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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감각② 박소령 “좋아서 뛴 10년, 다음 승부는 다르다”

Editor's Note 웰니스·뷰티 업계 여성 리더 6인이 그동안 벼려온 '승부의 감각'을 최초 공개합니다. 기존 플레이북을 따르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업계를 이끈 리더들이죠.

두 번째 만난 사람은 박소령 전 퍼블리 대표입니다. 2015년 퍼블리 창업 후 10년간 사업을 이끌다, 2024년 회사 매각과 함께 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통해 첫 번째 승부의 시간을 깊게 복기했죠. 잘못 내린 판단에 대한 회고와 후회, 아쉬움까지 글로 다 쏟아내고 나니 대청소를 한 듯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해요. 2026년 1월 1일부터는 안식년을 보내며 의도적으로 비우고 채우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 시간을 통과한 뒤입니다. 이제는 '그때 무엇을 잘못했나'보다 '다음엔 어떻게 다르게 뛰고 싶은가'가 보이기 시작했다고요. 좋아하는 것보다 '원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바깥의 움직임보다 '내 돌'을 먼저 보겠다. 한두번의 승패보다 긴 시즌의 승률을 쌓고, 다음 경기를 위한 판돈을 남겨두겠다.

다음 승부를 앞둔 그의 두 번째 출사표를 들었습니다.

*한화손보×폴인 〈ASCENT: 승부의 감각〉은 웰니스·뷰티 업계 여성 리더 50인과 함께하는 오프라인 네트워킹 프로그램으로 이어집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티클 하단 또는 이곳을 참고해 주세요
승부의 감각 1.
원하는 걸 지키려면 '내 돌'을 봐야 한다

Q. 안식년, 어떻게 보내고 계세요?

아홉달쯤 지났네요. 절반 이상은 여행 다녔고, 집에 있을 땐 콘텐츠 보고 운동하고….

작년에 책을 프로젝트 하듯 썼어요. '2026년 1월 1일부터는 무조건 안식년이다' 하고 몇 가지 키워드를 정했어요. 자극, 충전, 모험…. 그 키워드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어요. 다른 활동이 끼어들 여지를 아예 만들지 않으려고 올해 갈 여행 티켓도 다 끊어뒀어요. 안 그러면 흔들릴 것 같아서요.

Q. 그 정도로 자극과 충전이 필요하셨던 거예요?

어쩌면 그만큼 회복이 됐단 뜻이에요. 책을 쓰면서 머릿속에 있는 기억이나 감정, 그러니까 후회, 반성, 아쉬움 같은 것들을 글자라는 형태로 한 번 다 옮겼잖아요. 머릿속을 다 털어내는 대청소를 해버리니까 몸까지도 가벼워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마음에 여유와 공간이 생기니까 뭘 좀 넣고 싶었어요.
″운동선수로 치면 시즌 오프를 보내고 있어요. 시즌을 위한 연료를 비축하는 시간이요.″ ©폴인 ″운동선수로 치면 시즌 오프를 보내고 있어요. 시즌을 위한 연료를 비축하는 시간이요.″ ©폴인
운동선수로 치면 시즌 오프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즌 때 쓸 연료를 미리 비축해두는 시간.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시즌 중 퍼포먼스가 달라지죠. 잘 자고, 매일 운동하고, 건강하게 챙겨 먹어요. 삼시 세끼 직접 요리도 하고요. 원래 요리를 전혀 안 하던 사람인데(웃음). 제철 재료를 장 봐와서 한 끼씩 차려 먹는 게 좋더라고요. '나를 해먹인다'는 느낌은 인생에서 처음이에요.

다시 일터로 돌아가면 파도의 고저가 다시 들이닥칠 거잖아요. 그때마다 나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지금 찾아두려고 해요. 어떻게 해야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멘탈이 무너졌을 때 어떻게 하면 빨리 회복되는지. 나중엔 일에 허덕일 테니 지금 충분히 테스트해두려고요.

Q. 잘 채워지고 있나요?

그런가봐요. 이제 일을 해도 되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 경기장 들어가도 되겠다. 다시 경기 뛰고 싶다. "
그런 투지 같은 게 올라와요.

Q. 두 번째 승부를 시작하고 싶다.

그렇죠. 제 이름으로 사업을 다시 하고 싶어요.

하지만 당장은 아니에요. 아직 확신이 서는 아이디어가 없어요. 그림이 그려지면 테스트 돌리고 검증하고 그것까지 거치면 제 시간을 100% 쓸 것 같아요. 그 과정 없이 함부로 사업하겠다고 뛰어들면 안될 것 같다, 경험상(웃음).

