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비·병원비 부담, 유족 발 동동
"간이 인출 등 사각지대 보완 필요"
지난 11일부터 사망자 명의 금융거래 신속 차단 제도가 정식 가동됐다. ⓒ클립아트코리아[데일리안 = 정지수 기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장례비랑 병원비를 결제하려는데 카드가 정지되고 출금도 막혔습니다. 가족 돈인데 나라가 마음대로 틀어막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순식간에 범죄자 취급을 받는 기분입니다." (50대 김 씨)최근 금융권에 '사망자 명의 금융거래 신속 차단 제도'가 전면 도입된 이후 시중은행 창구마다 김 씨처럼 당혹감을 토로하는 유족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1일부터 사망자 명의 금융거래 신속 차단 제도가 정식 가동됐다.
제도는 사망신고 접수 다음 날부터 고인 명의의 전 금융권 계좌 거래와 대출 등을 즉시 정지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에는 사망신고 내용이 금융회사로 통보되기까지 최대 2개월가량 소요됐다.
이 틈을 타 사망자 명의를 도용한 신종 비대면 대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상속인 일부가 예금을 무단 인출해 가족 간 횡령 분쟁이 빈번해지자 당국이 칼을 빼든 것이다.
현장에서는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부작용과 사각지대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유족 보호 장치가 부실한 상태에서 제도가 급박하게 도입됐다는 지적이다.
고인 계좌가 급작스럽게 동결되면서 장례비나 밀린 병원비 등 당장 치러야 할 필수 자금의 유동성에 경색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법률상 고인의 사망 시점 이후 이뤄지는 금융거래는 이유를 불문하고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불법이다.
문제는 생전에 치매나 뇌졸중 등으로 의사결정이 불가능했던 고인의 병원비와 간병비를 정산해야 하는 유족들이다.
행정 통보가 이뤄지기까지 남은 기간 계좌에서 치료비를 사후 결제해오던 현실적 통로마저 완전히 차단되면서 유족들의 혼란이 커지는 모습이다.
김 씨는 "의식이 없는 부모님 치료비를 위해 통장을 관리했던 것뿐인데, 사망 직후 동결되니 치료비 정산도 막혔다"고 토로했다.
고인 명의 계좌에서 자동이체되던 아파트 관리비나 공과금 등이 연체되는 2차 피해도 현실화하고 있다.
현행 법률상 계좌 동결 시 자동이체 역시 정지된다.
한 법률 전문가는 "부동산 근저당 대출의 경우 사망으로 이체가 끊겨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은행권 자체적으로 약 1개월의 유예기간을 두는 등 예외가 있다"면서도 "일상 공과금이나 관리비 연체까지 모두 흡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사기 차단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는 있지만, 제도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만큼 금융당국뿐만 아니라 민간 금융기관 차원에서도 자체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례로 치료비·장례비 등 긴급 목적에 한해 상속인 대표가 증빙서류를 갖출 경우 신속하게 분할 출금할 수 있는 간이 인출 제도 등을 적극 안내·확대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개인 차원에서도 부모의 인지능력 상실에 대비해 '성년후견제도'나 생전 자산 관리를 위탁하는 '유언대용신탁' 등 안전한 금융 장치를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다.
또 다른 상속 전문가는 "기존에도 사망 후 금융거래가 막혔는데, 이번 제도는 막히는 시점이 사망신고 다음 날로 대폭 앞당겨진 것"이라며 "사망신고 법정 기한이 사망 후 30일 이내인 만큼, 유족이 사망신고를 미루고 그 사이에 돈을 인출하는 행위 자체는 원천 차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발급하는 사망진단서에 사망 시각이 분 단위까지 명시돼 있어 신고 기한인 30일 내 인출하더라도 사후 분쟁 시 횡령이나 사기로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며 "가족 간 분쟁을 피하려면 신고 지연을 통한 임의 인출은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