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트마다 가상 PC…CPU가 실행·관리
“컴퓨팅 수요 GPU→CPU 쪽으로”
메모리·기판·후공정까지 수혜 확산미국 증권사에서 일하는 A씨는 내년 여름 휴가를 위한 항공권을 구하기 위해 메타의 인공지능(AI) 에이전트 ‘뮤즈(Muse)’에게 예산과 일정, 목적지 등을 알려주고 원하는 가격대의 항공권이 나오면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며칠 뒤 뮤즈는 딱 맞는 항공권을 찾았다며 알림을 보내왔고, A씨의 확인을 받아 예약과 결제까지 끝냈습니다. A씨는 "항공권을 직접 찾아봤을 때보다 2000달러(약 270만원) 이상을 아꼈다"며 "이 정도라면 이메일과 신용카드 정보를 연동해서 생길 수 있는 사생활 침해 우려쯤은 감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케이블TV와 통신사 고객센터를 상대로 뮤즈가 직접 협상을 벌여 돈을 아꼈다는 '감동 사례'도 많습니다. 뮤즈가 고객센터 챗봇과 한 시간 이상 대화를 주고받으며 할인 혜택을 받아낸 덕에 통신 요금, 뉴스 구독료 등 월 지출을 350달러(약 47만원)나 줄인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텍스트로 된 답만 내놓던 AI 챗봇이 사람 대신 진짜 '일'을 해내는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코딩 지식이나 자체 컴퓨팅 인프라가 없는 보통 사람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형태로 말입니다. 이 변화는 중앙처리장치(CPU)를 중심으로 AI 인프라 하드웨어 주가에 새로운 불씨가 됐습니다. CPU, 뮤즈 수혜의 중심에지난 21~22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은 이틀 연속 신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앞서 8일 출시된 뮤즈가 미국 앱스토어에서 챗GPT를 제치고 무료 앱 1위를 차지하면서 '에이전틱 AI 돌풍'을 일으킨 덕분입니다. 뮤즈 출시 이후 메타 주가는 20% 넘게 올랐습니다.
뮤즈의 흥행은 AI 인프라 투자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누그러뜨리며 반도체주 전반으로 매수세를 확산시켰습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지난 5거래일 간 11.8% 올랐고, 메모리 ETF DRAM도 9.7% 상승했습니다.
21일(현지시간) 기준 최근 한 달 엔비디아, DRAM ETF, AMD, 인텔, ARM홀딩스 주가 추이.특히 뮤즈발 훈풍을 가장 세게 탄 것은 AMD, 인텔, 암홀딩스 등 CPU 관련주입니다. 암홀딩스는 5거래일 만에 24%, AMD와 인텔도 각각 14%, 13% 뛰었습니다. SK하이닉스(+3%), 엔비디아(+4.5%) 등 메모리와 GPU 대장주들에 비해 상승폭이 훨씬 큽니다. 시장이 에이전트 AI의 수혜 구조를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기존 챗봇은 사용자가 질문하면 GPU가 모델을 추론해 텍스트로 답을 생성하는 구조가 중심입니다. 하지만 뮤즈 같은 에이전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지시를 하면 목표를 이해한 뒤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쪼개고, 브라우저를 열어 정보를 찾으며, 외부 프로그램에 접속해 실제 작업을 수행합니다. 추론과 판단이 필요한 일을 GPU에게 시키고, 그 결과를 받아 해석한 뒤 목표에 맞지 않으면 이 과정을 다시 반복합니다.
뮤즈 작동 화면. 자료=메타이 모든 일을 하는 '관제탑'이자 '현장 관리자'가 CPU입니다. 에이전트가 많아지고 작업 시간이 길어질수록 GPU 연산량뿐 아니라, CPU가 하는 일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동시에 CPU가 쓰는 작업대 격인 DDR5와 고성능 메모리 모듈(RDIMM) 등 범용 메모리는 물론, 개인화된 맥락을 더 많이 기억하기 위한 저장장치, 데이터를 끊김없이 주고받는 네트워크 트래픽도 함께 늘어납니다. '에이전트 대중화 = 더 많은 AI 인프라 수요'라는 등식이 다시 확인된 것입니다.
특히 메타는 뮤즈 에이전트 하나당 각각 보안 클라우드 가상머신을 제공합니다. 에이전트별로 자체 브라우저와 CPU, 작업공간, 메모리와 저장공간이 있는 가상의 '전용 PC'를 하나씩 배정해준다는 뜻입니다. 로그인 정보, 카드번호처럼 외부 서비스 접속에 필요한 정보는 별도로 암호화하고, 외부 클라우드에 올리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안심하고 에이전트에게 계정과 결제를 맡길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입니다.