안식년이 끝나면 일단 조직에 소속되어서 일을 하려고요. 재취업하겠다는 거예요. 어디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어요. 사업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존경할 수 있는 분들한테 배우면서 저를 잘 조각해가려고요.

Q. 첫 번째 경기와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출사표 같은 게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겠다."

퍼블리를 시작한 2015년엔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콘텐츠를 좋아하니까 콘텐츠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어로 된 지식·정보 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더 풍성한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겠다.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러다 보니 계몽주의로 갈 수 밖에 없었단 걸 나중에 알았어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어요.

Q. 무엇이었나요?

내가 강렬하게 원하는 최종 장면을 시각화하지 못했다는 것.

출발점만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니까 어디로 뻗어나갈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럼 내가 뭘 원하는지라도 명확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 했고요. 답안지가 명확하지 않고 애매하게 비어 있으니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 의견이 침투하기 쉬웠어요. '이렇게 하는 게 좋대' '저게 잘된대' 수많은 말에 휩쓸렸죠. 사업을 시작했던 최초의 동기와 미션도 어느 순간 놓쳤고, 거기까지 가는 방법에서도 많이 흔들렸어요.

제가 회사 나오고 1년 가까이 바둑을 배웠는데요. 그때 더 선명해졌어요. 바둑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초보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상대가 돌을 두면 그 돌에만 꽂혀서 바로 다음 수를 둔다. 먼저 내 돌을 보고, 상대 돌을 본 뒤에, 새 돌을 둬야 한다. 그런데 보통 내 돌이나 상대 돌 둘 중 하나만 본다고요.

사업하면서 남의 돌을 너무 많이 봤어요. 물론 커리어리 같은 경우는 경쟁자가 많은 시장에 후발주자로 들어갔기 때문에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경쟁사가 뭘 하는지 보는 건 당연히 필요했죠. 하지만 일단 들어간 뒤에는 내 돌을 제대로 봤어야 해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우리가 가진 강점과 자산은 뭔지, 어디에 어떻게 진입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그것만 들여다보기도 시간이 모자라거든요. 그런데 바깥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니까 자꾸 휩쓸렸어요. 정작 내 돌은 제대로 보지 못한 채로요. 바둑을 둘 때마다 그때의 실수들이 떠올랐어요.

승부의 감각 2.
원하는 끝그림에서 역산한다

Q. 그래서 다음 사업에서는 무엇을 다르게 하고 싶으세요?

내가 '원하는 것'에서 시작할 거예요. 강렬하게 원하는 것, 그러니까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를 먼저 그리는 거예요. 목적지가 명확하면 거기서부터 역산할 수 있잖아요. 지금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도 훨씬 명료해지고요.
여름에 『리딩』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오래 일한 알렉스 퍼거슨과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VC 중 하나인 세콰이어 캐피털의 마이클 모리츠 전 회장이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축구팀을 이끄는 리더십을 사업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에요.

거기서 마이클 모리츠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수많은 창업자를 만나본 결과, 사업을 잘하는 대표일수록 본인이 원하는 게 아주 명확하다. 그걸 아주 단순하고 직설적이고 짧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반대로 회사가 잘 풀리지 않는 이유를 파고들다 보면 대표부터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

퍼거슨 감독이 잘했던 것도 그거였어요. 경기 전에 선수들에게 오늘 팀에 원하는 것, 선수 개개인에게 원하는 것을 아주 짧고 명료하게 전달했대요. 그게 가능했던 건 평생 만들고 싶은 팀의 모습, 최종 목적지가 명확했기 때문이고요. 그는 1993년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모든 경기의 승리를 원한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했어요. 이 메시지가 곧 클럽의 정신을 잘 대변했고, 이 사실을 모든 선수가 받아들일 때 탁월함이 목표가 된다고 했죠. 그 큰 그림에서 시작해 매년의 목표와 액션 플랜을 쪼개나갔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난 10년 동안 이런 식으로 사업을 안 했구나' 반성했어요. 다시 내 사업을 한다면 북극성 같은 그림을 그려야겠다. 설령 그 그림이 나중에 바뀐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명확해야겠다. 그럼 매일의 작은 판단부터 회사의 방향을 바꾸는 큰 결정까지 훨씬 명료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그 끝그림은 얼마나 구체적이어야 할까요?

