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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이란 막아달라” 베이징에 긴급 타전… 中, 중동 분쟁 ‘신흥 중재자’ 부상

사우디, 美 군사지원 거절에 中 호출
中 홍콩에 국제중재기구까지 설립
중동 외교 연락망 다변화

중국이 이란 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위기에서 미국을 대신할 새로운 중재자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안보 제공자지만, 이란이나 후티 반군 세력처럼 외교적으로 대화하지 못하는 상대가 존재한다. 반면 중국은 미국만큼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경제적 관계를 지렛대 삼아 미국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국제 사회 영향력을 파고 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2년 12월 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2월 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현지시각) 로이터 등 주요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이달 10일 무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후티 직접 타격을 두 차례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중국에 이란을 설득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후티가 최근 군사 공세를 몰아쳐 홍해 연안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주변까지 세력을 넓히자 빈 살만 왕세자가 트럼프 대통령과 최소 두 차례 통화했다고 전했다. 후티는 1990년대 예멘에서 사우디의 수니파 영향력에 맞서며 등장한 무장 단체로 이란이 무기와 훈련, 자금을 대 온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 구성원이다. 후티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막으면 사우디가 홍해 쪽 항구로 내보내는 원유와 화물이 나갈 길을 잃는다.

그러나 미국은 사우디의 후티 직접 타격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미국은 사우디가 자국 방어에 쓸 정보를 공유하고, 어디가 표적인지 알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미국이 후티 타격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후티 세력을 지원하는 이란을 설득하는 일을 중국에 맡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맹국인 미국에는 군사 정보를 요구하고, 중국에는 적국 압박을 맡기는 외교 분업 형태다. 로이터는 이란 소식통 3명을 인용해 사우디로부터 긴급 요청을 받은 중국이 즉각 이란에 후티 반군을 자제시키라는 비공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지역 긴장이 예멘과 홍해로 더 번지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며 “지역 불안정이 커지면 어느 쪽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동시에 중국 입장에서도 물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해상 교통로 안전 확보는 자국 경제 명운과 직결되는 필수 사안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 집계에 따르면 중국이 수입하는 해외 원유 가운데 44%가 중동산이다. 중국이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과 한 해 주고받는 교역액은 3000억달러(약 415조9000억원)에 달한다. 한국이 2025년 원유를 사들이는 데 쓴 753억달러 대비 네 배 더 많은 수치다.

로이터는 중동 주재 서방 고위 외교관을 인용해 “중국은 후티를 통제하도록 이란을 압박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이란과 중국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며 “중국 역시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홍해 해운이 안전해지기를 원한다”고 했다.


중국이 외교 틈새를 파고든 사례는 사우디뿐만이 아니다. 올해 2월 이란전 발발 이후 미국은 직접적인 전쟁 당사자가 되면서 중동에 객관적인 중재자로 나서기 어려워졌다. 반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월 말 전쟁이 시작된 뒤 이란·이스라엘·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러시아·프랑스·오만 등과 4월 초까지 26차례 통화하며 중재안을 조율했다. 중국 정부는 같은 기간 자이쥔 중동문제 특사를 현지로 보내 당사국을 돌게 했다.

이어 3월 말에는 중견국 파키스탄과 연계해 공동 평화안까지 발표하며 미국의 빈자리를 선점했다. 당시 중국은 파키스탄과 ‘걸프와 중동의 평화·안정 회복을 위한 5개항 구상’을 내놓고,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단과 평화협상 개시, 주권 존중을 요구했다. 파키스탄은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슬람 국가인 동시에,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으로 중국 자본에 강하게 묶여 있다. 7월에는 파키스탄이 미국과 이란 사이 협상을 되살리려 이란과 접촉했는데, 로이터는 이 접촉을 두고 ‘중국이 먼저 밀어붙인 구상’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중국이 파키스탄을 앞세워 이란전 장기화를 막으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내세우는 중재가 무역과 투자 같은 경제적 설득에 바탕을 두고 있어 한계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무기 지원과 체제 보장, 군사력이라는 강력한 억제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중국이 지금까지 쓴 수단은 무역과 투자, 당사자 체면을 세워 주는 회담장 제공에 머물렀다. 로이터는 이란처럼 교전 당사자가 전쟁을 이어갈 의지가 확고하거나, 무력을 동반한 안보 보증이 필요한 사안에서 중국식 통제력이 명확한 한계를 드러낸다고 했다.

실제 2024년 1월 중국이 중재한 미얀마 군정과 소수 민족 무장 단체 간 휴전 협정은 체결 직후 깨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중국발 중재를 공식적으로 거부한 사례 역시 이러한 중국식 외교 맹점을 보여준다. 무기와 군사 보호막이 필요할 때는 미국을 찾고, 미국과 거리가 먼 적대국을 움직이거나 설득할 때는 중국이 지닌 경제 영향력을 빌리는 다중 중재 구조가 정착 중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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