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는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개월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건강한 체질로 새벽에는 제주시 사라봉에서 다양한 운동기구로 지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시다가, 오후에는 인근 수영장에서 하루 루틴을 마무리하셨다. 대장암 진단 이후 가장 힘들어하신 것은 스스로 대소변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자존심이 강하셨던 분이었기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자괴감을 감추지 못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자신의 행복을 선택하듯 존엄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일까? 명예를 위해 전쟁터로 가거나 신앙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듯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존엄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자유의지를 물리적으로 실행하지 못하게 된다면 말이다.
대만 여의사 비류잉(畢柳鶯)이 어머니의 존엄사를 기록한 책 『단식 존엄사』에는 소뇌실조증이라는 유전병으로 인한 비참한 가족사가 냉정하게 기록되어 있다. 소뇌실조증으로 고통 속에 생을 마감한 삼촌과 사촌의 이야기부터, 교사였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했던 태도, 옷 만드는 일로 자녀들을 키운 어머니의 삶이 진솔하게 소개된다. 소뇌실조증을 진단받은 이후 가족들의 반응과 단식을 통해 존엄사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대만의 존엄사 관련 법과 일본 등 해외 사례가 잘 담겨 있다. 또한 주변 의사들의 반응과 다양한 의견도 읽을 수 있다.
특히 단식을 통한 존엄사 과정을 소개한 9장 '단식의 길'에서는 냉정하면서도 조용하고 담백하게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책 후기에는 어머니를 보낸 이후 저자 자신과 남동생, 남편의 솔직한 심정이 적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단식은 환자의 뜻에 따라 인위적인 영양공급(콧줄, 영양 수액)을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생체적 소멸을 수용하는 단식(완화적 섭식 중단)을 말한다. 오해 없기를.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분명하다. 치료 불가능한 상태의 환자를 위한 존엄사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그녀가 존엄사를 부추기거나 방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대만 소뇌실조증 환자들의 재활 등을 돕는 소뇌실조증 환우협회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의사로서의 기본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며 다른 의사들의 입장도 존중한다. 그렇기에 대만 내 관련 입법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선택할 수 없다.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예고 없이, 순서도 없이 다가온다. 소멸하는 모든 존재에게 죽음은 당연한 이치다. 이 무작위적인 사건에 우리는 모두 당황하고 상처를 입는다. 죽음 앞에 숙연해지는 것은 이별의 상처를 경험한 우리가, 남겨진 자에게 똑같은 아픔을 주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공평한 이 사건 앞에 우리 모두는 겸허해야 하며, 이 무작위의 질서를 거스를 이유도 방법도 없다.
하지만 소멸의 단계와 결론이 이미 정해진 경우라면 어떨까? 소멸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과정에 놓인 자와 이를 지켜보는 자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면, 소생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면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고통을 나누며 마지막 시간을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가. 나는 이것이 괴롭다. 소생 불가능한 시간을 맞이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의식만 깨어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이별의 시간을 무한히 기다리며 감내해야만 하는 걸까.
행복한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추억을 나누기는커녕 물리적 고통을 대책 없이 느끼고 의식해야 한다면. 의식은 의식일 뿐 물리적인 나를 도와주지 못한다. 그저 고통을 느끼는 의식만 남을 뿐이다. 이 과정이 생략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 사멸의 과정은 권력자였든 소시민이었든, 상대적으로 행복한 삶이었든 불행한 삶이었든 상관없이 찾아온다. 그러니 이 기도는 하늘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각 개인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사회적 준비다.
국내에는 의사조력사에 대한 입법 논쟁이 조용히 숨어 있다. 하지만 내 주변의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한목소리를 내시는 것 같다. '착한 죽음', '고통 없는 죽음'. 이 기도가 간절함에도 치유할 수 없는 사멸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우리 사회는 아직 용납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소극적 존엄사, 즉 의미 없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권리를 보장한 법이다. 결국 이 법에는 '의사조력사'가 없다. 따라서 '국민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이 청구된 상태다. 회복 불가능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치료 중단을 넘어, 의사의 조력을 받아 죽음을 선택할 권리(의사조력사)까지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쉽게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죽음에 이른 과정에 관한 생각과 글을 정리하다 보니, 도리어 삶에 대한 에너지와 용기가 더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짧은 인생을 내 방식대로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차오르는 이유를 모르겠다. 삶을 생각하니 죽음이 다가오고, 죽음을 생각하니 새로운 삶이 찾아오는 기분이다.
내가 느끼고 싶은 삶의 활기는 욕망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랑이다. 지금 이 시각, 이 공간, 이 사람, 이 대화, 이 흐름 말이다. 죽음 보다는 삶의 아름다운 공간을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통해 다시 느끼고 싶다. 공간이 주는 삶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껴보자. 지금 나에게 주어진 공간처럼.
김대휘
김대휘는 기자생활을 30년 정도했다. 제주도기자협회장을 역임하고 제주CBS 보도국장에 이어 제주CBS 대표로 퇴직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함께 읽는 것을 좋아한다. 제주시 한경면에서 책방을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