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 자율주행 시대 기대감 키워
기술 있지만, 책임 소재가 발목 잡아
승용차, 당분간 2+에 만족해야 할 듯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잠원IC 하행선이 귀성차량으로 혼잡을 빚고 있다. 뉴시스 연휴가 짧은 올 추석 귀성·귀경길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는 본격적으로 귀경이 시작되는 25일 부산에서 서울까지 9시간, 목포에서 서울까지 7시간40분이 걸린다고 추계했다. 귀성길을 포함해 왕복으로 보면 만 하루를 도로에서 허비하는 셈이다. 그만큼 운전자 피로도가 극대화한다. 현실적 타개책은 버스·기차와 같은 공공이동수단이다. 하지만 표를 구하지 못하는 등 각종 요인으로 자가 운전이 불가피한 경우가 허다하다. 장시간 운전에 지친 운전자들이 ‘자율주행’ 상용화 시점을 궁금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쉽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분간 승용차 자율주행 구현은 힘들어 보인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가 정의한 레벨 0~5까지의 6단계 자율주행 기술 단계 중 명절 운전 고통을 덜 수 있는 단계는 3단계부터다. ‘조건부 자동화’(Conditional Automation)로 정의한 이 단계는 고속도로, 정체 구간 등에서 시스템이 직접 운전을 할 수 있다. 시스템은 비상시에만 운전자에게 핸들을 넘긴다. 운전자는 비상 상황이 아니라면 전방 주시 의무가 면제된다.
2단계 수준인 크루즈 컨트롤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이는 기술이지만 문제는 ‘책임’이다. 2단계까지는 사고 시 운전자가 책임을 진다. 여기까진 책임소재가 명백하다. 하지만 3단계부터는 자동차 제조사에게도 책임이 생길 수 있다. 사고원인분석 결과 차량이나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정되면 제조사가 피의자가 된다. 완성차 제조사 입장에선 사업의 위험도가 한껏 높아지는 것이다.
완성차 업계가 레벨3 차량을 ‘언제’ 판매하겠다는 일정조차 못 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역시 제도 정비가 까다롭기 그지없다. 책임 소재를 감안해 제도를 촘촘하게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3단계 차량을 일반 승용차로 판매하는 국가나 기업은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관광센터 앞에 정차해 있는 자율주행 택시. 샌프란시스코 글·사진=신준섭 기자 레벨4는 되는데, 왜 레벨3가 안 될까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과 중국에서는 완전 자율주행 택시가 돌아다닌다. ‘로보 택시’라 불리는 이 무인 택시들은 유료 서비스를 실시하며 상업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미국에서는 알파벳의 웨이모(Waymo)와 아마존의 죽스(Zoox), 테슬라가 앞다퉈 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웨이모는 영국 런던과 독일 뮌헨, 일본 도쿄, 싱가포르까지도 사업 영역을 넓혔다. 중국도 규제 완화를 통해 자율주행 택시 생태계를 확장 중이다. 바이두 아폴로고(Apollo Go), 위라이드(WeRide), 포니AI(Poni.ai)가 대표 플랫폼으로 꼽힌다.
이들이 구현하는 서비스는 자율주행 ‘레벨4’(High Automation)다. 특정 도시나 주차장 등 제한된 구역에서 운전자 없이 운행이 가능하다. 운전석에 아예 사람이 없는 만큼 레벨3보다 진화한 기술인데도 특례 형태나마 ‘합법’ 판정을 받은 데는 이유가 있다. 승용차가 아닌 상용차라는 점이 핵심이다. 즉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사고 발생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런 점이 레벨4 구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중국 무인택시 뤄보콰이파오 내부. 연합뉴스 한국도 2년 후부터는 레벨4가 가능해진다. 서울 강남 권역에서 테스트를 하던 단계를 넘어 정부가 앞장 서는 대규모 ‘실증’이 시작된다. 오는 11월부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서 200대의 자율주행차가 달리게 된다.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 기반 차량이 투입될 예정이다. 초기에는 안전관리자가 운전석에 탑승하는 레벨3 수준으로 출발해 데이터를 수집하게 된다. 내년 8월부터는 안전관리자의 위치가 조수석으로 바뀐다. 2028년 1월부터는 무인 차량이 다닐 예정이다. 정부는 실증 지역과 대수를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내년에는 5곳 안팎의 지역에서 총 3000대 규모를 운용할 계획이다. 정부는 구체적인 로보 택시 도입 로드맵도 연내 발표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내년 예산이 확정되면 무인화 및 로보 택시를 언제까지 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포티투닷 연구원들이 '비히클 워크샵'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승용차, ‘2+’로 일단 만족해야
이 상황에서 살펴볼 수 있듯 기술 자체는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책임 소재가 승용차의 자율주행 도입 발목을 잡는다는 결론을 피할 수가 없는 셈이다. 당분간은 이같은 흐름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국제사회에서는 고도화한 자율주행 기술 자체를 무시하지는 못하는 추세가 읽힌다. 유엔은 2024년 운전자 제어 보조 시스템(DCAS) 규정을 제정했다. 레벨2와 레벨3 사이인 ‘레벨2+’ 기술에 대한 규제 사항이 핵심이다. DCAS가 개량을 거쳐 허용 범위를 점점 더 넓히고 있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승용차가 차선 유지와 차간격 조절 등 크루즈 콘트롤 기능을 쓸 때 운전자가 운전대에 손을 올려놔야 한다는 정도만 규정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발효한 내용부터는 범위가 대폭 늘었다. 시스템이 고속도로에서 선제적으로 차선을 변경하고 분기점으로 진입하려는 행위도 조건부로 허용하기로 했다. 운전자가 운전석에서 전방을 잘 주시한다면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아도 되게끔 규정을 보완했다. 지난 6월에는 한 발 더 나가서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에서도 이같은 규정을 적용할 수 있게끔 다듬은 ‘02 시리즈’ 초안을 내놨다. 내년 발효가 목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제작한 이미지 한국 정부도 유엔 DCAS 규정에 맞춰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현재 국회에서는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대표발의한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소관위에 접수된 상태다. 국내에서도 유엔 DCAS 규정 수준의 2+ 자율주행을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2+ 구현이 가능한 차량들은 곧바로 국내 운항이 가능해진다. 명절 운전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 대신 자율주행 규제가 조금씩 완화되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승용차의 경우 여전히 사고 책임 소재는 운전자에게 있다는 점이다. 유엔 DCAS도 ‘보조 시스템’이라 명시한 것처럼 운전자 책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결국 2+가 국내에서 구현되더라도 명절 운전자들은 최소한 두 눈은 앞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