숫자로 바꿀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메타의 저커버그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팀원들을 숫자로 얼라인시키니까 훨씬 잘하더라." 저도 제 자신을 그렇게 얼라인하고 싶어요. 몸과 마음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면, 내가 원하는 게 숫자로 표현될 만큼 명확해야겠다.
″내가 강렬하게 원하는 것, 그걸 끝그림으로 두고 시작하려고요.″ ©폴인 ″내가 강렬하게 원하는 것, 그걸 끝그림으로 두고 시작하려고요.″ ©폴인
Q. 그런데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건 어떻게 다른 거예요? 퍼블리는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했다고 했는데요.

좋아하는 건 이유가 없어요. 마음이 먼저 활짝 열리는 것에 가깝다고 보고요. 느낌과 주관의 영역이라고 봅니다. 반면 원하는 건 뒤에 이유가 좀 더 붙어요. 저한테는 과정보다 결과물에 훨씬 가까운 개념이고요. 내가 원하는 끝의 그림, 목적지 같은 거죠.

물론 이게 모두에게 필요한 건 아니에요. 원하는 게 명확하지 않아도 사업을 잘하는 분은 많고, 반대로 명확하다고 사업이 잘되는 것도 아니에요. 이게 저한테 중요한 이유는 첫 번째 사업에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게 후회와 반성으로 남았기 때문이에요.

2년 전만 해도 누가 "다음에도 콘텐츠로 사업할 거야?"라고 하면 당연하다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콘텐츠가 내가 원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하는 거고, 아니라면 안 하는 거죠.

Q. 꽤 큰 변화처럼 들려요. 좋아하는 걸로 사업까지 해보셨잖아요.

인생에서 내가 가진 특정 고민의 시기에 어떤 콘텐츠와 사람을 만나느냐가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운의 영역이죠.

한창 이 고민을 할 때 '블루 피리어드'라는 일본 만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주인공은 고등학생 때 우연한 계기로 미술부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그림과 사랑에 빠져요. 마침 재능도 있었죠. 일본 최고로 꼽히는 미술대에 진학하게 되고, 어마어마하게 깨지고 성장한 끝에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게 17권까지의 이야기예요.

반 년쯤 지나 18권이 나왔어요. 오랜만에 등장하는 인물이 나와요. 주인공이 고등학교 때 엄청 존경했던 선배. 그 선배는 다른 대학교 미대에 갔어요.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이 선배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합니다. "나는 작가가 될 생각이 없어, 취직할 거야."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커리어와 연결하지 않겠다고요. 좋아하는 걸 최대한 보호하는 길을 선택한 거죠.

예전의 저라면 아마 무조건 주인공의 선택이 맞다고 했을 거예요. 좋아하는 걸 일로 해야 더 잘하고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대로 보호해도 충분히 좋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오래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 꼭 '좋아함'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무언가를 잘할 때의 감각도 좋고, 그게 성과로 이어질 때도 좋아요. 좋아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잘하고 성취하는 과정 그 자체도 즐기면서 충분히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요즘은 그렇게 저를 다시 알아가고 있어요.

승부의 감각 3.
한 번의 승패보다 승률을 본다

Q. '경기' '승부' 같은 비유를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도 스포츠 즐겨보시죠?

두루두루 좋아해서 즐겨 봐요. 제가 좋아하는 몇 가지 요소가 섞여 있어요. 일단 운동하는 사람들을 존경해요. 세계 최정상에 한 번이라도 서본 사람들은 재능만으론 불가한 것 같아요. 그 뒤에 쌓인 자기 절제, 훈련, 단련의 시간을 보면 동기부여가 많이 되더라고요.

스포츠는 기록 싸움이잖아요. 상대가 있고, 승패가 갈리고, 그 결과가 숫자와 기록으로 명확하게 남아요. 승부 자체도 좋아하지만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가 숫자로 찍힌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월드컵 같은 단일 종목 대회도 좋아하지만 여러 종목이 치르는 올림픽 같은 대회가 훨씬 재밌더라고요. 수많은 종목에서 사람들이 자기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경쟁해서 금·은·동을 가리는 모습을 보면 '인간은 위대하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어떻게 보면 스포츠는 인간의 경쟁심을 가장 건강하게 쏟아낼 수 있는 장 아닐까요. 전쟁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대체재 같단 생각도 들어요.

Q. 어떤 선수를 좋아하세요?

1, 2년 반짝이는 선수보다 10년, 20년 뛰는 선수, 감독, 팀을 훨씬 좋아해요. 어떤 면에서는 그게 훨씬 어려운 일이고, 인간의 본성과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귀하고, 귀한 만큼 존경을 받는 것이고요.

