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 제작한 이미지.[디지털데일리 김남규기자] 전세 계약이 끝났는데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곧바로 전세금반환소송을 해야 할까.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이나 금액 자체를 다투지 않는다면 재판 없이 서면 심사만으로 집행권원을 확보할 수 있는 ‘지급명령’을 먼저 검토할 수 있다. 다만 집주인의 소재가 불분명하거나 보증금 반환을 둘러싸고 다툼이 예상된다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25일 법도종합법률사무소에 따르면 지급명령은 금전 지급을 요구하는 채권자의 신청을 받아 법원이 채무자를 별도로 심문하지 않고 서면 심사만으로 지급을 명하는 절차다.
핵심은 ‘2주’다. 집주인이 지급명령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지급명령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긴다. 세입자는 이를 집행권원으로 삼아 집주인 재산에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다.
비용도 정식 소송보다 적게 든다. 지급명령 신청 때 내는 인지대는 같은 금액을 소송으로 청구할 때의 10분의 1 수준이다. 별도의 재판 기일 없이 서류만으로 심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집주인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소송보다 빠르게 절차를 마칠 수 있다.
한 예로 세입자 A씨는 전세 만기 2개월 전 내용증명을 보내 계약 갱신을 거절한다는 의사를 알렸다. 만기가 지나자 임차권등기명령을 받은 뒤 이사했지만 집주인은 “여유가 생기면 주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보증금 반환을 미뤘다.
A씨는 집주인의 주소가 확실하고 보증금 액수에도 다툼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임대차계약서와 내용증명, 임차권등기 사항이 기재된 등기사항증명서를 제출해 청구 원인을 소명했고 법원은 별도의 기일을 열지 않고 지급명령을 내렸다.
엄정숙 변호사.집주인은 지급명령을 송달받은 뒤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2주가 지나 지급명령이 확정되자 A씨는 이를 근거로 집주인 명의 부동산에 강제경매를 신청할 수 있게 됐다. 소장 접수부터 판결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는 전세금반환소송 대신 비교적 짧은 절차로 집행권원을 확보한 셈이다.
반대로 집주인이 잠적했거나 주소가 불분명하다면 지급명령을 선택하기 어렵다. 지급명령은 집주인에게 서류가 실제 송달돼야 하고 공시송달 방식으로는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락이 끊겼거나 서류 수령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면 처음부터 전세금반환소송을 제기해 필요할 경우 공시송달 절차를 밟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집주인이 보증금 액수나 계약 종료 등을 다툴 가능성이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집주인이 지급명령을 받은 뒤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하면 사건은 소송 절차로 넘어간다. 이의신청에는 별도의 이유를 적을 필요가 없어 집주인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면 처음부터 소송을 냈을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집주인이 원상회복 비용이나 연체 관리비를 보증금에서 빼겠다고 주장하거나 계약 종료 자체를 다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급명령이 확정되더라도 판결과 달리 기판력이 없어 집주인이 이후 청구이의 소송을 통해 다시 다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절차를 택하든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는 필요하다. 만기 2개월 전 내용증명 등을 통해 계약 해지나 갱신 거절 의사를 알리고, 보증금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사해야 한다면 임차권등기를 마쳐 대항력과 기존에 확보한 우선변제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부동산전문 변호사는 “지급명령은 임대인이 돈이 없을 뿐 반환 의무를 부인하지 않는 전형적인 전세금 미반환 사안에서 가장 빠른 집행권원 확보 수단”이라며 “송달이 불확실하거나 임대인이 공제나 계약 종료를 두고 다툴 것으로 보이면 이의로 시간만 잃을 수 있으므로 임대인의 태도와 소재를 먼저 확인한 뒤 지급명령과 전세금반환소송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