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반도체 왕국’ 부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일본이 이번에는 미국에 최대 3조엔(약 27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사업에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과 미국 정부는 일본이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약속한 5500억 달러(약 762조원) 규모 대미 투자금의 일부를 활용해 미국에 대형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공장 건설을 먼저 제안한 것은 미국 측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양국 정부 실무진은 지난 14~15일 투자금 회수 가능성 등을 논의했으며, 사업 규모는 2조~3조 엔에 이를 전망이다.
공장 운영은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글로벌파운드리스가 맡는 방안이 유력하다. 공장에서는 연산 처리 등에 사용되는 로직 반도체를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투자금만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 공장에 필요한 반도체 제조장비를 자국 기업이 공급할 수 있도록 미국 측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업체가 미국 현지 생산에 필요한 반도체를 이 공장에서 조달하면 공급망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026년 8월 27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샌디스크의 데이비드 괴켈러 최고경영자(CEO), 키옥시아의 오타 히로오 CEO와 면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키옥시아홀딩스는 이와테현 기타카미시에 있는 기타카미 공장에 새로운 메모리 생산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제조 파트너인 샌디스크와 함께 진행하는 투자 규모는 1조엔을 넘을 전망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사업은 일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부활 전략’이 해외로 확장되는 흐름으로도 해석된다. 일본은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지만 한국과 대만 등에 주도권을 내준 뒤 최근 들어 생산 기반 복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분야에 10조 엔 이상을 공적으로 지원해 향후 10년 동안 50조 엔 이상의 민관 투자를 끌어낸다는 계획이다.
핵심 축은 홋카이도·구마모토·히로시마다. 홋카이도에는 일본 정부의 집중 지원을 받는 라피더스가 2027년 2나노 첨단 로직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공장을 짓고 있다.
또 구마모토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의 생산 거점을 유치했고, 히로시마에서는 미국 마이크론의 AI용 메모리 생산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의 전략이 자국 반도체 기업을 육성하고 해외 첨단기업을 일본으로 불러들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막대한 대미 투자금을 지렛대로 일본 기업의 공급망을 미국 현지까지 넓히는 셈이다.
키옥시아. AFP=연합뉴스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진다. 미국은 일본 자금을 활용해 미·중 갈등 속에서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반도체의 자국 생산 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일본은 대미 투자 약속을 이행하면서 자국 반도체 장비 업체에 새 시장을 열고 미국 현지에 진출한 자동차 업체의 반도체 공급망도 강화할 수 있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한 반면 경기와 수요 변화에 따라 가동률과 수익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닛케이는 향후 생산을 예측하기 어렵고 투자금 회수 가능성도 불투명해질 수 있다며, 민간 기업이 참여하기 쉬운 사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