그래서 라파엘 나달을 정말 좋아해요.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죠. 넷플릭스에 〈나달〉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는데요. 그걸 보고 더 좋아하게 됐어요. 나달은 커리어 내내 부상에 시달렸어요. 두 번의 그랜드슬램 우승을 하고 잘나가던 커리어 초반, 발에 이상이 생겼단 걸 알게 돼요. 수술을 하면 이전처럼 발을 쓸 수 없는 위험이 있었어요. 결국 특수한 깔창을 끼고 몸의 균형이 틀어지는 걸 감수하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쪽을 택했어요. 그 상태에 맞춰 다시 몸을 훈련했고, 이후에도 수많은 부상을 겪으면서 계속 뛰고 우승했죠.

제가 나달을 좋아하는 건 고통을 대하는 이 태도 때문이에요. 얼마든 고통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자기 몸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요. 굳이 피하려고 하지도, 대단하게 극복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게 굉장히 담대해 보이더라고요.

저는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일을 그렇게 바라보려고 해요. 일을 하다 보면 예측할 수 있는 고통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고통도 계속 찾아오잖아요. 그때마다 '이걸 어떻게 피하지?' 생각하기보다, 일을 계속하는 한 따라오기 마련인 것이라 받아들이는 거죠.

고통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걸 데리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는 것. 결국 10년, 20년 뛰는 사람은 고통을 데리고 가는 법을 아는 사람 아닐까요?

©폴인 ©폴인 Q. 오래 뛰는 만큼, 오래 잘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요즘 승률에 관해 생각해요.

아까 이야기한 『리딩』에 그런 이야기가 나와요. 퍼거슨은 38년 동안 프로 스포츠 팀 감독을 했는데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가장 잘 나가던 시즌에도 승률이 70% 정도였대요. 감독 커리어 전체로 보면 50% 후반대고요. 결국 10번 중 6번을 꾸준히 이기면 세계 최고의 감독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다른 종목도 비슷해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는 커리어 내내 310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지켰어요. 윔블던에서 8번을 우승했고요. 그는 프로 생활을 하며 경기의 80%를 이겼는데요, 포인트 별로 분석하면 승률은 54% 정도라고 해요. 야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 프로야구 정규 리그 우승팀의 승률은 대부분 60%였어요. 7할이 넘은 건 단 2번에 불과하죠. 앞자리가 6이면 거의 1등인 거예요. 5할이면 중간 정도고요. 딱 한 경기 차이 같지만, 그걸 100경기가 넘는 시즌 내내 반복하면 엄청난 격차가 생기는 거죠.

저는 한두 경기 승패에 매달리기보다, 긴 시즌을 끝까지 뛰면서 승률을 쌓아가고 싶어요. 매번 이긴다면야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계속 경기장에 나가면서 10번 중 6번 정도 꾸준히 이기는 것.

그래서 저는 요즘 시간의 활주로를 늘리는 데 관심이 많아요.

Q. '시간의 활주로'요?

『내러티브 앤 넘버스』라는 책에서 인상 깊게 본 이야기가 있어요. 운이 많이 발휘되는 종목일수록 시합에 들어가는 횟수를 늘려야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월드컵은 위로 올라갈수록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잖아요. 단판 승부니까 강팀도 질 수 있고, 약팀도 이변을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정규 시즌을 100경기쯤 치르면 달라져요. 각자의 본 실력에 가까운 순위가 나와요. 정직하게.

제 진짜 실력에 최대한 정직한 결과를 받고 싶어요. 한두 경기의 운에 결과를 맡기는 대신, 충분히 많은 타석에 서서 내 실력이 결국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내 승률은 얼마쯤 되는지 보고 싶은 거죠. 시간의 활주로를 늘리고, 최대한 많은 경기를 뛰고 싶어요.

Q. 계속 경기에 나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다음 시합에 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놔야 해요. 이번 판에 다 걸어야겠어 하는 건 저한텐 승부가 아니라 도박이에요. 이번 판에서 실패해도 돼요. 돈 잃어도 돼요. 그런데 100% 잃으면 안돼요. 남은 판돈이 있어야 그거 들고 다음 시합에 가니까요.

계속 타석에 서려면 이번 시합이 끝났을 때 다음 시합에 필요한 무언가가 남아 있어야 해요. 그게 뭔지는 시합마다 다르겠죠. 돈일 수도 있고 체력일 수도 있고, 마음일 수도 있고.

