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부품 쟁탈전
테슬라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테슬라 제공테슬라가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3세대의 대량 양산을 앞두고 한국 로봇 부품 공급망을 훑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 업체들을 중심으로 조달해온 핵심 부품 공급처를 다변화하기 위해서다. 전기차 시장에서 배터리와 전장부품 공급망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졌듯 휴머노이드에서도 감속기와 모터, 센서, 액추에이터 등을 누가 공급하느냐를 두고 중국·일본·한국 간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휴머노이드는 아직 산업 표준이 정해지지 않은 초기 시장인 만큼 첫 대량 양산 모델의 공급망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완성 로봇 업체와 초기 설계 단계부터 부품을 공동 개발하고 수년간 성능을 검증하는 특성 때문이다. 한번 공급망에 들어가면 후속 모델과 대량 양산 단계까지 거래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中 공급망 쓰던 테슬라, 한국·일본까지 훑는다
24일 로봇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올 상반기 국내 로봇 부품 업체 여러 곳을 방문해 생산시설과 기술력을 점검했다. 테슬라는 현재 리더드라이브 등 중국계 업체 부품을 활용하고 있지만 일부 제품의 품질과 공급 안정성 등에 문제의식을 갖고 대체·보완 공급망을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국내 업체가 옵티머스 공식 공급망에 포함된 단계는 아니지만 국내 기업들과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휴머노이드 부품 공급망에서 가장 빠르게 생태계를 구축한 국가는 중국이다. 전기차와 산업용 로봇 산업에서 키운 모터와 감속기, 액추에이터, 정밀가공 업체들이 휴머노이드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공급업체 수가 많고 원가 경쟁력도 높아 로봇 한 대에 들어가는 수십 개의 구동 부품을 빠르게 조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일본은 정밀 부품에서 강하다. 특히 로봇의 관절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감속기 분야에서 오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일본 나브테스코는 중대형 산업용 로봇용 정밀 감속기 분야의 글로벌 강자로 꼽힌다. 휴머노이드용으로도 어깨와 고관절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소형·경량 제품 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테슬라가 한국뿐 아니라 일본 부품 공급망도 함께 살펴보는 배경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아틀라스'. 뉴스1○아틀라스 공급망 韓서 만든다…車부품 기술 로봇으로
한국의 가장 큰 무기는 자동차 산업이다. 전기모터와 센서, 전자제어장치, 정밀가공 등 자동차에서 수십 년간 쌓은 기술이 휴머노이드의 관절과 근육을 구성하는 핵심 부품 기술과 상당 부분 겹친다.
이 같은 강점이 가장 먼저 현실화한 곳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다. 현대모비스는 아틀라스 양산 모델에 들어가는 액추에이터를 공급하기로 했다. 액추에이터는 모터와 감속기, 제어기 등을 결합해 전기 신호를 실제 관절 움직임으로 바꾸는 휴머노이드의 핵심 부품이다. 현대모비스는 자동차 전동화 부품에서 축적한 모터·제어 기술과 대량생산 경험을 로봇 부품으로 확장하고 있다.
아틀라스의 국내 공급망은 현대모비스 한 곳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자동차 부품 중견·중소기업들도 감속기와 모터, 센서, 정밀가공 부품 등을 중심으로 아틀라스 공급망에 순차적으로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역시 국내 자동차·로봇 부품업체들의 생산 능력과 기술력을 점검하며 공급망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형성된 국내 부품 생태계가 휴머노이드 산업으로 그대로 확장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대차그룹도 아틀라스를 그룹 차원의 신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현대차·기아가 생산설비와 제조 데이터를 제공하고 현대모비스가 핵심 부품을 맡는 방식이다. 아틀라스를 현대차그룹 제조 현장에 우선 투입한 뒤 생산량을 확대하는 만큼 국내 부품사의 휴머노이드 공급망 진입 기회도 함께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투자업계에서도 한국을 중국을 제외한 휴머노이드 부품 공급망의 주요 후보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들이 직접 생산과 부품 공급을 합쳐 2035년 세계 휴머노이드 생산의 약 30%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 산업에서 축적한 전기모터와 센서, 제어장치, 정밀가공 기술이 휴머노이드 산업으로 빠르게 이전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로선 어느 한 국가가 휴머노이드 공급망을 독식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미국은 테슬라와 보스턴다이내믹스, Figure AI 등을 중심으로 AI와 완성 로봇 설계를 주도하고 중국은 가장 폭넓은 부품 생태계와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일본은 고정밀 감속기 등 일부 핵심 부품에서 강하고 한국은 자동차 산업을 기반으로 액추에이터와 센서, 제어장치의 대량생산 경쟁력을 갖췄다.
관건은 초기 양산 공급망을 누가 선점하느냐다. 업계 관계자는 “휴머노이드 부품은 개발 초기부터 완성업체와 함께 설계와 테스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초기 공급망에 진입한 업체가 양산 이후까지 거래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 국내 업체들도 테슬라 등 글로벌 로봇 업체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