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호르무즈해협 인근의 선박들. 로이터=연합뉴스 아일랜드를 방문 중인 트럼프는 13일(현지시간) 기자들을 만나 “우리는 결국 (이란에서)빠져나올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처럼 원유를 확보하기 위해 잔류를 결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원유 확보를 통해 거둔 미국의 수입이 “전쟁 비용을 몇 번이고 치르고도 남을 정도였다”고도 주장했다. 트럼프가 이란 원유 확보를 거론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호르무즈해협을 열고 원유를 차지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주장했고, 6월에는 이란의 원유·가스 산업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이란 원유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온 셈인데, 이번에는 이란에 남을 가능성을 거론하며 베네수엘라 모델을 직접 연결했다는 점에서 한발 더 나아간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유전 확보를 밀어붙였던 것과 유사하게 원유 통제를 위해 이란에 남을 수 있다고 시사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이란 전쟁은 올해, 어쩌면 중간선거 직후 종료될 것이다. 이란은 몹시 합의를 원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연락해 오고 있다”는 기존의 주장도 거듭했다. 또 “올바른 합의”만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트럼프의 발언이 현실화해 전쟁의 성격이 바뀌면 한국이 검토하는 파병의 성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란 원유 확보에 나선다면 이는 곧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 개입이나 주둔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현재 정부가 무게를 두는 항행의 자유 확보 지원을 위한 제한적 파병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이란 세력이 공세에 나서며 전선 역시 달라지고 있다. 후티는 홍해 연안 항구도시 모카를 장악한 데 이어 바브알만다브해협 한가운데 있는 페림섬까지 진출했다. 호르무즈해협이 막히자 사우디아라비아가 핵심 우회로로 활용했던 동서송유관도 드론 공격을 받았다. 이란 본토와 호르무즈해협에 집중됐던 전선이 이라크–사우디–예멘–홍해로 이어지는 ‘분산형 전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의 전황도 악화 일로다. 이란이 미군함을 공격하고, 미국이 이란 유조선을 타격하며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호르무즈해협 케슘섬 인근에서 이란 상선이 공격받아 1명이 숨졌다.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는 해협을 통과하던 선박을 발사체가 타격해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는데, 동일 선박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란은 “테러 세력”이 배후라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공격 주체는 밝히지 않았다. 미국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호르무즈 통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4일 오만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란과 걸프 국가들의 회의도 연기됐다. “합의 도출을 위해”서라는 설명이지만(13일 바드르 알부사이디 오만 외무장관 X), 외교적 출구 모색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정부가 장고에 들어간 사이 전쟁의 목표와 전선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다. 파병의 목표를 상선 보호에만 둘 것인지, 작전구역이 호르무즈해협을 넘어 홍해·바브알만다브해협까지 확장될 것인지, 철수 시점의 기준을 어떤 성격의 작전 종료로 잡을지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고려 요소가 한층 많아졌다는 뜻이다.
전선 확대가 미국에도 새로운 딜레마를 안기면서 미국이 동맹국에 요구하는 기여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로이터는 미국이 사우디와 홍해 항로를 보호하려면 상당한 해·공군 전력과 방공 요격미사일을 투입해 예멘에 또 다른 전선을 열어야 하고, 개입하지 않는다면 사우디와 예멘 정부를 사실상 후티에 맞서 홀로 싸우게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또 중간선거를 앞두고 치솟는 기름값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군사적 지원 요청을 미국이 거절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트럼프는 빈 살만과 통화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는 전날 기자들에게 “후티도 우리에게 전화해 미국과 싸우고 싶지 않으며, 우리가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미국조차 후티를 상대로 새롭게 전선을 여는 걸 주저하면서 동맹에는 호르무즈해협에서 더 큰 역할을 바라는 모순적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로이터에 “역내 파트너들이 지역 안보 문제의 관리와 해결을 주도하도록 하면서 홍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전쟁부)는 한국의 파병과 관련한 언론 질의에는 “잠재적 파병(any potential deployment)과 관련해서는 한국 정부에 문의하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기대해왔다”는 답만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