이길 때보다 오히려 질 때 여지를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하면서 승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좀 합니다.

승부의 감각 4.
눈이 머는 건 막을 수 없다, 돌아올 장치를 만든다

Q. 사업하는 사람들은 자기 확신이 강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어요. 소령님도 그런 편인가요?

퍼블리 할 때의 나는 어땠는가. 거의 없던 것 같습니다. 이게 될 거야, 안 될거야, 얼마나 될 거야 그런 확신은 못 느껴봤어요.

Q. 확신이 없이도 계속 할 수 있던 힘은 뭐였어요? 무엇이 땔감이 되어줬나요?

처음엔 '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력이 됐고요. 그다음에는 팀이 불으면서 눈덩이가 굴러갔고, 다음엔 저자든 주주든 이해관계자가 붙으면서 더 커졌죠.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눈덩이처럼 달라붙으면 그 자체가 엄청난 힘이고 동력이 돼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아차 싶었던 건, 어느 순간에는 남들한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가까운 친구들이 말해줘서 알게 됐어요.

책임감이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땔감일 수 있어요. 그런데 적어도 저에겐 아니었던 것 같아요.
©폴인 ©폴인
Q. 그럼 소령님한테 건강한 땔감은 뭔가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감각이요. 가능하면 그게 숫자로 찍히면 더 좋고요. 타인한테 의존한 감정 때문에 일을 하는 건 내재적인 동력이 될 수 없어요.

올 초에 『죽음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할 수 있다』를 재밌게 읽었어요. 저자가 스토아 철학을 자신의 일과 삶에 적용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나를 움직이는 힘을 타인의 행동과 연결해두면 불행해지기 쉽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연결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제가 유튜브 채널을 만든다고 할 때, 조회수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히 통제할 수 없잖아요. 거기에 내 행복을 걸어두면 결국 내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셈이에요. 비슷하게 생각해요. 저를 움직이는 힘은 최대한 제 안에 두고 싶어요.

Q.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자꾸 바깥에 의해 흔들리는데, 어떻게 다시 나로 돌아오고 돌아오는 작업을 했나요?

잘 못했습니다. 못 했으니까 제가….

Q. 다시 사업하면 그때보다 낫겠다 생각은 드세요?

나아야죠. 인간이니까 나아야 되죠(웃음).

근데 아마 또 눈이 멀 거예요. 아무리 나를 중심에 둬야지 결심해봐야 또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니까. 이제는 눈이 머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대신 생각을 바꿨죠. 눈이 먼 다음에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자. 평소에 장치를 세팅해두자. 저한테는 3가지 정도 있어요.

첫째는 글쓰기. 매일 아침 10분 정도 비공개로 블로그에 일기를 써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2, 3 단계쯤 가놓고 '충분히 생각했다'고 착각하기 쉬워요. 그리고는 의사결정을 내리죠. 거기서 많은 패착이 나왔어요. 글로 쓰면 생각의 뎁스를 더 내릴 수 있어요. 4, 5단계, 그 이상까지도요. 그래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내 머리로만 생각한 것에 속지 말자. 글을 충분히 깊게 써봐야 된다' 생각해요.

둘째는 체크리스트 만들기. 워렌 버핏의 평생 동업자였던 찰리 멍거가 쓴 책 『가난한 찰리의 연감』을 보면, 인간은 심리적 편향에 빠지기 쉬우니 자신이 반복해서 빠지는 오류를 체크리스트로 만들어두라고 해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내가 또 이 오류에 빠진 건 아닌가?' 검토하는 거죠. 꼭 거창할 필요도 없어요. 오늘 하루나 지난 한 달만 돌아봐도 '이건 잘못했네, 이건 놓쳤네' 싶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걸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다음 행동을 교정하기가 훨씬 쉬워져요.

셋째, 도움 구하기. 조언자 그룹이 중요해요. 구멍에 머리를 넣고 눈이 멀어 있을 때 거기서 끄집어내줄 사람이 몇 명은 있어야 해요. 내 상태를 설명하다 보면 머리를 톡톡 쳐주는 역할을 해주거든요. 못 보고 있던 걸 짚어주거나 정신이 번쩍 들게 해주거나. 물론 나로 돌아올 장치를 스스로 갖추긴 해야 하지만, 혼자 빠져나오기 어려울 땐 다른 사람에게 SOS를 치면 됩니다.

승부의 감각 5.
끝이 무한히 커지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Q. '지나고 보니 의외로 이게 중요하더라' 하는 것 있나요?

