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전 오케스트라에 첫발을 내디딘 아이. 돌이켜보면 그 작은 시작 뒤에는 기다려주고, 도와주고, 응원해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말 오후가되면 아이의 바이올린 가방과 악보를 챙깁니다.
"오늘 오케스트라 연습가는 날이네."
그럴 때마다 3년 전 오디션을 보던 날이 떠오릅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들어갔던 아이는 오디션을 마치고 나오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었습니다. 마치 "숙제 하나 끝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얼마 뒤 합격 소식을 듣고 아이와 손을 잡고 기뻐했던 순간도 아직 생생합니다.
처음 연습실에 들어섰을 때 아이는 첼로와 더블베이스, 플루트와 타악기 등 낯선 악기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실력은 부족했지만, 멋진 오케스트라의 한 자리에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와 학부모에게는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의 시간을 지나며 알게 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하모니는 무대 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음을요.
처음 온 저희 모녀에게 먼저 다가와 연습 방법과 공연 준비를 알려주시던 선배 학부모님들이 계셨습니다. 아이들이 큰 악기를 옮길 때 함께 들어주시고, 낯선 환경에서 어리둥절한 부모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셨습니다.
연습이 있는 날이면 누군가는 간식과 물을 준비하고, 아이들이 연습하는 동안 주변을 정리하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두고 간 물건을 챙깁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있으니까."
"우리 아이와 함께 연주하는 아이들이니까."
그 마음 하나로 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아이들을 살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도움을 받기만 했지만, 시간이 지나 학부모로서 함께 봉사하면서 그 마음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움직이는 손길이 있었기에 오케스트라의 무대가 가능했다는 것을요.
공연 때마다 아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와주신 지역 관계자분들의 관심도 어린 단원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격려해주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응원받고 있다는 사실이 부모로서 참 든든했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아이가 배운 것은 단순히 악기를 만졌던 연주만이 아니었습니다.
내 소리만 크게 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 조금 늦거나 어려워하는 친구를 기다려주는 것, 그리고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음악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희 아이가 오기 전부터 이곳을 지켜온 선배 단원들과 학부모님들이 계셨고, 그분들이 남겨주신 배려와 봉사의 마음이 지금의 서귀포의 오케스트라아이들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그분들께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물 한 잔을 건네준 손길, 악기를 함께 들어준 손, 연습이 끝난 뒤 조용히 정리해준 자리, 긴장한 아이에게 건넨 "잘했어"라는 한마디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마음들이 모여 아이들에게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언젠가 우리 아이도 자신보다 어린 단원이나 새로 들어온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받았던 따뜻한 도움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니까요.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는 서귀포라는 공간 안에, 아이들이 음악을 배우고 사람을 배우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따뜻한 자리가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오케스트라에서 3년 동안 배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어쩌면 악보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서로의 소리를 듣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법. 그것이 제가 아이와 함께한 3년 동안 이 오케스트라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하모니입니다. /김이경 서귀포청소년오케스트라 단원 학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