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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엔 없던 '학벌 컷'…한화 채용이 드러낸 '깜깜이 전형'의 민낯 [권상집의 논전(論戰)]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출신 대학·나이로 미리 걸렀다…지원자 기만한 '숨은 합격 기준'
스펙이 성과 담보 못 하는 AI 시대…'간판' 아닌 역량으로 뽑아야


8월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작성한 경력직 채용 내부 지침에서 인력 구조의 고령화와 적체를 막기 위해 '1980년생 이하 선발' '서울 및 판교 근무자와 지역 근무자에게 요구하는 대학 졸업장 기준 차등 적용' 등을 명시한 사실이 한 방송사를 통해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의 서울·판교 근무자는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연세대, 고려대 등 11개 대학 출신이어야 지원할 수 있었다. 해외 대학이라면 세계 대학 순위 100위 안에 들어야 한다.

보도 이후 교육시민단체의 비판이 이어지자 이부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는 내부 메일을 통해 "개인의 기회를 제한하는 채용 방침은 회사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HR실에 엄중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국내 기업은 그동안 신입 및 경력 채용에서 특정 대학 졸업자들에게 가산점 또는 차등화된 우선순위를 부여해온 것이 사실이다. 일부 대기업 인사팀에선 한화가 운 나쁘게 걸렸을 뿐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이번 이슈를 두고 다른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기업이 원하는 사람을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주장부터, 그동안 갈고닦은 지원자의 역량 중 하나인 학력이란 지표를 조금 더 중시해 살펴보는 건 당연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언뜻 타당한 반론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기업 고유의 인재 선발 기준에 제3자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

9월1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하반기 채용박람회에서 학생들이 기업체 담당자들과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9월1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하반기 채용박람회에서 학생들이 기업체 담당자들과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취준생 울린 채용 공고의 이면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대외적으로 내건 채용 공고문과 내부 기준의 불일치에 있다. 고용 과정에서 나이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는 '연령차별금지법' 위반 여부 등 법적 쟁점은 차치하더라도, 일부 지원자는 애초에 통과 불가능한 서류 전형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 셈이 됐다. 기업이 강조하는 채용 선발의 자율성은 절차적 투명성 안에서 펼쳐져야 한다.

과거 사례도 무수하다. 2011년 한 홈쇼핑 회사는 출신 학교에 따라 등급을 매겨 점수를 다르게 부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고, 같은 해 모 공공기관은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특정 언론사의 대학 평가 순위를 적용해 국내 대학을 3개 등급으로 분류했다가 감사원 감사에서 위법으로 적발됐다. 2018년 한 시중은행은 합격권인 기타 대학 출신 지원자들의 점수를 깎고 탈락 위기에 처한 명문대 지원자의 면접 점수를 대거 올려 합격시키기도 했다.

국내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그리고 선호하는 학력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기업이 선발하고 싶은 인재에 관해 외부에서 타당한 기준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것도 적절하지 못하다. 다만, 자신들이 외부에 공개한 심사 기준이 실제 합격 기준과 다르다면 이는 수많은 지원자를 들러리로 세운 깜깜이 전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채용 과정의 절차적 불공정이 지원자들의 정보 접근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은 것이다.

기업이 학력을 중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원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활동하고 성과를 창출하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기업은 리스크를 낮추고 지원자의 역량을 예측할 수 있는 몇 가지 지표에 의존하게 된다. 명문대 졸업 또는 스펙이 좋은 지원자라면 어느 정도 성실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검증된 우수 인재로 가정할 수 있다. 기업들이 필터링 도구로 학력, 학점, 스펙 등에 집중했던 이유다.

그렇다면 정말 학력이나 스펙이 기업의 성과를 좌우할까. 구글은 수년간 지원자의 출신 대학, 학점과 입사 후 성과 간 상관관계를 면밀하게 추적 조사한 후 '학점과 출신 대학이 입사 후 성과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때 실리콘밸리에서 학력을 가장 많이 따지기로 유명했던 구글조차 이후 지원자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구조화된 면접, AI 활용 등 역량 기반 검증 테스트를 강화했다.

초일류 기업, 초일류 인재 선발 방식에서 출발

국내에서도 지난 20년간 한국개발연구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외 다수의 경영학·교육학 연구자들이 지원자의 스펙(출신 학교, 어학 성적, 학점, 자격증)과 실제 업무 성과의 관계를 분석했지만, 생산성 및 직무수행 부분에서 인과관계 또는 상관관계가 명확히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간판(학력)으로 지원자의 실력(역량)까지 손쉽게 추론할 수 있다고 안일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MZ세대로 대표되는 2030 세대는 능력주의(Meritocracy)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신분, 배경, 학력에 상관없이 오직 개인이 가진 실제 역량, 노력, 성과에 따라 인정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학력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학력이어도 땀 흘린 노력을 통해 대기만성형 인재로 거듭난 이들 역시 발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단순히 졸업한 학교 등 스펙 위주로 평가하는 학벌주의(Credentialism)와는 결이 다르다.

현실에서는 많은 이가 '명문대에 진학한 것=공부(노력)를 많이 한 것'으로 쉽게 치환한다. 분명 명문대에 진학한 이들의 땀과 노력은 소중히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업에서는 개인의 공부 머리 외에도 소통, 창의성, 협업 마인드, AI 활용 능력도 중요한 평가 요소로 삼는다. 이 부분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심층 면접, 실무 테스트 방식을 다양하게 도입해 지원자의 진짜 역량과 노력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과 해외 연구자들은 지금도 지원자의 진짜 역량과 숨겨진 잠재력을 검증하기 위해 구조화된 면접, 과업 중심의 실무 면접, AI 역량 검사, 시뮬레이션 의사결정 평가 등을 동원해 인재의 역량과 품성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지원자의 실력과 능력 대신 간판에 매달리는 방식은 AI가 인간을 앞서가고 있는 미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적 산물일 뿐이다. 능력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필요는 없다. 초일류 기업의 탄생은 초일류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에서 출발한다. 투명성과 능력을 강조하면서 '교문'으로 사람을 미리 거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권상집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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