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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천국’ 될 뻔했던 독일 베를린, 지금은 왜?[딥다이브]

임대주택이 많은 독일에서도 임대 가구 비율이 84%로 가장 높은 베를린. 한때는 저렴한 주거비가 매력적인 ‘세입자 천국’으로 통했는데요.

하지만 지난 수년간 베를린 임대료는 폭등했고, 살 집을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아우성이 커져갑니다. 이로 인해 최근 시의회 선거에선 ‘민간 임대주택 몰수’를 공약한 극좌파 정당이 승리했죠. ‘임대주택 천국’을 꿈꿨던 독일 베를린의 지독한 임대난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독일 베를린 쾨페니크 지역의 민간 임대아파트. 방 3개짜리 94㎡ 아파트의 기본임대료(난방비, 공과금 제외)가 월 1465유로(227만원)다. 베를린은 임대료 수준 자체는 독일에서 높은 편이 아니지만, 상승률로는 단 독일 베를린 쾨페니크 지역의 민간 임대아파트. 방 3개짜리 94㎡ 아파트의 기본임대료(난방비, 공과금 제외)가 월 1465유로(227만원)다. 베를린은 임대료 수준 자체는 독일에서 높은 편이 아니지만, 상승률로는 단연 1위인 지역이다. 도이치 보넨 제공*이 기사는 9월 23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고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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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69% 오른 임대료“베를린에선 투룸 아파트에 월 1500유로(약 234만원) 이상을 내는 경우가 흔합니다. 도대체 누가 이 돈을 감당할 수 있죠?”

9월 5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열린 세입자 항의 시위에 수천 명이 넘게 모였습니다. 시위대의 구호는 ‘아파트를 내놓고 임대료를 낮춰라’. 특히 ‘몰수(Enteignen)’고 적힌 피켓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죠. 대기업(3000채 이상 보유)이 운영 중인 민간 임대주택 약 22만채를 시정부가 몰수해서 공공 임대주택으로 운영하란 주장입니다.

베를린 시의회 선거를 앞둔 9월 18일 좌파당의 시장 후보인 엘리프 에랄프가 레드 시티홀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좌파당은 20일 열린 선거에서 사상 처음 1위를 차지했다. AP뉴시스 베를린 시의회 선거를 앞둔 9월 18일 좌파당의 시장 후보인 엘리프 에랄프가 레드 시티홀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좌파당은 20일 열린 선거에서 사상 처음 1위를 차지했다. AP뉴시스그리고 9월 20일 시의회 선거에서 이 ‘임대주택 몰수’ 공약을 앞세운 좌파당(Die Linke)이 제1당에 올랐죠(득표율 25.7%). 사실 베를린에선 2021년 9월에도 주민투표로 ‘대기업의 임대주택 몰수’ 발의안이 통과(당시 찬성률 59%)한 적 있는데요. 그땐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이번 선거로 몰수 법안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진 겁니다.

베를린 세입자들의 터져나오는 분노,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베를린은 독일에서 가장 임대가구 비율이 높은 곳인 동시에 임대료가 가장 많이 뛴 지역이거든요. 2016년 이후 10년간 임대료 상승률이 69%나 되는데요.

이런 임대료 급등의 배경엔 공급 부족이 있습니다. 2010년대 들어 베를린은 IT 스타트업의 중심지로 떠올랐고요. 이로 인해 2010년 이후 인구가 약 50만명이나 증가했죠. 하지만 이 기간 건설된 주택은 15만9000세대뿐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죠. 그렇게 수요가 넘치면 민간사업자들이 공급을 늘리려 나설 텐데, 왜 그런 시장 원리가 그동안 작동하지 않았을까요. 바로 여기서 베를린 임대차 시장의 진짜 문제가 드러납니다.

초강력 임대료 규제로 생긴 일독일은 오랫동안 자가소유보다 임대를 정책적으로 장려해 온 나라였죠. 특히 웬만해선 세입자를 내쫓을 수 없는 강력한 임대차 보호법으로 세입자의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해 왔는데요.

2015년 독일 연방정부는 여기에 한층 강한 규제를 추가했어요. 주택난이 심각한 대도시에 한해 ‘임대료 브레이크’를 도입할 수 있게 한 거죠. 기존 주택(2014년 이전에 건축)의 경우, 세입자와 계약을 맺을 때 임대료가 일정 금액(지역 표준 임대료의 110%)을 초과해서 오를 수 없게 상한선을 두는 겁니다.(단, 이미 초과한 경우라면 깎진 않음) 다른 대도시와 함께 베를린도 이 규제를 도입했는데요.

