미군 부대여서 통과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평택으로 이전해 소유권이 우리에게로 넘어왔는데 문을 못 여는 이유가 뭘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용산공원의 보존과 개발은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문을 여는 것은 법 개정과 명령 두 가지 절차만 있으면 가능하다. 당장 문을 열기 위한 조치에 들어가야 한다. 국회와 국방부가 나서기를 바란다. 서울 시민과 우리 국민은 이태원 옛길을 돌려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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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이트 20, 열자!"고 외치는 회원들 |
| ⓒ 이상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