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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접종물량은 지켰지만…민간 독감 백신 '반쪽 대란'

WHO 백신주 전면 교체로 독감 백신 450만명분 급감
녹십자·SK바사, 단기 증산 어려워…'초기 물량' 고비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데일리안 = 한보라 기자] 민간 병·의원의 독감 백신 수급 문제가 단기간에 풀리긴 어려울 전망이다. 독감 유행은 이례적으로 빨라졌는데 백신 공급은 되레 줄어든 탓이다. 백신 제조에 쓰이는 균주가 한꺼번에 바뀐 데다 해외 제약사의 초기 공급까지 밀렸다. 제조 공정상 백신의 생산량을 늘리기도 어려운 만큼 올해 초기 접종 물량은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GC녹십자는 질병관리청에 국가예방접종(NIP)용 독감 백신 '지씨플루' 50만 도즈(1회분)를 추가 공급했다. 당초 녹십자가 이번 절기(2026-2027절기)에 공급하기로 했던 물량은 266만 도즈다. 글로벌 빅파마 사노피의 NIP용 독감 백신 초기 공급에 차질이 생긴 결과다.

이번 공급 부족은 구조적인 현상이다. 매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유행이 예상되는 독감 균주를 지정한다. 이때 전 세계 각국 제조사에 백신 제조용 균주(CVV)와 검정용 표준품(기준주)을 함께 배포한다. 백신 제조사는 균주를 수령한 이후에나 가을 접종용 독감 백신을 만들 수 있다. 통상 7개월 안에 균주를 배양하고 생산한 뒤 품질 검사까지 마쳐야 하는 구조다.

올해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급박했다. 우선 올해 WHO가 권고한 백신 균주는 지난해와 완전히 상이했다. 백신 제조사들은 새로운 균주에 맞춰 생산 공정을 다시 최적화해야 했다. 생산 효율(수율) 자체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WHO가 독감 균주의 기준주를 배포한 시점도 평년보다 늦었다.

반면 독감 유행은 지난해보다 한 달 이상 빨랐다. 올해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 발령 시점은 2011년 이후 가장 빨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외 독감 백신마저 제때 들어오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빅파마 사노피의 국내 NIP용 독감 백신 초기 공급은 지연됐다.

한 제약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WHO 권고 균주가 한꺼번에 바뀌면서 제조사마다 생산 공정을 처음부터 다시 잡아야 했다"며 "이렇게 균주가 전면 교체되면 배양이 잘 될지, 수율이 나올지를 다시 확인해야 해 생산이 평년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확보 가능한 독감 백신 물량 자체가 줄어든 배경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생산 및 수입된 독감 백신 물량은 전년대비 400만도즈 줄었다. 여기에 녹십자는 원래 민간 병·의원에 공급할 예정이었던 독감 백신 50만 도즈까지 NIP용으로 전환했다. 민간과 정부를 통틀어 국내에서 필요로 하는 독감 백신 6~7개 중 1개가 비어버린 꼴이다.

그렇다고 해서 백신 제조사들이 독감 백신 생산량을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 독감 백신은 대부분 유정란 배양 방식으로 생산된다. 계란에 독감 균주를 넣어 일일이 키워내는 방식이다. 지금 당장 만들기 시작해도 5개월 남짓한 시간이 필요하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독감 백신 방식인 '세포 배양' 역시 여전히 2~3개월이 소요된다.

재무적으로도 계획에 없던 증산은 부담이다. 독감 백신은 유행 균주에 맞춰 만드는 계절성 제품이다. 접종 수요가 몰리는 시기가 지나면 독감 백신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섣불리 생산을 늘렸다가는 추가로 만든 물량 대부분을 손실 처리해야 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국내 독감 백신 수급 체계의 안전망 부재를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올해 독감 백신 공급 불안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실제로 영국에서도 사노피가 성인용 독감 백신 물량을 대거 취소해 접종 수급 불안이 발생했었다. 이때 영국에서는 다른 백신 제조사인 CSL시퀴러스의 독감 백신 여유분을 통해 수급 불안을 해소했다. 반면 국내 백신 제조사는 예비 물량을 만들 여유가 없어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번처럼 민간에 갈 물량을 빼서 메우는 방식으로는 한쪽을 지키면 다른 쪽이 빌 수밖에 없다"며 "시장 공급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부족분을 채울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려면 제조사가 애초에 물량을 넉넉히 만들어둘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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