그럼, 임대료가 별로 많이 안 올라서 좋겠다고요?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임대사업자들이 예외 규정을 이용해 쏙쏙 빠져나갔거든요. 일단 임대료 브레이크 대상인 일반 임대 매물은 찾기 힘들어졌고요. 예외를 적용받는 ‘가구 포함 임대’ 또는 ‘단기(6개월 이하) 임대’ 주택으로 대거 전환됐습니다. 집주인들이 싸구려 소파, 침대를 들여놓고 임대료를 마음껏 올려받은 거죠. 또는 단열재를 붙이고 창문을 바꾼 뒤 공사비 명목으로 월세를 올려받기도 했어요.

독일 베를린의 헬러스도르퍼 프로메나드 임대아파트의 모습. 전형적인 구 동독식 구조의 임대주택으로, 현재는 베를린 기반의 부동산 대기업 도이치 보넨이 소유한다. 2019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단장했다. 도이치 독일 베를린의 헬러스도르퍼 프로메나드 임대아파트의 모습. 전형적인 구 동독식 구조의 임대주택으로, 현재는 베를린 기반의 부동산 대기업 도이치 보넨이 소유한다. 2019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단장했다. 도이치 보넨 제공임대인의 꼼수로 구멍이 숭숭 뚫린 임대료 브레이크. 세입자 비율이 높은 베를린 시민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요. 이에 베를린시 정부는 2020년 2월, 어디에도 없던 초강력 규제를 도입합니다. 바로 ‘5년간 임대료 동결’ 법안이었죠. 2019년 6월에 낸 임대료에서 한 푼도 올리지 못하게 막았고요. 동시에 계약 기간 중이어도 시정부가 정한 기준보다 월세가 높으면 이를 당장 깎아주도록 강제했어요(위반 시 최대 50만 유로 과태료).

초강력 규제의 효과는 강력했습니다. 법 시행 직후, 약 34만 가구의 세입자가 7~11% 월세 인하 혜택을 보게 됐죠. 하지만 환호는 잠시뿐. 1년 만인 2021년 4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이 법안에 대해 위헌(무효) 결정을 내립니다. 임대료 규제는 연방정부만 할 수 있고, 시정부엔 권한이 없단 이유였죠.

그리고 이 실패한 실험이 가져온 결과는? 임대주택 매물의 증발이었습니다. 1년 만에 주당 600여 건이던 베를린의 신규 임대 공고 매물이 300건 미만으로 급감했죠. 임대인들이 싼값에 임대하느니, 차라리 집을 팔거나 비워뒀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건 건설사들이 이렇게 규제가 오락가락하는 베를린에 주택을 건설하는 걸 꺼리게 됐다는 거죠. 주택 개발이 베를린이 아닌 규제가 덜한 포츠담 같은 주변 위성도시로 쏠리게 됩니다.

이사가 사치인 도시 세입자를 보호하려 꺼내 들었던 임대료 동결 규제가 결과적으로 임대주택 공급 부족을 더 부추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정책 실패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살 집을 새로 구해야 하는 젊은이들이죠.

앞서 얘기한 대로 2015년부터 베를린은 계약 시 임대료 인상 폭을 제한하는 정책을 시행 중인데요. 덕분에 기존 세입자는 그 임대주택에서 계속 사는 한은 임대료 급등을 걱정할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그 자체는 좋은 일이죠.

문제는 그들이 다른 집으로 이사하려고 하거나, 또는 아예 베를린에서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 외지인인 경우입니다. 이땐 기존 토박이 세입자들보다 훨씬 더 비싼 월세를 감당해야만 하죠. 시장에 나와 있는 선택지는 가구가 포함돼 있거나, 리모델링 공사를 했거나, 신축이어서(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월세가 비싼 집뿐이니까요. 즉, 셋집을 언제 구했느냐에 따라 임대료가 완전히 달라지는 건데요.

1926~1931년에 지어진 베를린의 제헬렌도르프 숲 주택단지. 서민층을 위한 저렴한 공공주택으로 지어졌지만, 오늘날엔 뛰어난 주거 환경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베를린에서도 수요가 높고 매물 1926~1931년에 지어진 베를린의 제헬렌도르프 숲 주택단지. 서민층을 위한 저렴한 공공주택으로 지어졌지만, 오늘날엔 뛰어난 주거 환경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베를린에서도 수요가 높고 매물이 귀한 임대주택으로 꼽힌다. 부동산 대기업 도이치 보넨이 소유, 관리한다.베를린시가 집계한 평균 임대료는 ㎡당 평균 7.71유로(월 기준). 하지만 온라인에서 광고 중인 신규 계약 임대료는 평균 15.8유로로 그 두 배입니다. 만약 신축이라면 23~25유로로 더 높아지죠.

이런 극단적인 이중구조로 인해 이제 베를린에서 이사는 사치입니다. 기존 계약을 포기하고 이사를 나가는 순간 같은 평형, 비슷한 입지에도 2배 넘는 임대료를 감당해야 할 테니까요. 독일 언론 DW 인터뷰에서 한 시민은 “더 큰 집으로 이사할 형편이 되지 않아서 둘째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합니다. 자라는 아이가 있는 중년엔 큰 집으로, 자녀가 독립한 노년엔 작은 집으로 옮겨가기도 쉽지 않게 되어버린 거죠.

