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전멸”은 안 되고 ‘7일 내 해로 개방’은 되는가 [트럼프 스톡커]

■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322>
트럼프, UN총회서 “전멸이든 합의든 택하라”
이란 대표단은 퇴장...이스라엘·北 언급 안 해
실무진은 3시간 협의...“선거 직후 종전 기대”
대화 열렸지만...軍 반대 속 정상회담 확률 ↓
네타냐후 ‘패싱’...유가는 2주 만에 90달러대
22일(현지 시간)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UN총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처음 만난 앤디 버넘 영국 총리. 지난 7월 20일 키어 스타머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취임했다. 버넘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22일(현지 시간)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UN총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처음 만난 앤디 버넘 영국 총리. 지난 7월 20일 키어 스타머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취임했다. 버넘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한 뒤 “우리는 중동에서 분쟁을 멈추고 해협을 개방하는 데 트럼프 대통령을 도와 우리의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AP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UN총회에서 이란을 향해 “미국과 합의하지 않으면 전멸(annihilate)시키겠다”고 윽박지른 가운데 양국 간 대화가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란에서 대화 개시 조건으로 7일 안에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걸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기대했던 UN총회 계기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을 분위기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일단 추가 군사 충돌보다 대화 재개 가능성에 대해 무게를 두면서도 양국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동 정세를 최대한 낙관하는 트럼프 대통령조차 “선거 이후 합의할 듯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분쟁 양상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이란 내에서도 협상파와 강경파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국제유가 불안은 상당 기간 지속될 공산이 커 보인다.

트럼프, UN총회서 “전멸당하든 합의하든 해야”...‘지옥’ 등 독설에 이란 대표단 퇴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간)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UN총회에서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간)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UN총회에서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 시간)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UN총회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에서 브라질에 이은 두 번째 연사로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이란과 합의해 그들이 국가를 재건하고 어느 때보다 훨씬 더 위대한 나라를 만들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신속히 전멸시켜 다시는 사람을 살해하고 국가를 파괴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인가, 생존의 기회나 미래의 번영이나 후손에 대한 희망도 없이 그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미국과 합의하든, 멸망하든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는 뜻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에 총회장에 있던 이란 대표단은 실무급 대표부 직원 1명만 남기고 모두 퇴장했다. 각국 정상들이 참석한 UN총회 무대에서 특정 국가를 향해 ‘전멸’ ‘지옥’ 같은 독설을 퍼붓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아가 “나는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상선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핵 야망을 포기하며 테러 지원을 중단할 때까지 모든 국가가 이란에 대한 전면적인 경제적 고립에 함께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나는 선거 직후 합의가 성사될 것이라 믿는다”며 “이란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겁쟁이들과 반역자들은 미국이 탄약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어 하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탄약을 보유하고 있고, 전례 없는 규모로 생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도 “양측 모두 이제 지쳤다”며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를 두고는 “완전히 실패한 국가”라는 평가를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는 지금까지 받은 것 중 가장 큰 압박을 받고 있다”며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깊이 있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니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이어 “쿠바 정권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좌익 급진주의자들, 공산주의 네트워크와 협력했다”며 “그들은 미국 공산당, 민주사회주의자들 같은 체제 전복적·급진적 단체들과 관계를 키웠다”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회의장에 있던 쿠바 대표단도 자리를 떴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뿐 아니라 멕시코, 베네수엘라 등을 거론하며 서반구(남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이 패권 국가 지위를 확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생포, 카리브해 일대 마약 운반선 격침, 중남미 마약 카르텔 소탕 작전 등을 거론하면서 “더 이상 서반구 어느 곳에서도 미국에 대한 위협 세력이 발판을 마련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에 관해서는 “북아메리카의 북쪽 변경”이라며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여야 할 서반구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인공지능(AI) 문제는 중국과의 경쟁 구도를 가장 부각해 설명했다. 최근 ‘클로드’의 앤트로픽과 ‘챗GPT’의 오픈AI, ‘제미나이’의 구글, ‘그록’의 xAI 등 미국의 폐쇄형 AI 모델 기업들이 주장하는 속도 조절론에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앞으로 AI 대신 더 정확한 용어인 ‘슈퍼지능(SI)’이라는 명칭을 쓸 것이고 전 세계도 그러길 바란다”며 “미국은 AI 통제를 위해 국제적 차원의 책략을 마련하려는 어떤 시도도 완전히 거부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산업혁명보다 더 큰 무언가의 성장을 억누르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SI 부문에서 중국은 물론 모두를 앞서 있고 이 우위를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북한 언급 안 해...美·이란 실무 협상단은 3시간 동안 협의
2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UN총회 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 참석한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그는 이날 스티브 위트코프 대통령 중동특 2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열린 UN총회 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 참석한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그는 이날 스티브 위트코프 대통령 중동특사와 함께 이란의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부 장관과 3시간가량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AP연합뉴스이날 트럼프 대통령 연설은 총 38분 동안 진행됐다. 지난해 9월 23일 연설 때 기록한 57분보다 19분 정도 짧았고, 상당 시간은 이란 관련 내용에 할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연설은 이란 전쟁 최대 협력국인 이스라엘이 거의 거론되지 않은 점도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10·7 테러 3주년”을 짚고 넘어갈 때 유일하게 이스라엘을 언급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의 친(親)이란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당시 납치된 인질들을 언급할 때도 이들의 국적인 이스라엘을 따로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게다가 전후 가자지구 재건을 감독할 평화위원회에 기여한 10여 개국에 감사를 표할 때에도 핵심 협력 국가인 이스라엘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UN총회를 계기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별도 정상회담을 열지도 않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네타냐후 총리가 뉴욕에 도착하기 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러 워싱턴DC로 떠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UN총회 연설에 이어 올해에도 북한 관련 언급 역시 전혀 하지 않았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수차례 내비쳤음에도 UN에서는 이에 대한 말을 삼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북한 측 외교관 2명이 들었다. 김성 주유엔북한대사는 불참했다. 북한 외교관들은 같은 날 오후 진행된 이재명 대통령 연설 때는 자리를 비워 대조를 이뤘다. 자리도 애초 UN이 배정한 자리가 아니라 한국 대표단과 더 멀리 떨어진 자리로 옮겨 앉았다. 북한 대표단은 28일 김선경 외무성 부상의 연설을 앞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신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UN은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UN이 “선출된 적도 없는 글로벌리스트(세계주의자) 관료들의 극좌(far-left) 의제를 주권 국가들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주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해체를 벼르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대해서는 “통제 불능의 불량 기관”이라고 독설하며 회원국들에 탈퇴를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UN총회장에서 CNN 기자를 발견하고선 “CNN이 여기 와서 나를 취재하고 있다니 놀랍다”며 “당신들은 여기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자신에 대해 ‘가짜뉴스’를 보도한다는 이유로 CNN과 MS나우, 폴리티코 등 3개 매체의 백악관 출입을 금지했다.

