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BYD 하이브리드 SUV. 사진=EPA유럽연합(EU)이 중국산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유럽 시장 점유율을 현재 3분의 1 이상에서 약 15%로 낮추도록 중국에 자율적인 수출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EU가 추가 관세를 포함한 수입 제한에 나설 수 있어 양측의 자동차 무역 갈등이 한층 커질 가능성이 있다.
18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는 중국 정부가 중국산 하이브리드차의 유럽 판매를 제한하는 방안을 받아들이도록 압박하고 있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 3명은 중국산 저가 차량이 유럽 시장에 대거 유입되는 가운데 유럽 자동차업체들이 대규모 감원에 나서자 브뤼셀이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 EU 관계자는 “중국이 우리 시장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제한할 것”이라며 “산업 공동화를 막기 위한 것이며 관리무역의 문제”라고 말했다.
EU가 원하는 것은 중국산 하이브리드차의 시장 점유율을 현재 3분의 1 이상에서 약 15%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EU는 자동차뿐 아니라 화학제품을 비롯한 다른 품목에서도 중국이 수출을 자제하기를 바라고 있다. 동시에 중국이 유럽산 제품 수입을 늘려 양측 무역 불균형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EU는 지난 6월 급증하는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결과’를 10월까지 내놓으라고 중국에 요구했다. 양측은 시장 접근 문제를 다루기 위해 ‘EU·중국 무역·투자 협의 포럼’도 설치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6일 연례 국정연설에서 EU의 대중 무역적자가 하루 10억유로에 달한다며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두 번째 중국 충격은 이미 와 있다”며 EU가 양측 관계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중국 방문을 앞두고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통화할 예정이라고 EU 대변인이 확인했다. EU 내부에서는 중국이 스스로 수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끌어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EU 측 입장을 아는 한 관계자는 1986년 일본과 체결했던 자동차 수출 자율규제와 비슷한 형태의 합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일본은 유럽에 대한 자동차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고 이 조치는 1999년까지 이어졌다.
EU가 중국산 하이브리드차를 겨냥하는 것은 기존 전기차 관세 이후 수입 흐름이 하이브리드로 빠르게 이동했기 때문이다. EU는 2024년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의 반보조금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중국산 배터리 전기차 수입은 완만하게 늘어났지만 일률적으로 10%의 관세만 적용받는 중국산 하이브리드차 수입은 급증했다.
중국산 하이브리드차 수입은 2024년 10월 3800대에서 2026년 7월 5만대로 10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평균 판매가격도 하락했다.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하이브리드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EU의 기존 전기차 관세만으로는 중국산 자동차 유입을 억제하기 어렵다는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유럽 자동차업계에서도 대응 요구가 커지고 있다. 폭스바겐(VW)을 포함한 기업들은 수입 하이브리드차에도 전기차와 비슷한 수준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중국산 저가 모델의 유입과 유럽 업체들의 대규모 감원이 맞물리면서 자동차 문제가 EU의 산업 보호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라르스 클링바일 독일 부총리는 17일 VW 본사를 방문해 “불공정 무역 관행에 맞서야 한다”며 “우리 산업을 위협하는 국가들을 상대로 독일이 지금과는 다른 수준의 자신감과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문제는 EU가 요구하는 대중 무역관계 재조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EU는 중국산 하이브리드차 수출 제한과 함께 화학제품 등 다른 산업에서도 중국의 자제를 요구하고 있으며 중국의 유럽산 제품 구매 확대도 원하고 있다. 하루 10억유로 규모까지 불어난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개별 산업의 관세를 넘어 양국 간 교역 규모와 품목 구성을 조정하려는 것이다.
다만 중국이 EU가 요구하는 자율적 수출 제한을 받아들일지는 불확실하다. 중국 외교부는 FT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고 EU 집행위원회도 관련 사안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중국이 수출 제한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EU가 실제로 중국산 하이브리드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지가 향후 양측 무역 관계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