취업·유학을 위해 베를린으로 새로 온 젊은이들은 살 집을 구하지 못해 안달입니다. 임대료가 비쌀 뿐 아니라, 얼마 안 되는 임대 매물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니까요. 외국인이라면 아예 집을 구경할 기회조차 얻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베를린의 IT 산업 성장엔 젊은 인재 유치가 중요한데, 이런 극심한 임대난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죠.

주택 몰수? 무슨 돈으로? 자, 그럼 좌파당이 이번에 공약한 대로 대기업이 쥐고 있는 민간 임대주택을 시 정부가 몰수하면 어떻게 될까요. 베를린의 이 지독한 임대 대란을 끝낼 수 있을까요?

일단, 임대사업자가 규제의 허점을 파고들어 임대료를 높여 받았던 걸 되돌릴 수는 있겠죠. 몰수 대상인 22만 채에 현재 거주 중인 세입자들에겐 아주 큰 선물이 될 겁니다. 평생 그 집에서 쭉 살면 될 테니까요.

그런데 이미 살고 있는 집을 몰수한다고 해서 공급이 늘어나는 건 전혀 아니잖아요? 그리고 22만채를 도대체 무슨 돈으로 매입하죠? 주택공사가 빚을 내서 매입하면, 그게 결국 시민 세금인데요. 또 주택 매입 가격은 얼마로 해야 할까요? 시세대로 다 주면 오히려 대기업 좋은 일만 시키는 거고, 가격을 확 깎자니 이후 소송 붙으면 질 게 뻔하고요?

수많은 물음표가 따라붙는 정책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래서일까요. 선거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임대주택 몰수’ 정책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7%에 불과했습니다. 베를린 시민의 과반(51%)은 이에 반대했죠. 주택 몰수 대상으로 지목된 대형 부동산 기업 보노비아의 루카 무시치 CEO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사회화(임대주택 몰수)로는 단 한 채의 새 아파트도 지을 수 없습니다.”

과거 베를린시의 재정파탄을 촉발한 주택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로 꼽혔던 오버하펠 수변도시의 모습. 1992년 1만3000세대의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거창한 계획으로 시작됐지만, 지하철 연장 취소와 수요 예측 실패가 겹 과거 베를린시의 재정파탄을 촉발한 주택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로 꼽혔던 오버하펠 수변도시의 모습. 1992년 1만3000세대의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거창한 계획으로 시작됐지만, 지하철 연장 취소와 수요 예측 실패가 겹치면서 사업이 표류해왔다. 이후 오랫동안 방치됐지만, 2018년부터 개발이 본격적으로 재개돼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며 부활하고 있다. 베를린시 제공사실 베를린은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전체 주택의 3분의 1이 시정부 소유인 ‘공공 임대주택의 천국’이었습니다. 그땐 월세도, 생활비도 저렴해서 유럽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이던 낭만이 있는 도시였죠. 2003년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당시 시장이 홍보했던 대로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였는데요. 하지만 이후 베를린시는 이 공공 임대주택을 대거 민간 기업에 팔았고요. 그게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럼, 왜 당시 베를린은 그런 악수를 둘 수밖에 없었느냐. 무리한 주택 정책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았기 때문이었죠. 독일 통일 이후, 베를린은 인구 급증을 예상해 대대적인 공공 주택 건설에 나섰고요. 1990년대에 ‘오버하펠 수변 도시’ 같은 대형 신도시 프로젝트가 속속 진행됐는데요. 하지만 예측과 반대로 인구가 빠져나가면서(탈베를린 현상), 외곽에 지어진 대규모 신축 아파트는 텅텅 비어버렸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붕괴는 2001년 베를린 시립은행을 파산 위기로 몰았고요. 어쩔 수 없이 베를린시 정부는 은행의 막대한 채무를 떠안았습니다. 베를린의 총채무가 무려 600억 유로(당시 환율 기준 약 70조원)로 불어났죠. 도시 한 곳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습니다.

그래서 베를린시 정부는 가장 돈 되는 자산을 내다 팔아야 했습니다. 그게 공공 임대주택이었죠. 2004년 이후 20만채가 넘는 공공 임대주택이 해외 사모펀드에 팔려나갔고요. 지금은 보노비아, 도이치 보넨 같은 대형 부동산 기업의 주요 자산이 됐습니다.

결국 지금 베를린의 임대 위기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어난 여러 주택정책의 실패가 쌓여서 나타난 결과물입니다. 수요예측 실패, 재정 파탄, 성급한 민영화와 시장 원리를 무시한 가격 통제. 이 모든 게 겹치면서 문제가 풀 수 없을 지경으로 꼬여버리고 말았죠. 베를린은 긴 안목을 가지고 주택 정책을 펼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 사례로 남을 겁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9월 23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고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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