뮤즈는 사용자별 보안 가상머신 안에서 에이전트를 실행한다. 자료=메타물론 에이전트 한 개가 물리적인 CPU 한 개를 독점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메타의 40억 명 사용자가 여러 에이전트를 장시간 실행하면 그에 비례해 필요한 가상 CPU 사용시간과 메모리, 저장장치 용량도 크게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JP모건은 에이전트가 늘어나면 컴퓨팅 수요가 늘어나지만, 그 증가분은 GPU보다 CPU 쪽으로 약간 기울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에이전트는 답을 빨리 내놓는 것보다 '일을 끝까지 완료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 되면 '최고급 GPU+최첨단 모델'보다 '대규모 CPU+컴퓨팅 자원'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진다는 논리입니다.
메타가 올 상반기 엔비디아 베라, ARM AGI, AMD 베니스, AWS 그래비톤 등 주요 서버 CPU 계약을 싹쓸이한 것도 이런 이유로 보입니다. 박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메타의 주요 CPU 라인업 전반에 걸친 공격적인 물량 확보는 AI 에이전트 시대 CPU의 전략적 중요성을 방증한다"며 "에이전트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할수록 워크로드 오케스트레이션을 담당하는 CPU의 수요는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이미 타이트한 CPU 공급 병목은 한층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메모리·기판도 함께 커진다CPU 수요가 늘어나면 주변 반도체도 사양과 수요가 함께 높아집니다. CPU가 쓰는 메모리, 범용 DRAM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했습니다. JP모건에 따르면 에이전틱 AI용 CPU의 메모리 탑재량은 일반 CPU보다 30~100% 많다고 합니다. JP모건은 메모리 수요의 중심이 학습용 HBM에서 추론용 CPU·DRAM·SSD를 포함한 시스템 전체로 넓어지고 있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8개월 목표주가를 각각 63만원, 304만원으로 제시했습니다.
CPU와 GPU가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기판도 함께 대형화·다층화됩니다. 고부가 기판을 만드는 삼성전기, LG이노텍, 심텍, 대덕전자, 이수페타시스 같은 한국 기판 밸류체인 기업들이 계속 주목받은 이유입니다. AI 칩에 전기가 안정적으로 흐를 수 있게 해주는 핵심 부품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고속 네트워크와 광통신 부품도 추가 수혜가 기대되는 분야입니다.
CPU를 직접 설계·제조하는 기업이 없는 국내에서는 CPU 검사 장비나 인텔의 밸류체인 기업들이 함께 수혜를 보고 있습니다. ISC, 리노공업, 원익QnC, 인텍플러스 같은 기업들이 최근 급등한 배경입니다.
22일 기준 최근 한 달 간 삼성전자, 하나아미크론, ISC, 삼화콘덴서, 심텍 주가 추이. AI의 '웹브라우저' 순간 브라우저를 사용하고 실제 작업을 해주는 에이전트는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올초 에이전트 AI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고 평가받은 앤스로픽 클로드 코드와 오픈클로(몰트봇)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실제 나의 '개인화된 AI 비서'처럼 이용하려면 자체 서버를 구축하고 프로그램마다 자율화 도구를 만드는 등 여러 기술적·물리적 장벽들이 있었습니다.메타 뮤즈, 그리고 이달 초 나온 오픈AI의 GPT-6 '아스트라'는 이 장벽을 사실상 없앴습니다. 코딩 지식이나 개인 서버가 없는 일반 소비자도 쉽게 에이전트를 쓸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골드만삭스는 "1990년대 초반 웹 브라우저가 나오면서 누구나 (명령어 입력 없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쉽게 쓸 수 있게 됐던 때가 떠오른다"고 말합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넷스케이프 같은 브라우저 덕분에 모두가 인터넷 세상으로 갈 수 있게 됐던 것처럼, 뮤즈 같은 소비자향 에이전트 서비스는 모두가 AI 에이전트 비서를 한두개씩 달고 일하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줄 수 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메타가 뮤즈를 무료로 풀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대규모 이용자 기반, 일반 소비자가 쉽게 쓸 수 있는 인터페이스와 실용성이 '에이전트 대중화의 변곡점'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여전히 높은 유가와 금리, 아직도 아리송한 이란 전쟁의 향방, 중간선거 불확실성까지 불안한 매크로 환경은 경계 요소입니다. '에이전트 수혜주'라는 이유로 급등한 기업들도 향후 이렇게 높아진 눈높이를 실적과 수주로 얼마나 충족시킬 것인지에 따라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습니다. 국내 증시에서는 펀더멘털 이상으로 외국인과 개인의 수급 요인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AI가 아스트라와 뮤즈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의 일상에 침투하고 시장을 넓힐 새로운 분기점에 선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AI에 대한 수요와 인프라 투자가 정말 지속 가능하느냐는 우려는 이번에도 기우로 끝나는 모양새입니다.
영상에서는 아스트라와 뮤즈가 기존 AI와 어떻게 다른지, 에이전트가 실제로 작동하는 경로에서 CPU와 메모리, 저장장치 등 AI 인프라 수요가 어떻게 늘어나는지 보다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CPU 수요가 DRAM과 (M)RDIMM, FC-BGA 기판, MLCC, 광통신, 반도체 후공정 등으로 확산하는 경로와 한국·미국의 대표 수혜 기업도 함께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