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사이언스카페] 불에 탄 古代 문서, 해독할 열쇠 찾았다

숯덩이 된 파피루스 두루마리, CT로 촬영
잉크 속 납 성분이 X선 25배 더 흡수
화산 폭발로 불탄 로마 문서, 해독 길 열려

태우기 전후의 파피루스 두루마리. 고열에 파피루스는 숯덩이가 됐지만 형태가 파괴되지는 않았다./UC버클리 태우기 전후의 파피루스 두루마리. 고열에 파피루스는 숯덩이가 됐지만 형태가 파괴되지는 않았다./UC버클리
2000년 전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을 때 폼페이 근처 헤르쿨라네움에 있던 파피루스 두루마리 1800여 점이 숯덩이가 됐다. 18세기 발굴됐지만 손만 대면 부스러져 그 안의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과학자들이 고대 로마가 남긴 타임캡슐을 열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의 더글러스 사일러(Douglas Seiler) 박사 연구진은 “파피루스를 불태워 헤르쿨라네움 문서와 같이 숯덩이로 만들고 잉크 속 납 성분을 X선으로 감지해 글자를 읽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16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발표했다.

몸속의 뼈를 촬영하듯 X선으로 숯덩이 파피루스 안쪽의 글자를 확인하는 방법은 이전부터 시도됐다. 하지만 불에 탄 잉크와 파피루스가 같은 탄소 성분이라 X선 판독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X선으로 잉크에 포함된 납 성분을 감지해 이 문제를 극복했다. X선 영상에서 납 성분 잉크로 쓴 글자는 뼈를 찍은 의료 영상처럼 선명하게 빛났다.

먹으로 글자 쓴 파피루스 불태워 실험
파피루스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의 기록 매체로,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했다. 같은 이름의 갈대과(科) 식물 줄기를 압착하고 얇게 발라내어 만든다. 당시 파피루스에 쓴 잉크는 그을음과 천연 접착제를 물과 섞어 만들었다. 사일러 박사 연구진은 숯덩이가 된 파피루스 문서를 만들어 새 판독 기술의 능력을 입증했다.

먼저 이집트에서 파피루스와 갈대 펜을 구하고 일본에서 가져온 먹을 갈아 잉크로 삼았다. 먹은 소나무나 식물성 기름을 태워 얻은 그을음에 동물성 아교를 섞어 만든다. 고등학생들은 갈대 펜에 먹물을 찍어 영화 ‘스타워즈’와 성경에 나오는 구절을 파피루스에 적었다. 이후 파피루스를 둘둘 말아 용광로에 넣고 숯덩이가 될 때까지 태웠다. 기원후 79년 베수비오 화산에서 날아온 뜨거운 화산재가 헤르쿨라네움의 도서관을 덮친 상황을 재현한 것이다.

모형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완전히 펼쳐 보여주는 컴퓨터 가상 영상(위)과 확대한 글자 부분(아래). 잉크 속 납 성분이 X선을 파피루스보다 25배나 흡수해 영상에서 밝게 빛난다./NIST 모형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완전히 펼쳐 보여주는 컴퓨터 가상 영상(위)과 확대한 글자 부분(아래). 잉크 속 납 성분이 X선을 파피루스보다 25배나 흡수해 영상에서 밝게 빛난다./NIST
연구진은 숯덩이가 된 두루마리를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컴퓨터 단층 촬영(CT) 장비로 찍었다. CT는 X선을 여러 각도에서 투과시켜 찍은 수백 장의 조직 단면 영상을 모아 물체 내부를 입체로 보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CT로 파피루스에 손을 대지 않고도 학생들이 적은 글자를 확인했다.

같은 CT지만 의료 영상과 파피루스 판독은 방식은 달랐다. 의료용 CT는 인체 조직에 따라 X선이 얼마나 달리 흡수됐는지 확인한다. 단단한 뼈는 X선을 많이 흡수해 영상에서 하얗게 보인다.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는 X선 흡수율만으로는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파피루스 자체도 탔기 때문에 일반 X선에서는 검은 잉크와 검게 탄 종이가 같은 물질처럼 보인다.

UC버클리 연구진은 잉크의 탄소가 아니라 그 안에 극미량 포함된 납을 탐지했다. CT는 1㎠당 25㎍(마이크로그램·100만분의 1g)에 불과한 낮은 농도의 납도 감지했다. 납을 감지한 덕분에 대형 CT 장비 대신 휴대용 X선 형광 장치로도 잉크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사일러 박사는 “납이 파피루스보다 X선을 25배나 더 많이 흡수해 잉크가 밝은 점으로 두드러진다”며 “파피루스 속 글자들이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빛났다”고 말했다.


앞서 과학자들은 X선 흡수율 대신 굴절률(위상) 차이로 숯덩이 파피루스에서 글자를 판독했다. 잉크가 묻었던 곳은 파피루스 표면에서 질감과 구조가 미세하게 달라진다. 잉크가 완전히 스며들지 않은 채 0.1㎜ 정도 솟은 형태로 굳으면 X선이 다르게 꺾인다.

이탈리아 연구진은 2015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X선 위상차 CT 방식으로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에서 그리스어 글자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UC버클리 연구진은 같은 탄소의 X선 흡수율이나 굴절율이 아니라 전혀 다른 납을 탐지했다는 점에서 불탄 파피루스 글자 해독에서 진일보한 성과로 평가받았다.

파피루스 해독 대회서 잇따라 성과
물론 이번에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를 직접 해독하지는 않았다. 대신 일종의 복제품을 만들어 새 판독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또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에 글자를 적은 잉크에 납이 들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과거 발굴 사례를 보면 가능성은 크다.

1900년 이집트 고대 도시인 테브투니스 유적지에서 납 성분 잉크로 글자를 쓴 파피루스가 발굴됐다. 테브투니스 파피루스는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후 300년 사이의 유물이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인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에서도 납 성분의 잉크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

파피루스 해독 대회도 관련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미국 켄터키대 컴퓨터과학과의 브렌트 실즈(Brent Seales) 교수와 실리콘밸리의 후원자들은 2023년 상금 100만달러를 걸고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굴된 두루마리를 해독하는 사람을 찾는 ‘베수비오 챌린지’ 대회를 열었다.

실즈 교수는 2009년 처음으로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에 CT 촬영을 했으며, 2016년에는 CT로 이스라엘에서 발굴된 고대 파피루스의 글자를 복원했다. 숯덩이가 된 두루마리의 3차원 구조와 미세한 잉크 흔적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컴퓨터에서 펼친 파피루스 이미지를 만들었다.

다른 과학자들도 잇따라 X선으로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의 내용을 알아냈다. 2023년 베수비오 챌린지 대상 수상자들은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고대 그리스어 단어 ‘πορφύρας(보라색)’를 찾아냈다. 글자 해독에는 인공지능(AI)도 한몫했다. 지난해 대회에서는 AI 기계학습 분야의 두 연구자가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 두루마리의 제목과 저자를 최초로 밝혀냈다.

참고 자료

PLoS ONE(2026), DOI: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353485

Vesuvius Challenge(2025), https://scrollprize.substack.com/p/60000-first-title-prize-awarded

Science Advances(2016), DOI: https://doi.org/10.1126/sciadv.1601247

Nature Communications(2015), DOI: https://doi.org/10.1038/ncomms6895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