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속도 조절론’으로 AI 개발이 일시적으로 둔화될 수 있다. 다만 AI의 안전성이 강조됨에 따라 기업들은 얼라인먼트(alignment : AI를 사용자 의도에 맞게 정렬하는 것)와 관련된 기술 투자를 더 늘릴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속도 조절론은 장기적으로 AI 생태계와 한국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분기점 맞은 AI 산업”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지호영 기자 |
국내 투자자들은 빅테크의 대규모 투자가 주춤할 경우 데이터센터부터 메모리 반도체에 이르는 AI 랠리도 힘을 잃는 것 아닌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9월 14일 이 센터장을 만나 아스트라, 속도 조절론 등 AI 업계를 잇달아 강타한 대형 이슈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증시에 끼칠 영향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최근 오픈AI가 선보인 아스트라를 평가하자면.
“범용인공지능(AGI)에 근접한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심지어 국내외 언론에서 주목한 ‘수학 난제 해결’은 아스트라보다 성능이 뛰어난 미공개 모델이 한 일이라고 한다. 아스트라는 해당 모델이 옳은 해(解)를 구했는지 검증하는 데 쓰였다. 아스트라에 이어 미공개 AI 모델까지 출시되면 고난도 업무 처리가 더 쉬워질 것이다. 현재 AI 산업은 하나의 문턱을 넘어서는 분기점에 서 있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AI 속도 조절론이 제기됐다.
“이미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AI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명예교수나 튜링상을 받은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이 AI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게다가 빅테크 수장들까지 속도 조절을 거론하자 AI 산업의 성장이 둔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AI 투자가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향후 AI 개발에서 얼라인먼트의 중요성이 더 커지며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픈AI는 8월 18일 ‘사이버 핵심 역량 시대의 모델 개발 속도 조절’ 제하 보도자료에서 AI 모델 개발 및 훈련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과 얼라인먼트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히며, ‘이런 조치에는 현재 추산으로 약 20%의 컴퓨팅 용량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속도 조절론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AI 개발이 둔화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오픈AI 등 기업의 얼라인먼트 강화 조치로 오히려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게다가 AI 모델의 안전성이 높아지면 의료, 생명과학, 국방 등 응용 분야가 더 넓어질 여지도 있다.”
아스트라 공개를 계기로 저비용 오픈웨이트 AI 모델의 입지가 좁아질까.
“오픈웨이트 AI의 존재감은 더 커질 것이다. 아스트라 공개 전 AI 산업에 중요한 사건이 또 있었다. 엔비디아가 9월 3일 ‘허깅페이스’ 인수를 공식 발표한 것이다. 허깅페이스는 오픈웨이트 AI 모델을 공유하는 일종의 플랫폼 업체다. 지금까지 엔비디아는 오픈AI, 앤트로픽 등 프런티어 AI 모델 업체들과 협업해왔다. 그런데 요즘 AI 모델 가격이 너무 비싸지는 데다 중국의 딥시크, 키미 등 오픈웨이트 모델이 급부상하고 있다.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엔비디아 입장에선 저렴한 AI 모델이 각광받으며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제번스의 역설’(기술 발전으로 자원 사용 효율성이 높아지면 자원의 총 사용량도 높아진다는 경제학 개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AI 모델에 들어가는 비용이 낮아지면 오히려 AI와 컴퓨팅 인프라가 더 많이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 경우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함께 늘어날 것이다.”
“가성비 AI 급부상에 ‘제번스의 역설’ 기대감”국내 증시가 등락을 반복하는 주된 원인은 역시 금리인가.
“그렇다고 본다. 최근 금리가 계속 높아지고 유가도 오름세다. 당장 돈을 빌려 투자해야 하는 데이터센터 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 당초 시장에선 미국 중간선거 전에 미국-이란 전쟁이 마무리되면 금리가 다소 내려가며 주가 랠리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최근 상황을 보면 이런 일이 펼쳐지긴 쉽지 않을 듯하다.”
고금리 뉴노멀 시대에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공감한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AI가 토지·자본·노동에 이은 새로운 생산 요소로 등장했다’고 언급했다. 2000년대 이후 세계경제 호황을 이끌던 저금리 체계가 끝나고, AI로 대표되는 새로운 생산 요소가 대규모 투자를 유발하는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이 꺾이지 않을 수 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5%를 넘어서면 이것이 주가 밸류에이션에 캡(cap)이 될 여지가 있다. 향후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은 종목이나 잉여현금흐름(FCF)이 원활하지 않은 기업에 대한 투자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연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전 고점을 회복할 가능성은.
“두 기업의 수익 창출력이나 밸류에이션만 보면 언제든 가능하다. 요즘 메모리 반도체만큼 현금흐름이 좋은 섹터도 없지 않나. 하지만 국제 정세나 금리 같은 증시 외적인 변동성이 굉장히 큰 상황이라 주가 예측이 매우 어렵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안정적인 사업 모델을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내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다만 시장에선 두 기업에 엔비디아처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새로운 사업 ‘큰 그림’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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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지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