미국과 이란 간 협상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하다가 취재진에게 “3시간 동안 이어진 이란과의 회담이 아주 잘 됐다”며 “아주 가까운 시일 안에 추가 회담이 예정돼 있고 합의하는 게 이란 측에도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이란 국영 IRIB방송은 미국 측 대표단으로는 유대계인 스티브 위트코프 대통령 중동특사와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이란 측 대표단으로는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부 장관이 나섰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미국 주도의 중남미 안보 협력체 ‘미주의 방패’ 행사, 중동 국가 정상들과의 다자 회담에서도 “위트코프 특사와 쿠슈너가 이란 협상의 중재자들을 만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했다”며 “최고위급은 아니지만 좋은 구상들이 많이 나와 일이 아주 잘 풀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군사 압박 완화 조건으로 7일 내 호르무즈 재개방 제시”...군부 반대 속 정상회담은 안 할 듯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AFP연합뉴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AFP연합뉴스협상과 관련해 영국의 로이터통신과 일본의 교도통신은 이란이 미국의 군사적 압박 완화를 조건으로 7일 이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뉴욕에서 중재국을 통해 제안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양국 간의 적대 관계를 영구적으로 종식하기 위한 대화 재개 요건이었다. 이란 당국자는 그러면서도 이번 총회를 계기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날 가능성은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앤디 버넘 영국 총리와도 취임 후 처음으로 만나 중동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버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한 뒤 취재진에게 “우리는 중동에서 분쟁을 멈추고 해협을 개방하는 데 우리의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며 “사우디아라비아에 지원 요청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도 “이란은 우리와 대화하고 싶어 하고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 자리에서 일부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들이 요청하는 경유(디젤) 수출 금지 제안에 대해서도 “나도 그걸 요구했다”고 동조했다. 미국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이란 전쟁 이후 파죽지세로 올라 이달 19일 기준으로 갤런(약 3.79ℓ)당 6.5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찍은 상태다. 1년 전 3.71달러와 비교하면 70% 넘게 오른 수준이다. 이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대형 악재로 분류된다. 회담에 배석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도 “전체 정제 능력 측면에서 실현 가능한지, 전면 금지나 부분 금지가 효과가 있을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공개적으로는 나름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23일 뉴욕 도착 예정인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UN총회 참석을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국영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국제 무대에서 이란의 입장을 피력하겠다”고 천명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 국민이 겪은 부당함과 그간 자행된 범죄, 국제사회에 조성된 불신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것”이라며 “적들은 이란 국민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모든 통로를 차단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IRIB 방송에 따르면 이란군 총참모부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중앙사령부도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군부는 성명에서 “미국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쏟아낸 적대적 발언과 반복된 위협은 사실관계에 근거하기보다 철저히 국내 선전용 도구에 불과하다”며 “미국은 UN이라는 무대를 전 세계적인 침략과 불안정, 약탈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별도로 이번 UN총회에서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옌스 프레데리크 닐센 그린란드 총리와 만나 미군이 그린란드에 대규모 군사기지 두 곳을 건설하고 주둔 병력을 대폭 늘리는 내용의 3자 안보협정도 맺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이 그린란드에 건설할 첫 번째 기지는 남부 나르사르수아크의 옛 군사기지를 재가동하는 수준이다. 나르사르수아크에는 냉전 초기인 1950년대까지 ‘블루이 웨스트 원’이라는 미군기지가 운영됐다. 미국은 이와 함께 그린란드 동부 메스테르스비그에도 군사적 거점을 마련할 예정이다. 메스테르스비그는 현재 덴마크 특수부대인 시리우스 개썰매 순찰대가 사용하는 군사 전초기지다. 현재 그린란드에 남아 있는 미군 시설은 약 150명의 병사가 주둔하는 피투피크 우주기지뿐이다. 미국과 덴마크는 1951년에도 그린란드에 원하는 만큼 미군을 파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위 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UN총회가 이란 전쟁 해결에 얼마나 중대한 전환점이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양국 협상단이 그대로이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힘의 균형에 변화가 없다는 점은 불안 요인이다. 그 사이 예멘의 친(親)이란 후티 반군이 홍해 인근을 장악하면서 원유 공급 불확실성만 한층 더 커졌다. 그나마 중동 전쟁이 트럼프 대통령의 중간선거 여정에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 이란의 경제 사정이 파탄 수준이라는 점은 협상의 동력이 될 전망이다.

일단 국제유가는 외교적 해결 가능성에 조금 더 무게를 두며 하락했다. 이날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11월물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1.1% 하락한 배럴당 99.25달러,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10월물 선물은 1.2% 내린 배럴당 94.59달러에 각각 마감했다. 브렌트유 가격이 100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 8일(97.92달러) 이후 처음이다. 이란 국영 IRNA통신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북부 해역의 주요 거점인 게슘섬에서는 23일에도 폭발음이 들렸다.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