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美 SEC, ‘토큰 주식’에 문 열었다…70조달러 증시에 블록체인 거래 도입

3줄 요약

  • SEC 조건부 규제 면제 유효기간 5년
  • 배당·의결권 동일 보장 및 기업 거부권
  • 24시간 거래 가능 및 결제시간 단축

  •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증권거래위원회(SEC) 본부 건물.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증권거래위원회(SEC) 본부 건물.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장 주식을 블록체인상의 디지털 토큰으로 바꿔 거래하는 ‘토큰 주식’ 시장에 문을 열었다. 약 70조달러 규모인 미국 주식시장에 가상 화폐식 거래 방식을 도입하는 조치다.

    SEC는 17일(현지 시각) “토큰화된 미국 상장 주식의 거래를 촉진하기 위해 거래 플랫폼에 한시적·조건부 규제 면제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일정 요건을 갖춘 플랫폼을 증권거래법상 ‘거래소’로 간주하지 않아 등록 의무를 면제하는 이른바 ‘혁신 면제’ 조치다. 토큰 주식의 유동성 공급자에게도 증권 딜러 등록 의무를 일부 면제한다. 조치는 즉시 발효되며 유효 기간은 5년이다.

    토큰 주식은 뉴욕증권거래소(NYSE)나 나스닥 등에 상장된 주식을 블록체인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토큰 형태로 만든 것이다. 다만 주가만 따라 움직이는 ‘합성 토큰’은 허용하지 않는다. 배당과 의결권 등 기존 주식과 동일한 권리를 보장해야 규제 면제를 받을 수 있다.

    기업에는 거부권도 준다. 기업과 관계없는 제3자가 특정 회사의 주식을 토큰화하려면 해당 기업에 서면으로 알린 뒤 30일을 기다려야 한다. 이 기간 기업이 반대하면 해당 토큰은 거래할 수 없다.

    주식도 24시간 거래…결제 시간 단축
    이번 조치가 주목받는 것은 가상 화폐 시장에서 발전한 블록체인 거래 방식이 세계 최대 주식시장 안으로 들어오게 됐기 때문이다. 인터넷 증권사가 주식 매매 수수료를 없앤 데 이어 블록체인이 거래 시간과 결제 방식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미국 주식은 거래 체결 다음 영업일에 결제가 이뤄지는 ‘T+1’ 방식이 적용된다. 토큰 주식은 블록체인에서 거래와 소유권 이전이 함께 기록돼 결제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증시 개장 시간과 관계없는 24시간 거래와 소수점 단위 투자, 투자자의 직접 보관도 쉬워질 수 있다.

    플랫폼이 취급할 수 있는 종목 수와 거래량에는 상한을 둔다. 거래에 사용되는 스마트 계약은 외부 감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공개형 블록체인에 올려야 한다. 기존 거래소에서 원주 거래가 중단되면 토큰 주식 거래도 동시에 멈춰야 한다. 플랫폼은 거래 내역과 계열사의 거래 현황도 공개해야 한다.

    가상 화폐 업체와 기존 증권사 ‘정면승부’
    코인베이스와 로빈후드 등은 규제가 정비되면 미국에서 토큰 주식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밝혀왔다. 로빈후드와 크라켄은 이미 미국 밖에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내 시장이 열리면 이들이 찰스슈와브와 이트레이드 등 기존 증권사와 직접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증권 토큰화 기술을 제공하는 시큐리타이즈 주가는 이날 15% 올랐다. 코인베이스와 로빈후드도 각각 5% 넘게 상승했다. 토큰 주식 시장이 확대되면 관련 거래와 결제·보관 시스템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

    반면 주식 거래가 기존 거래소와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나뉘면서 유동성이 분산되고 투자자 보호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존 거래소들은 가상 화폐 업체에 규제 예외를 허용하면 동일한 주식을 놓고 서로 다른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고 반발해왔다.

    5년간 시험 운영…최종 규정은 그다음
    이번 조치는 토큰 주식 거래를 전면 허용하는 최종 규정이 아니라 5년간 운영하는 일종의 시험 제도다. SEC는 시장 참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실제 거래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효과를 토대로 면제 조건을 수정하거나 정식 규정을 만들 계획이다.

    이번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원해온 가상 화폐 시장 규제 법안인 ‘클래리티 법안’이 상원 절차 표결을 통과하지 못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의회의 포괄적인 입법이 지연되자 SEC가 현행법상 권한을 활용해 규제 실험에 먼저 나선 것이다.

    향후 관건은 애플과 엔비디아 등 주요 상장사가 자사 주식의 토큰화를 얼마나 허용하느냐다. 기업들이 잇따라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거래량이 충분히 늘지 않으면 시장 확대가 제한될 수 있다. 반대로 주요 기업의 참여가 이어지면 24시간 주식 거래와 실시간에 가까운 결제가 빠르게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폴 앳킨스 SEC 위원장은 “이번 조치는 미국 자본시장을 디지털 시대로 이끄는 중요한 진전”이라며 “온체인 시장이 자본시장의 지속 가능한 통로가 될 수 있도록 항구적인 규정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