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수익 전제 장기 전력구매자 미정
AI 데이터센터 전력 중복·과다 ‘유령 수요’
현지 주민 반발·규제 강화 가능성도 변수
대미투자 1호 사업으로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가 확정된 가운데 20년간 60조원을 벌 수 있다는 추산이 현실화하려면 이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구매할 빅테크, 데이터센터와 장기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미국 민간 전력회사 다이아몬드 제너레이팅이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모어랜드에서 운영하고 있는 940메가와트(MW) 규모의 천연가스 복합화력발전소의 모습. [다이아몬드 제너레이팅 제공]
정부가 대미 투자 1호 사업인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에 223억달러(약 30조8000억원)를 투입해 20년간 최대 454억3000만달러(약 62조7000억원)를 벌어들일 수 있다고 추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익성 계산을 현실화할 핵심 전제인 장기 전력 판매처를 미국 측으로부터 보장받지 못했다. 수익 배분 조건이 투자금 회수로 이어지려면 전력 판매를 통해 예상한 만큼의 수익이 발생해야 한다. 또한 대미 투자의 국내 산업적 실익을 확보하기 위해 엔시날 발전소에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기업의 가스터빈을 공급할 수 있는 지도 협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에너지 업계에서 나온다.
23일 정치권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부와 재정경제부는 전날 국회에 대미 투자 프로젝트 협상 결과와 추진 경과를 비공개 보고했다.
대미 프로젝트 1호인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는 6.4GW(기가와트) 규모로 우선 1.4GW 규모의 가스터빈 발전소를 짓고 실제 수요와 경제성을 확인하며 나머지 설비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쟁점이 됐던 한국 기업의 참여와 관련해선 한국에 추천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엔시날 발전소 사업에 대해 총사업비 223억달러를 들여 20년간 432억9000만~454억3000만달러의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투자 원리금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는 사업성 검토 결과를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60조원 수익’의 전제가 되는 수요처 확보와 우리 기업의 참여다. 현재 생산한 전력을 장기간 구매하겠다는 수요처나 전력구매계약(PPA)이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에너지업계에서는 텍사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전력 수요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구글·메타·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투자가 이어지는 만큼 전력 수요도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텍사스 전력망 운영 기관 ERCOT는 지난 4월 관할 지역의 2032년 전력 수요가 약 367.8GW(기가와트)에 이를 수 있다는 잠정 전망을 내놨다. 2023년 기록한 최대 전력 수요 85.5GW의 4배가 넘는 규모다.
하지만 발전사업은 발전량뿐 아니라 전력을 얼마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판매하느냐가 수익을 좌우한다. ERCOT는 당시에도 이 전망이 실제 수요 증가를 웃돌 수 있으며, 신청된 사업이 모두 건설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전력 공급 신청이 실제 수요로 이어질지 불확실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PPA 없이 시장가격에 따라 전력을 판매할 경우 전력가격과 가동률 변화에 따라 실제 수익이 정부의 사업성 검토 결과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발전소는 최소 20년 이상 운영해야 하는데, AI 붐이 당분간 지속되더라도 업황 주기가 길어야 수년인 정보기술(IT) 업계 특성상 빅테크가 10년, 20년씩 장기 계약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현지에서는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여러 후보 지역에 중복으로 전력 공급을 신청하거나, 사업이 초기 구상 단계인데도 전력부터 확보하려는 사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는 한곳에 들어서거나 아예 건설되지 않을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중복·과다 집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유령 수요’다. 이런 허수를 걸러내지 않고 발전소와 송전망을 확충하면 과잉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세계 주요 발전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 한국 기업 진출이 보장됐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가스발전소 전체 건설 비용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가스터빈을 세계에서 5번째로 국산화한 한국은 국내 가스터빈 납품을 원하지만 미국은 자국 업체인 제너럴일렉트릭(GE) 제품 사용을 강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반발과 규제 강화도 변수다. 텍사스에서는 데이터센터의 전력·용수 사용과 소음, 전기료 상승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지난 21일(현지 시각)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등에 미칠 영향을 조사하는 동안 주 환경 당국의 데이터센터 신규 허가 발급을 중단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연되거나 일부 사업이 무산되면 예상했던 전력 수요도 줄어들 수 있다. 엔시날 발전소 역시 판매 물량이나 가격이 당초 전망에 못 미칠 경우 투자금 회수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수요처 확보가 중요한 이유다.
이에 대해 정부는 텍사스주의 전력 수요와 전기요금이 상승하고 있는 추세라며 전력구매계약을 늦추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이다. 또 전력구매계약 의사가 있는 기업을 찾아 2027년까지 계약을 체결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