목표의 '상단'을 정하는 거요.

사업을 그만두고 투자, 금융 관련 콘텐츠를 많이 봤어요. 그때 알게 된 개념인데요. 주식에 투자할 때는 돈을 넣기 전에 상단과 하단을 정해놓는다는 거예요. '여기까지 오르면 팔겠다'는 목표 수익률과 '여기까지 떨어지면 손절하겠다'하는 선을 미리 정하는 거죠. 돈을 넣고 나면 이미 이해관계가 생기고 눈이 멀기 때문에, 그때 가서 정하면 늦는다는 거예요.

저는 여기서 이 상단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사업도 잘될수록 꿈이 계속 커질 수 있잖아요. 다음 목표가 생기고, 그걸 이루면 또 다음 목표가 생기고. 그렇게 계속 가는 방법도 있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는 이 사업이 어디까지 가면 만족할 것인가' 하는 상단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거기 도달했을 때 더 욕심을 부릴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할지, 만족하고 빠져나올지를 판단할 수 있어요.

상단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전의 선택도 달라져요. 투자를 받을지, 받는다면 어떤 성격의 돈을 받을지, 팀은 얼마나 크게 만들지 같은 결정이 전부 연결돼 있고요. 물론 그 숫자는 중간에 바뀔 수 있어요. 그래도 지금의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상단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게 중요해요.

Q. 다음 커리어에서 지금까지와 다르게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고민이라기보다는 희망에 가까운데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보면, 어느 시점에 일본에서 쌓아온 기반을 정리하고 미국과 유럽으로 떠나요. 이미 익숙한 환경에서 충분히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는데도 완전히 낯선 곳으로 자신을 옮긴 거죠. 출판사를 직접 찾아다니면서 문 두드려 만나고요. 저는 그 선택이 지금의 하루키를 만드는 데 굉장히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안온한 환경에 머무르는 대신 일부러 자신을 낯선 곳에 집어넣은 거잖아요.

그래서 저도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만큼 '어디에서 할까'를 중요하게 생각해보고 싶어요. 일하는 공간이나 환경을 지금보다 훨씬 낯선 곳으로 옮겨보고 싶다. 그럴수록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바운더리가 넓어진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생각해보면 결국 원하는 건 저를 계속 좋은 상태로 만드는 것 같아요. 제 방 전신 거울에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어요. "내 몸을 최고급 악기처럼". 사람이 죽으면 끝이잖아요. 죽기 전까지는 이 몸을 최상의 악기처럼 관리하고 싶어요. 잘 자고, 운동하고, 세 끼 건강히 챙겨 먹고. 떄로는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도 그중 하나죠.

꼭 일을 잘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몸이 최상의 상태일 때 내면의 만족감도 극대화되는 것 같아요. 그건 외부의 잣대와는 상관없는, 완전히 저만의 기준이잖아요. 가능한 가장 좋은 상태에 있다는 감각. 저는 그걸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를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드는 것,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 안에 나를 두는 것. 그게 요즘 제가 가장 강렬하게 원하는 것 같아요.″ ©폴인 ″나를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드는 것,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 안에 나를 두는 것. 그게 요즘 제가 가장 강렬하게 원하는 것 같아요.″ ©폴인
Q. 마지막으로, Ascént에 함께하실 분들께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저희 할아버지의 여동생이 비구니 스님이셨어요.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불교적인 개념에 자연스럽게 익숙했는데, 그중에서도 저한테 중요하게 남은 단어가 '인연'이에요. 살다 보면 어떤 결정은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만, 인연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결과로 연결되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2014, 15년쯤 백수로 지냈는데, 그때 어떤 회사가 절 뽑아줘서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면 아마 오늘날의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때 창업을 해야겠다 선택했기 때문에 그 결정 하나가 오늘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어떤 결정들은 10년, 20년, 30년 뒤에 그 결과를 알 수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어센트에서 만나뵙게 될 분들도 그날 하루의 인연도 있겠지만 이게 시간이 10년, 20년, 30년 흐른 후에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지 모르죠. 그런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나 뵐 수 있는 자리가 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화손보와 폴인이 함께하는 여성 리더 네트워킹 프로그램 〈Ascént: 승부의 감각〉에 초대합니다. Ascént 1기는 웰니스&뷰티 업계 리더 50인과 함께 합니다.

- 일시: 2026. 10. 31(토)~2026. 11. 1(일) 양일간
- 장소: 한화손보 한남사옥(서울 용산구 독서당로29길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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