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대출 숨통 텄지만 ‘오픈런’ 여전
신축만 혜택, 구축·전세는 ‘대출 절벽’
같은 실수요자인데 양극화·역차별 논란
금융당국이 집단대출과 청년 및 실수요자에 대한 대출은 완화한 반면, 일반 가계대출 문턱은 낮추지 않으면서 차주별 혼란도 커지고 있다.ⓒ연합뉴스[데일리안 = 배수람 기자]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한 대출 규제가 '누더기'가 됐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6·27대책, 10·15대책에 이어 올해 4·1대책까지 지속적으로 대출 문턱을 높여왔다. 하지만 일률적인 규제로 실수요자의 주거 불안과 고금리에 따른 차주들의 자금난이 심화하자 뒤늦은 보완책으로 8·13대책을 내놨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금융 정책에 예외를 덧붙인 탓에 시장 혼란은 가중되는 모양새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다소 완화되면서 집단대출은 숨통을 텄지만, 일반 주택담보대출 문턱은 여전히 높다. 엇갈린 규제로 차주별 대출 여건은 달라지고 규제가 덜한 곳으로의 풍선효과도 심화하고 있다. 반복되는 땜질식 규제가 낳은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주]금융당국의 일관성 없는 대출 규제로 금융소비자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가계부채 관리를 명목으로 대출 문턱을 대폭 높였던 당국은 시장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집단대출 규제를 풀고 총량을 완화하는 등 슬그머니 빗장을 열었다.
정책 설계에 앞서 부작용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탓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땜질식 처방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정작 자금이 절실한 차주들의 불안감과 시장 역차별 논란만 키운단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달 8·13대책을 통해 가계부채 증가율 관리 목표를 기존 1.5%에서 3.0%로 상향 조정했으나, 금융 현장에서의 혼선은 여전하다.
총량 완화에 따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는 약 4조3400억원에서 7조1100억원으로 확대됐다.
표면적으로는 약 2조7800억원의 추가 공급 여력이 생겼지만, 실수요자의 체감도는 낮다.
지난 3일 기준 정책성 대출을 제외한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51조8796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6조9096억원 증가했다.
상반기에 대출을 크게 늘린 은행의 경우 실제 활용 가능한 잔여 여력이 200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당장 입주를 앞둔 신축 아파트 집단대출, 청년·실수요자에 집중되면서 ‘대출 양극화’도 심화하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은 실수요자의 주거 불안을 우려해 이주비·중도금·잔금 등 집단대출을 원활히 공급하고 총량 관리에서도 예외를 두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은 149조2970억원으로 한 달 새 1조545억원 급증했다.
반면 실거주 목적으로 구축 아파트나 빌라를 매매하거나 전세 보증금이 필요한 차주들의 대출 문턱은 높고 견고하다.
총량은 늘었지만, 은행들이 일반 가계대출에 대해선 빗장을 풀지 않고 있어서다.
KB국민은행은 주택구입자금 대출 한도를 종전 최대 6억원에서 3억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영업점별 주택관련대출 월간 취급 한도를 30억원에서 10억원으로 축소한 뒤 이를 유지 중이다.
일부 은행이 제한 조치를 완화하자 수요가 한꺼번에 몰린 사례도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1일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접수를 재개했지만, 물량이 빠르게 소진되면서 불과 이틀 만에 접수를 다시 중단했다.
금리 부담도 높은 수준이다. 지난 16일 기준 5대 은행의 5년 고정형 주담대 금리 상단은 연 6.91%로 7%를 목전에 두고 있다.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정부 정책의 수혜를 입어 무리 없이 자금 조달에 나설 수 있게 됐지만, 일반 차주들은 고금리와 대출 한도 소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셈이다.
주요 은행들이 이달 들어 일제히 예금금리를 올린 데다 시장금리 역시 높은 상태여서 대출 금리가 단기간 낮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은행들도 대출 여력은 확대됐지만, 연간 총량 목표를 맞춰야 하는 데다 건전성 관리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
특히 가을 이사철과 맞물려 주택수요가 다시 확대되면 은행들은 대출 한도를 다시 축소할 가능성도 남았다.
금융당국의 일률적인 총량 규제와 거듭된 땜질식 보완이 차주별 자금 조달 여력에 차이를 만들었고, 장기적으로는 자산 격차를 점점 더 벌어지게 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총량 규제가 강하게 시행되다가 시장 반발에 일부 완화하는 방식이 반복되다 보니 정책 일관성, 예측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특히 일반 가계대출 차주들은 규제 완화를 체감하기 어려운 반면, 금융사들은 규제 변화에 따라 대출 공급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대출이 필요한 실수요자와 저신용자에게 금융 접근성이 낮아지는, 대출 양극화와 역차별 논란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정책을 설계할 때는 시행 이후 나타날 시장 반응, 부작용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시장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일관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금융 관계자는 “정부가 강조한 대로 투기수요는 차단하되 실수요자는 신축, 구축 구분 없이 자금 조달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차주들이 얼마나 무리하게 빚을 냈는지,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떠안고 있는지를 살펴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